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개 든 ‘트럼프노믹스’에 떨고 있는 재계
  • 김경수 기자 (2ks@sisajournal.com)
  • 승인 2024.01.30 07:35
  • 호수 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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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우선주의’ 현실화될 경우 72조원 투자 ‘공염불’ 우려
삼성·SK·현대차 등 국내 기업에 불통 튈지 촉각 곤두세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1월15일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 첫 경선에서 51%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승리했다. 이어 1월23일 뉴햄프셔에서 열린 경선에서도 트럼프는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를 가뿐히 제치면서 독주를 이어갔다.

대선후보 자리를 거머쥐기 위한 완전한 독주 체제를 굳혔다는 평이 나온다. 2월에 예정된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정당별 후보를 선출하는 예비경선 방식)’는 물론이고, 남은 경선에서도 헤일리 전 대사로서는 이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경선 2연승으로 대세론에 날개를 달았다는 전망에 국내 재계는 연일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11월5일 열리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과 바이든 현 대통령의 재대결이 점쳐지고 있다. ⓒ EPA연합·AP연합

점점 가시화하는 트럼프노믹스 2.0

미국 우선주의, 강경한 보호무역주의로 대변되는 트럼프의 기조는 2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경제 분야는 미국 유권자들의 최우선 관심사다.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 실패가 곧 트럼프의 지지율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래서일까. 트럼프 2기에서 나올 ‘트럼프노믹스’에 이목이 쏠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약이 될 트럼프노믹스의 총체적인 기조는 ‘미국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트럼프노믹스는 강경한 보호무역주의로 대변되는 트럼프의 기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트럼프는 재선 공약으로 ‘어젠다 47’을 제시하며, 집권 1기보다 강화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예고했다. 어젠다 47은 무역·외교·국방 등 국정 전 분야에서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정책 목표다. 세금 감면과 규제 철폐, 보호무역 등이 핵심 키워드다.

트럼프는 “2기 행정부에 돌입하게 되면, 중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 수입품에 최소 1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어떤 나라든 미국산 제품에 100%, 200% 관세를 매긴다면 우리 역시 똑같이 부과한다. 눈에는 눈, 관세에는 관세”라고 말했다. 관세·무역 전쟁을 예고한 것이다. 트럼프노믹스가 실현되면 환경·첨단 산업에서 대혼란이 불가피해진다. 트럼프가 전기차(EV)와 청정에너지 산업을 촉진하는 특혜도 폐지할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바이든 정부의 기후 정책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보조금 지원 내용을 담은 IRA가 폐기되면, 세액공제 혜택을 위해 미국 현지 생산공장을 짓는 등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연쇄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산업정책 변화는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공조를 무너뜨려 기업이 추진하는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산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에 전기차 및 전기차 배터리 공장과 태양광 패널, 풍력발전 시설 등을 짓고 있는 삼성·SK·현대자동차·LG·한화 등 국내 기업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극단적인 보호무역 조치를 시사해온 만큼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와 관련 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IRA가 폐지되면 관련 보조금이 없어져 미국에 큰 투자를 해 전기차·배터리 공장 등에 주력한 한국 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가 대표적이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는 수요 둔화 우려에도 2023년 1~3분기 미국 시장 전기차 판매 2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대차는 전동화 전환과 신기술 개발을 위해 63조원 규모의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정의선 회장은 전기차 관련 투자를 지속할 것임을 밝혔다.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선제적 투자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전동화 리더’ 지위를 굳건히 하겠다는 판단이다.

트럼프 상승세에 국내 기업들 눈치만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현실화한다면, 향후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이다.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전개하는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전기·수소차, 자율주행 등 혁신적인 기술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난해 맞닥뜨린 바이든 정부의 IRA로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보조금 없이 전기차를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IRA에는 북미에서 최종적으로 조립하지 않은 전기차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때문에 현대차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7조2000억원을 들여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전반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트럼프는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IRA를 폐지하고, 모든 수입제품에 10% 관세를 추가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바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재임할 당시 미국이 오랫동안 고수해 왔던 자유무역주의를 완전히 엎어버린 전력이 있다. 2018년이 그랬다. 트럼프가 이끄는 행정부가 보호무역주의 칼날을 한국에 집중적으로 겨눴다. 가전과 태양광에 이어 철강제품, 변압기까지 잇따르는 관세 폭탄에 우리 산업계가 몸살을 크게 앓았다. 트럼프의 계획대로 IRA가 철회되면 미국 본토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한 한국 기업들엔 타격이 될 전망이다. 백악관은 최근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규모가 최소 555억 달러(약 7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 투자의 4분의 1을 넘는 규모다.

반면 지나친 우려라는 지적도 나왔다. 국내에선 미국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미국 우선주의가 강화돼도,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은 지속 성장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정만기 무역협회 부회장을 단장으로 한 ‘대미 아웃리치 사절단’을 미국 워싱턴DC에 파견했다. 사절단은 전기차·반도체·배터리 등 우리 기업들이 대규모 대미 투자를 단행했거나 투자계획이 있는 산업과 관련해 “설령 트럼프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전기차·배터리 등 IRA 관련 산업의 성장 기조는 속도는 다르겠으나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최근 전기차 충전 방식 통일 등 충전 편의성 확대를 위해 미국이 노력하고 있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며 “해당 분야의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는 장기적 안목에서 당초 계획대로 지속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11월5일 47대 미국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1월15일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 선거)를 시작으로 무려 11개월에 걸친 대장정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여론조사 결과로만 놓고 본다면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재대결로 치러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 워싱턴 정가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지금으로선 현직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세가 비등비등하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리턴매치가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모두 경선을 치르고 있는데 공화당은 트럼프의 독주 태세다. 여기에 헤일리라는 여성 후보가 바짝 뒤쫓고 있어 트럼프가 흔들릴 것이라는 말도 떠돌지만, 바이든을 이길 후보는 트럼프밖에 없다는 여론이 아직도 우세하다. 이처럼 트럼프가 후보가 됐을 때 현재의 여론은 고령의 바이든보다 특유의 추진력을 가진 트럼프가 유리하다는 논평이 많다.

2016년 11월8일 제45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줄지어 있는 모습 ⓒAP연합

11월5일 미 대선 투표 ‘결전의 날’

산업정책도 고용창출계수가 높은 제조업 부활 정책을 더 강하게 추진할 방침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내부적으로는 제조업을 다시 보자는 ‘리프레시’ 운동과 함께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까지 불러들이는 ‘리쇼오링’ 정책을 추진해 세계 공급망 중심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재편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배터리·반도체 산업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마다 대미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국 산업 발전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다. 재집권하게 되면 또다시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이 한국 경제에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재집권 이후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비슷하게 조언한다.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트럼프 2기의 미국 중심의 정책 추진은 기업 경영에 부정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면서도 “대한민국의 영향력도 강해진 만큼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다. (기업들은) 닥쳐올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누구인가

•1946년 6월14일(77세) •포덤대학교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경제학 학사 •트럼프 기업 前 대표이사 회장 •트럼프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前 대표이사 회장 •2017년 1월 제45대 미국 대통령 •2024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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