나훈아·조용필·임영웅…국민가수들의 연말 공연 대격돌
  •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24 15:05
  • 호수 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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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곳마다 구름 관객 동원하며 화제 몰이
최고들의 전력투구에 공연시장 수준도 높아져

우리나라에서 ‘국민공연’급이라고 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는 공연 3개가 이번 연말에 격돌해 이채롭다. 바로 가수 나훈아와 조용필, 임영웅의 공연이다. 이 중에서 나훈아는 12월9~10일 이틀간 대구에서 총 3회 공연으로 2만4000여 관객을 동원했고, 부산 벡스코에선 16~17일 총 3회 공연으로 3만 관객을 모았다. 30~31일엔 고양 킨텍스 공연이 예정돼 있다.

공연장이 컸다면 더 대규모의 공연도 가능했을 것이다. 요즘 대형 스타들이 마땅한 공연장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훈아도 서울에서 큰 공연장을 잡지 못해 서울을 건너뛰고 고양 킨텍스로 확정했다. 이렇게 공연장 규모가 받쳐주지 못하다 보니 좌석을 확보하려는 팬들의 ‘피케팅’(피 튀기는 티케팅 경쟁) 열기가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뉴시스

나훈아, 웰메이드 공연의 대표 브랜드

나훈아 공연은 우리나라에서 웰메이드 공연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다. 사운드 등 설비가 최고 수준일 뿐만 아니라 공연을 이끌어가는 그의 쇼맨십 또한 대한민국 원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정도로 무대 위에서 뿜어내는 나훈아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그런 나훈아는 무려 11년 동안이나 무대를 떠났었다. 오랜 공백기를 가진 후 2017년에 11년 만의 복귀 무대를 펼쳤다. 팬들을 만나지 못했던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 그 이후부터 쉼 없이 신곡 발표와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보통 중년 이상의 가수들은 옛 히트곡들 위주로 활동하며 행사나 디너쇼 무대에 많이 선다. 반면 나훈아는 원로 가수임에도 계속 신곡을 발표하며 아이돌들처럼 순회공연을 펼친다는 점이 놀랍다. 그리고 그 공연 하나하나를 모두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 ‘공연의 신’이라 불리게 됐다.

또 대형 히트곡이 워낙 많아 부모·자식 세대가 가도 여러 노래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이러니 폭넓은 세대의 관심을 받는 국민공연이 된 것이다. 가장 최근에 펼쳐진 부산 벡스코 공연엔, 갑자기 닥친 한파에도 많은 사람이 몰려 공연장 인근 도로가 정체되기까지 했다.

나훈아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도 유명하다. 최고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 완벽하게 몸만들기를 한다. 이번 순회공연에서도 이틀 동안 3회 공연을 소화할 정도로 놀라운 체력을 선보였다. 7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의상 교체도 무대 위에서 할 정도로 쉼 없이 공연을 이어가고, 노래들 사이엔 관록이 느껴지는 멘트로 장내를 휘어잡는다. 재밌는 말도 하고 뼈가 담긴 말을 하기도 한다.

이번 대구 공연에선 “저는 테레비는 뉴스만 보는데, 이상한 국회의원인지 지랄인지 나와갖고 하는 꼬라지 보면 속이 뒤틀린다. 그런데 자들을 뭐라 할 일 아이라. 누가 뽑았노. 우리가 안 뽑았대. 우리 책임이다…아무 데나 길바닥에 절한다고 찍어주지 말고, 단디 찍어야 돼”라며 총선 관련 당부를 하기도 했다. 이런 말들과 함께 무대 연출, 가창력, 카리스마 등으로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요즘엔 댄스음악에도 도전했다. 나훈아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청춘을 돌려다오》를 부르면 관객들이 정말 청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영원한 청춘의 공연인 것이다.

ⓒYPC 제공

갈수록 더 뜨거워지는 조용필 공연

조용필 공연은 나훈아 공연 이상의 국민공연이라 할 만하다. 더 폭넓은 세대가 모이기 때문이다. 조용필 공연의 젊은 관객이 조금 더 많다는 이야기다. 나훈아의 전성기는 1970년대에 시작됐고, 조용필은 1980년대다. 나훈아는 정통 트로트 위주지만 조용필은 트로트부터 록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다. 이런 연유들로 인해 조용필 공연에 젊은 관객이 더 많을 것이다.

1980년대부터 민요와 팝을 넘나드는 조용필의 가창력은 유명했다. 그 후로도 조용필은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날마다 몇 시간씩 연습했다고 한다. 그런 목소리의 울림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조용필 공연의 사운드도 유명하다. 조용필은 한국 최고의 연주자들을 모아 밴드를 이끌었다. 과거 한 록 페스티벌에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등장하는 순간, 차원이 다른 사운드에 젊은 관객들이 일제히 열광한 적이 있었다. 조용필은 아직 그런 사운드를 들려준다.

나훈아처럼 조용필도 행사, 디너쇼, TV 출연 등보다는 공연 위주로 활동한다. 오랫동안 수도승처럼 치열하게 노력하며 자신의 공연을 최고의 작품으로 세공해 왔다. 이러니 한국을 대표하는 웰메이드 국민공연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현재 조용필은 데뷔 55주년 기념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다. 12월9~10일 서울 송파구 케이스포돔(옛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2만여 관객을 만났고 대구 엑스코(16일), 부산 벡스코(23일) 공연으로 이어진다. 경쟁이 치열한 케이스포돔 대관에 성공한 것을 보면 상당히 오래전에 예약한 것으로 보인다. 케이스포돔은 사실 조용필에겐 너무 작지만, K팝 아이돌도 쉽게 매진시키지 못할 정도로 나름 대형 공연장이다.

여기에서 조용필은 강력한 사운드와 환상적인 LED 스크린, 화려한 영상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워낙 젊은 층 사이에서도 유명해 젊은 관객도 많이 찾았는데, 그들이 넋을 잃고 감상했다는 후기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대구 공연의 경우 20대 관객 비율이 21.9%, 30대 관객 비율이 26.8%였다. 거의 절반 가까이가 2030세대라는 이야기다.

오랜 세월 동안 조용필이 다져온 내공, 철저한 자기 관리로 쌓은 저력이 서울 공연에서 빛났다. 당시 독한 감기에 걸려 주치의로부터 공연 불가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2시간 공연을 소화해 냈다. 73세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에서 그가 그동안 얼마나 절제하며 살아왔는지, 공연에 얼마나 진심인지가 느껴진다.

음악과 동시에 말로도 좌중을 휘어잡는 나훈아와 달리 조용필의 공연은 음악 위주다. 말은 별로 하지 않아도 다양한 장르에 걸친 수많은 히트곡의 향연과 가슴 뛰게 하는 사운드, 휘황한 영상과 조명 쇼로 지루할 틈이 없다. 최고 수준의 웰메이드 공연으로 정평이 났고,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SNS에서도 입소문이 퍼져 젊은 관객이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관객들은 조용필 공연을 보고 K팝의 원류를 확인한다. 그의 공연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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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공연이 현시점 대한민국 원톱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고 공연은 임영웅 공연이다. 물론 방탄소년단(BTS) 공연의 규모가 더 클 것이지만 BTS의 공연은 세계 공연이라고 할 수 있고, 국내로 한정했을 땐 임영웅 공연의 위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2월8~10일 부산 공연을 치렀고, 29~31일 대전 공연을 앞두고 있다.

최근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연예인들이 임영웅 공연 표 구매에 도전하는 장면이 나왔다. 예능에서 특정 가수 공연 표를 사는 모습이 주요한 내용으로 나온 건 이번이 사상 최초일 것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사전 예고에 그 표 구매 장면만을 내보냈다. 한 시간 이상 가는 본편 방송 전체를 통틀어 임영웅 공연 표 구매 꼭지가 가장 중요했다는 이야기다. 상상 초월의 존재감이다.

《미운 우리 새끼》에선 임영웅 공연이 ‘콘서트 역사상 최고난도 티케팅’이라고 소개됐다. 최근 서울 공연에 370만 트래픽이 몰렸고, 지난 서울 공연 땐 실시간 대기자 수가 83만 명을 찍었다. 임영웅 공연 표를 사려면 전생에서부터 공덕을 쌓았어야 한다고들 한다.

국내에서 임영웅 공연이 원톱이라는 것은 인터넷 여론을 보면 알 수 있다. 보통 가수의 공연은 팬들만의 관심사일 뿐이다. 일반 커뮤니티에서 특정 가수 공연이 화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조용필 공연 같은 국민공연이 가끔 화제가 되곤 하는데 그 정도도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런데 임영웅 공연은 수많은 일반 커뮤니티에서 수시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수준이다. 화제가 간혹 정도가 아니라 줄줄이 이어진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순회공연에 대해서도 대형 전광판, 스태프의 친절, 간이 화장실, 관객 휴게실, 팬 서비스, 가창력, 초대권 배제, 합리적인 표 가격, 건강검진 독려, 영수증 문구 등 여러 요소가 돌아가면서 화제가 됐다. 그 화제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주제로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화제 릴레이가 시작된다. 젊은 아이돌 팬들이 모이는 게시판에서도 관심이 뜨거웠다. 일반 누리꾼이 임영웅에게 호남평야 공연을 요구한다. 이렇게 광범위한 국민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공연은 임영웅 공연이 유일하다.

임영웅 공연은 조용필 공연처럼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폭넓은 국민을 열광하게 한다. 현재 주류 무대에서 활동하는 젊은 가수 중에선 임영웅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가장 넓을 것이다. 오디션 전속 계약이 끝난 후 임영웅은 최고의 세션들을 규합해 공연을 함께 할 밴드를 조직했다. 그리고 TV 출연, 행사 출연 등을 최소화하면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전력투구했다. 물량 투입까지 아끼지 않아 인기뿐만 아니라 완성도에서도 당대의 웰메이드 공연 반열에 올랐다. 임영웅이 투입한 물량에 아이돌 팬들이 경악했다.

임영웅은 2시간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대에서 혼자 공연을 이끌어가면서 나훈아처럼 의상 교체도 무대 위에서 하고, 쉼 없는 멘트로 분위기를 이끌어가기도 한다. 자신을 보러 온 관객들을 위해 자신의 100%를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이런 진정성이 관객에게 전달돼 날로 열기가 강해진다. 외국처럼 대형 공연장이 많았다면 임영웅은 이미 초대형 순회공연 신화를 썼을 것이다.

한국은 공연이 그리 활성화된 시장이 아니다. 가수들은 과거엔 밤무대에서, 요즘엔 행사장에서 주로 활동한다. 이럴 때 나훈아, 조용필, 임영웅 등 최고의 가수들이 공연에 전력투구하면서 우리 공연시장의 수준을 높여가는 건 반가운 일이다. 이런 흐름을 타고 내년엔 국민공연급 공연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공연장 인프라가 확충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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