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삼 ‘당근’ 가능해진다…건기식 중고거래 허용에 ‘우려’ 왜 나오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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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 식약처에 재판매 허용 권고…시범 사업 추진
업계, 제품 안전성 우려 및 불법 유통 가능성 제기
개인 간 거래 땐 책임 소재 불분명…적발‧추적 어려워

선물 받은 홍삼 제품을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리면 ‘거래 금지 품목’이라는 이유로 경고 조치를 받게 된다.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의 개인 간 거래가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범법’이었던 건기식 중고거래는 이제 허용될 전망이다. 체질이나 취향에 맞지 않아 방치되는 건기식이 늘어나면서 개인 간 거래를 허용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자, 정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건기식의 재판매를 허용하도록 권고했다. 식약처는 연간 거래 횟수 및 금액을 제한하는 가이드 라인을 마련하고, 올 상반기부터 시범 사업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불법 유통 가능성과 제품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흘러나온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홍삼 등 건강기능식품을 진열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홍삼 등 건강기능식품을 진열하는 모습 ⓒ연합뉴스

현행법상 중고거래 금지…‘무료 나눔’도 불가

건강기능식품법에 따르면, 등록된 사업자만이 온라인으로 건기식 판매를 할 수 있다. 판매자는 관련 시설을 갖춘 후 지방자치단체장에 영업신고를 해야 한다. 개인은 건기식 거래를 할 수 없고, ‘무료 나눔’도 영업 행위에 포함돼 금지된다.

그러나 관련 사실을 모르는 소비자들이 중고나라나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 건기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 해당 플랫폼들은 거래 글이 늘어나는 명절 전후로 공지사항을 띄우거나 특별 모니터링을 진행해 왔다.

건기식 시장 규모는 2019년 2조9508억원에서 2023년 6조2022억원으로 2배 이상 확대된 것으로 추산된다(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지난해 기준으로 주요 유통 채널 중에서는 온라인몰(67.9%)의 비중이 가장 컸다. 건기식 시장이 커지고 온라인 거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개인 간 판매를 금지하는 현행 규제가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세계적인 추세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해외 국가에서는 건기식 제조업에 대한 인허가가 필요할 뿐 판매업에는 인허가가 필요하지 않으며 개인 간 거래도 허용한다. 식약처에 개인 간 재판매 허용을 권고한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현행법상 처벌도 과도한 것으로, 국민 권익 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손동균 국무조정실 규제총괄정책관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 관련 규제 심판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손동균 국무조정실 규제총괄정책관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 관련 규제 심판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업계 “안전성과 품질 우려…유통질서 혼란”

그동안 업계는 건기식의 개인 간 재판매를 허용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특히 소비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을 속여 거래하거나,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대량 구매한 뒤 비싸게 재판매하는 경우 유통질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건기식 중 고가인 홍삼 제품의 ‘짝퉁’이 중고거래 시장에 등장할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중국을 중심으로 홍삼 위‧모조품이 유통되기도 했으며, 상표 포장지를 위조해 저가 홍삼을 고가 브랜드 홍삼으로 위조하려는 중국인 일당이 적발된 사례도 있다. 정식 유통 채널을 거치지 않고 중고거래되는 경우 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제품에 대한 ‘안전성’ 문제도 고개를 든다. 권장하지 않는 온도 등에서 보관하는 등 제품을 잘못 보관할 경우, 소비기한 내에도 제품의 품질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변질된 제품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소비자는 피해를 구제받기 어렵고, 이로 인한 클레임 등이 나오게 되면 제품과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건기식은 특정 성분이 농축된 기능성 식품이다 보니 다른 제품보다 보관에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있어 안전성 차원에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라며 “정식 채널이 아닌 곳에서 유통되거나, 해외 직구로 들어오는 상품이 개인 거래에서 유통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또 “이제 발표가 나온 만큼, 향후 식약처가 주도적인 논의 주체가 돼 업계와 함께 권고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약처가 건강기능식품 부작용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보관 문제 등으로 문제가 발생한 제품을 중고거래 등을 통해 구입한 경우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거래 횟수나 규모를 제한하는 ‘소규모 판매’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나, 개인 간 거래에서 거래 규모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소비자 피해 방지 시스템을 갖춘 개인 간 거래 플랫폼에 한해 시범 사업을 운영할 계획”이라며 “판매 횟수나 금액을 초과한 판매 행위에 대해 제재할 수 있도록 상시 모니터링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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