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이재명 대항마로…‘취임 한 달’ 한동훈의 입·손·발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9 15:05
  • 호수 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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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존재감 커졌지만 당·대통령 지지율로 연결 안 돼…결국 ‘김건희 논란’ 풀고 윤 대통령과 거리두기가 관건

‘정치 신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기세가 무섭다. 그가 지휘봉을 잡으면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와 인요한 혁신위 실패, 김기현 대표 퇴진 등 위기로 가득했던 집권여당에 모처럼 화색이 돌고 있다. 주목도가 확연히 높아졌고, 여당이 여러 이슈를 선제적으로 끌고 가는 장면도 이전보다 자주 포착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 위원장이 한 예비 고교생에게 선물한 소설 《모비딕》은 단숨에 서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가 부산에서 입은 ‘1992’ 맨투맨 티셔츠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무엇보다 한 위원장은 취임 이후 단숨에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존재감이 급부상했다. 각종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등 여론조사에서 수치가 급등해 한동안 적수가 없던 선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까지 위협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자체 정기 조사에 따르면 가장 최근 조사(1월9~11일)에서 한 위원장은 22%를 얻어 23%의 이 대표와 단 1%포인트 차이로 치고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한 달 전 법무부 장관 시절 조사(2023년 12월5~7일)보다 6%포인트 급등한 수치다. 여권에서 “한동훈 신드롬”(전여옥 전 의원)이라는 극찬까지 나오는 이유다.

반대로 일련의 주목도는 그저 컨벤션 효과(정치 이벤트 직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오히려 한계와 과제만 더 남겼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아직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점에 대한 당내 우려를 불식시키긴 부족하다”(국민의힘 A 의원)와 같은 지적이 대표적이다.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선 우선 베일에 싸여있던 ‘한동훈식 정치’가 어떤 형태로 대중 앞에 드러났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한 달, 한 위원장의 입(메시지)·손(사람)·발(행보)을 통해 살펴봤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6일 인천 계양구 카리스 호텔에서 열린 인천시당 신년인사회를 마친 후 당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6일 인천 계양구 카리스 호텔에서 열린 인천시당 신년인사회를 마친 후 당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韓 메시지, 국민에게 공감으로 비칠 것”

“분명히 다짐합시다. ‘국민의힘’보다도 ‘국민’이 우선입니다. 오늘 국민의힘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정치를 시작하면서, 저부터 ‘선민후사’를 실천하겠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미래와 동료시민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26일 한 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의 한 대목이다. 취임 일성에서 한 위원장의 입을 통해 나온 ‘선민후사’ ‘동료시민’ 같은 개념들은 그동안 한국 정치권, 특히 보수진영에선 더욱 생소한 것들이었다. 이후로도 한 위원장은 한 달 새 여러 자리에서 ‘동료의식’ ‘공공선(善)’ 같은 표현들을 반복해 사용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야당 의원들과의 날 선 말싸움 장면 등을 강렬하게 기억했던 사람들에게선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당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힘 관계자 B씨는 “한 위원장이 취임에서부터 국민을 강조하고 동료시민이란 표현을 쓰면서 기존 보수 이미지와 달리 권위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 색달랐다”며 “기존 우리 당에는 생소할 수 있지만 국민들에겐 더 공감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의 이러한 메시지에는 ‘차별화’ 전략이 담겨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공화주의 정치 연구자이자 정치평론가인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한 위원장이 직접 거론한 것은 아니나 그의 여러 메시지에는 공화주의적 요소들이 많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균형 있게 행사하는 수평적 관계의 시민들과 의사결정을 함께 하겠다, 그런 의미로 읽히는데 이는 기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표현과도 다르고, 무엇보다 기존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주의적 메시지와는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차별화된다.”

눈길을 끄는 건 한 위원장이 취임 후 40여 차례의 공식 석상에서 윤 대통령에 대해선 단 한 차례도 입 밖에 꺼내지 않은 점이다. 그는 1월17일 서울시당 행사에서야 처음으로 “얼마 전 대통령께서 노후 아파트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을 약속했다”며 대통령을 언급했다. 지지율 30%대 박스권에 갇힌 대통령과 거리두기에 신경 쓰는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한동훈 위원장은 한 달간 누구의 손을 맞잡았을까. 가장 큰 관심이었던 인선에서 역시 파격적이라는 평이 많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들을 789(1970~90년대생)세대 위주로 구성했다. 평균 나이는 43세다. 8명 중 정치인은 초선 비례대표 김예지 의원이 유일하다. 김 의원은 시각장애인이기도 하다.

 

비주류 기용 탕평… “윤핵관 이제 없어”

주요 당직자 인선을 두고도 ‘예상 밖’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당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엔 비대위원장 선정 과정에서 ‘한동훈 비대위’에 반대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던 초선 장동혁 의원(충남 보령·서천)을 임명했고, 직전 지도부에서 임명된 유의동 정책위의장(경기 평택을 의원)은 유임했다. 유 의원은 당내 대표적 비윤(非윤석열) 인사인 유승민 전 의원계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또 조직부총장엔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김종혁 경기 고양병 당협위원장을, 홍보본부장엔 김수민 충북 청주청원 당협위원장을 임명했는데, 이들 또한 당내에선 비주류로 분류되던 인사들이다. 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여의도연구원장에는 여론조사 전문가인 홍영림 전 조선일보 기자를 발탁했다.

총선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공천관리위원회는 판사 출신 정영환 공관위원장을 비롯해 법조인, 의대 교수, 컨설팅 전문가 등 외부위원으로 꾸려졌다. 현역 의원 중에서는 장 사무총장이 당연직으로 공관위에 합류하게 됐고,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철규 의원과 장애인 체육계 대표성을 가진 이종성 의원도 포함됐다. 전반적으로 영남권 인사가 많았던 직전 김기현 지도부에 비해 지역 안배에 신경 썼고, 또 비정치인 전문가를 대거 합류시켜 정치권 개혁 의지를 강조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계파색이 옅은 인사들을 중용한 탕평 인선이란 평가가 당 안팎에서 나왔다. 한 위원장과 아무런 인연 없이 임명 통보를 받았다는 김종혁 조직부총장의 말이다.

“한 위원장과 아무 인연도 없고, 당에 바른 얘기도 많이 해왔던 터라 저도 (임명)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한 위원장에게서 전화가 왔길래 ‘제가 언론·홍보 쪽을 오래 해왔고 조직 쪽은 맡아본 적이 없는데 괜찮겠습니까’라고 말했더니 ‘그렇게 따지면 저도 정치를 처음 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더라. 들어와서 보니 한 위원장은 계파와 관계없이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 수 있는 사람을 평가하는 것 같다. 더 이상 당내엔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라든가 주류 정치 논리에 물들어 있던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한동훈 위원장의 발도 분주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서울을 벗어나 전국 순회를 떠났다. 1월2일 대전을 시작으로 보름 동안 대구-광주-충북(청주)-경기(수원)-강원(원주)-경남(창원)-부산-인천-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각 지역에서 그 지역과의 인연을 드러내고 또 지지자·시민들과 ‘셀카’를 찍는 등 친근함을 보여줬다. 부산에서 1992 프린팅 티셔츠가 화제가 된 건 프로야구 롯데 구단이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인 1992년을 의식해 입은 것이란 이야기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광주를 찾아선 5·18 민주묘역을 참배하고 5·18 정신 헌법 수록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국민의힘 관계자 C씨는 “취임하자마자 전국을 돈 건 ‘신의 한 수’였다. 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 출마자들에게도 힘이 되고 당의 사기가 오르는 행보였다”며 “메시지가 뛰어난 건 알았지만 정무·전략에 있어서도 이렇게 영리하다는 건 굉장히 놀랍다”고 견해를 밝혔다.

호평도 이어지지만 한 위원장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냉정한 평가도 존재한다. 한 달 새 한 위원장의 개인적 존재감은 눈에 띄게 커졌지만 정작 당 지지율이나 대통령 지지율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점은 뼈아프다는 지적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한 위원장 지명 사실이 확정되기 이전이던 12월 2주 차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6.7%였다가 한 위원장 지명 직후인 12월 3주 차엔 39.0%로 올랐다. 이후 12월 4주 차와 1월 1주 차를 지나며 38.1%, 36.6%로 떨어졌다가 1월 2주 차 땐 39.6%로 다시 반등했다. 선임 확정 이전부터 현재까지 3.2%포인트 상승했으나, 중간에 하락세도 나타났고, 개인 지지도에 비하면 당 지지율 상승세가 더딘 게 사실이다.

중도 외연 확장에 어려움 겪고 있다는 분석도

한 위원장이 지지층 결집엔 성공하고 있지만, 중도 외연 확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평론가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한 위원장의 광폭 행보가 여당 지지율이나 대통령 긍정 지지율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에 대해 ‘자이가르닉 효과(완결 짓지 못한 문제에 대해선 완결 지은 일보다 더 기억하게 되는 현상)’라고 설명했다. 배 소장은 “‘한동훈 현상’에 대해 지지를 하려고 보니까 미흡한, 미완성된 부분이 보이는 것이다. 한 위원장과 윤 대통령의 관계, 김건희 특검법 문제 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당내에서도 한 위원장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문제로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관련 특검을 거론한다. 윤 대통령이 이미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그 후 여론을 어떻게 추스르느냐가 문제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특검법 자체는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명품 가방 수수 논란 등 대통령 취임 이후로도 반복되는 영부인 관련 논란은 총선 전에 정리하고 가는 게 맞다. 최소한 윤 대통령이 유감을 표하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속되는 당내 요구에 부담을 느꼈음인지 한 위원장은 1월18일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 공천에 대한 당내 우려가 여전한 분위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것도 한 위원장의 숙제다. 최근 3선 이상 현역 의원에 대한 페널티 강화 등 공천룰이 발표되면서 중진들이 술렁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 D씨는 “결국 한 위원장은 총선까진 어떻게든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당과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게 당과 대통령이 사는 길”이라면서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난 한 달은 실질적인 용산과의 분리에 있어선 미흡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내다봤다. 인사에서도 비대위와 공관위 등에 법조인 비율이 과도하다는 점, 이미 한 명의 비대위원 사퇴와 몇몇 비대위원의 설화 등 논란이 인 가운데 한 위원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사에 등장한 각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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