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안 준 부모 공개한 ‘배드파더스’ 운영자 유죄…이유는?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4.01.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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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위법한 ‘사적 제재’…양육비 지급 기회 부여 안해”
“얼굴·사진·직장명은 민감 정보… 공익에 필수 내용 아냐”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 사이트 ⓒ연합뉴스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 사이트 ⓒ연합뉴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Bad Fathers)’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구본창(61)씨에게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4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구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지급 의무를 지키지 않는 부모들의 이름, 거주지, 직장명, 얼굴 사진 등을 공개하는 사이트다. 구씨는 2018년 9~10월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라는 제보를 받고 5명의 사진과 신상 정보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법원은 “피고인의 활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 7명도 배드파더스의 신상 공개가 공익에 부합하다고 판단해 구씨를 무죄로 평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구씨의 행위는 ‘사적 제재’로, 현행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다만 범행 경위에 참작할 점이 있다며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했다. 선고유예는 범죄의 정도가 비교적 가벼운 경우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특정한 사고 없이 유예기간이 지나면 면소(공소권이 사라져 기소되지 않음)된 것으로 간주하는 판결이다.

2심 재판부는 법률에 따르지 않고 신상 공개를 사적 제재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사생활의 비밀과 개인의 명예가 침해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 얼굴과 사진, 직장명은 개인의 민감한 정보로 공공의 이익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지난 2020년 11월13일 양육비해결총연회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를 비공개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접수된 것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0년 11월13일 양육비해결총연회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를 비공개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접수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도 “이 사건 사이트의 주된 목적은 양육비 미지급자 개인의 신상 정보를 일반인에게 공개함으로써 인격권 및 명예를 훼손하고, 그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해 의무 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려는 취지”라며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공개 여부 결정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준이나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사전 확인절차를 두지 않았다”며 “양육비를 지급할 기회를 부여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날 구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이용자 전아무개씨에 대해서도 벌금 70만원이 확정됐다. 전씨는 전 배우자를 양육비 미지급자로 제보해 신상정보가 공개되게 한 사람으로, 해당 게시물을 자신의 SNS에 공유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씨는 게시글을 공유하면서 비하·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벌금 50만원을, 2심에서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한편 지난 2021년 7월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내용의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배드파더스 홈페이지 운영 3년 만이며, 해당 법률안 시행 이후 구씨는 해당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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