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 쏘아 올린 뜨거운 감자 ‘의원 정수 축소’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9 12:05
  • 호수 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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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국회의원 수 300명→250명 감축”…비례대표 축소 시사
野 “정치 혐오 부추기는 표퓰리즘”…국민과 전문가 의견 엇갈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16일 “총선에서 승리해 국회의원 수를 300명에서 250명으로 줄이는 법 개정을 제일 먼저 발의하고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현재 47석인 비례대표부터 대폭 줄여야 한다는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체포특권 포기’ ‘금고형 이상 확정 시 세비 반납’ ‘자당 귀책으로 재보선 시 무공천’에 이은, 한 위원장이 발표한 4번째 ‘정치 개혁’ 공약이다. 야당은 당장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나쁜 표퓰리즘의 정수”라고 비판했다. 국회의 오래된 뜨거운 감자인 ‘의원 정수 조정’과 ‘비례대표 조정’을 한 위원장이 ‘정치 개혁’이라는 명목하에 다시금 정국의 한복판으로 소환한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원 정수 조정과 비례대표 조정은 국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사안이다. 국민 여론은 의원 정수 확대에 매우 부정적이다. 수년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의견은 60%대를 넘나든다. 작년 6월 갤럽 여론조사에서도 반대 비율이 65%에 달했다. 이는 국회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일하는 국회’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국회는 오랜 기간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혜와 특권도 공고한 부정적 국민 여론에 한몫한다. 국회의원은 소속 위원회 회의에 출석하지 않아도 세비(월급)를 받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면서도 1억5000만원이 넘는 연봉과 각종 수당, 보좌진, 사무실, 교통 등 각종 지원을 누린다. 일을 제대로 안 하니 모든 ‘지원’은 ‘특권’처럼 여겨진다. 실제 정부의 국민의식 조사에서 국회는 매년 ‘신뢰도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국회에 대한 신뢰도 자체가 낮다 보니 ‘내가 직접 뽑았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나를 직접 대표한다고 느껴지지도 않는 비례대표가 왜 늘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상당하다.

반면 전문가들은 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한다. 특히 학계가 그렇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6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정치학자 10명 중 9~10명은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게 맞는다’고 답할 것”이라며 “‘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고 답할 정치학자는 없다”고 단언했다. 학계의 논리는 크게 4가지다. ①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한 한국의 의원 숫자 ②정수를 줄이면 의원 기득권은 오히려 더 강해진다 ③비대해진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선 입법부도 키워줘야 한다 ④정당 득표율과 의석수의 불(不)비례성 등이 핵심 논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22년 펴낸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에 따르면 의원 숫자가 총 300명인 한국은 의원 1명이 국민 약 17만 명을 대표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만 명)의 두 배 이상이다. 한국은 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미국(63만 명)·멕시코(21만 명)·일본(18만 명)에 이어 4번째로 의원 1명당 대표하는 인구수가 많은 국가다. 의원 1명당 대표하는 국민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대표성은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비대한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입법부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행정부가 가진 예산과 인력은 입법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만큼 국회 의석을 늘려 행정부를 감시·감독하는 것은 투자 대비 효율이 나쁘지 않다는 주장이다. 비례성 제고도 의원 정수 확대의 주요 논거다. 국민의 지지에 비례해 각 정당이 의석수를 가져갈 수 있는 제도가 좀 더 민주적인데,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불비례성 해소를 위해선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하는데, 현역 의원들의 반대로 기존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기는 어려우니 의원 정수를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최근에는 의원 수를 유지하거나 줄이는 것이야말로 진입장벽을 높여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더 강화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숫자가 적어진 의원을 상대로 한 행정부와 민간기업 등의 로비가 한층 더 수월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최근 국회에서는 의원 정수는 확대하되 세비와 특권을 줄이는 개혁을 병행한다면 국민도 호응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의원 세비와 정수를 국민이 참여하는 제3기구에서 정하도록 하자는 제안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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