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
  •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2 17:00
  • 호수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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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경제학자 에르난 데 소토가 쓴 책 자본의 미스터리는 왜 선진국은 잘살고 후진국은 못사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해설하고 있다. 후진국은 집도 없고 똑똑한 인재도 없어 후진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선진국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이 후진국에도 다 있다. 그렇다면 후진국은 왜 후진국일까. 소유권에 대한 보장과 계약의 안정성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이 후진국에는 없다는 게 책의 요지다.

선진국 국민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병원비나 학비를 마련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집의 소유권을 정부가 등기라는 수단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들은 그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것이고, 그걸 에르난 데 소토는 자산이 자본으로 전환되기 용이한 구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다수의 후진국은 주택의 소유권이 법으로 보장되는 등기 시스템이 없어 집을 가진 국민이 그 집을 활용할 방법이 없다. 똑같은 집이지만 선진국에선 그 집의 존재를 기반으로 다양한 자본 조달과 활용이 가능한데, 후진국의 집은 그냥 거주의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보니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지 못한다는 게 결론이다.

이런 설명은 직관적으로도 자명하다. 계약이 번번이 뒤집어지고 내 재산이 어느 날 갑자기 강탈당하거나 소유권을 부인당한다면 어떻게 투자를 하고 경제활동을 할까. 결국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기준은 제도의 안정성이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제도를 법제화하고 그걸 지키고 유지하다 보면 저절로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인데 그걸 실천하는 건 의외로 어렵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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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대출이자로 은행에 낸 돈 가운데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돌려준다고 한다. 은행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은행은 대출계약서에 적힌 대로 이자를 받았을 뿐인데 돈을 많이 벌었으니 좀 돌려주라는 정부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다. 은행은 사실상 공적 기관이며 정부가 부여한 라이선스가 수익의 원천이다. 마침 돈도 많이 벌었으니 그걸 어려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좀 돌려주는 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한다면 매우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 문제가 없는 대출계약서에 양측이 서명하고 약속한 것을 정부가 나서서 깨뜨린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별하는 유일한 기준인 계약의 안정성과 사유재산 보호가 대한민국에서는 수시로 무너진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작은 정부는 세금을 많이 걷어 정부가 돈을 많이 쓰는 구조의 비효율성을 없애보겠다는 개념이다. 개인들의 소득을 가능하면 개인들이 스스로 선택해 지출하도록 하는 것이 그 돈을 정부가 걷어 정부가 쓰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가 높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매우 합리적인 생각이지만 내놓는 정책들은 이런 취지나 슬로건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소상공인들을 도와야 한다면 세금을 더 걷거나 정부 부채를 더 늘려 그 재원으로 그들을 돕는 게 올바른 절차다. 세금을 더 걷거나 부채를 더 늘리는 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방향성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은행들을 윽박질러 소상공인들을 돕도록 강요한다면 그건 사실상 은행들에 특별세를 걷어 소상공인들에게 나눠준 것과 다르지 않다.

말로는 작은 정부를 외치고 겉으로는 감세와 균형재정을 주장하면서 돈이 필요할 때는 기업들의 옆구리를 찔러 기업에 정부가 할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 나쁜 정부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큰 정부가 낫다. 적어도 큰 정부는 은행이 번 돈을 소상공인들에게 이전하는 과정에서 계약의 안정성을 해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br>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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