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선 배상’ 압박하는 당국…은행권은 “먼저 안 움직인다”
  • 정윤성 기자 (jy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14 17: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융당국, 홍콩ELS 2차 현장검사 예고
불완전판매 입증 전 ‘선제 자율배상’ 압박
은행권은 ‘난색’…배임‧과징금 우려 탓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액이 5000억원을 넘어선 가운데, 금융당국이 오는 16일부터 2차 현장검사에 착수한다. 금융감독원은 자율배상을 압박하고 있지만, 은행은 난색을 표하며 당국 압박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금융당국 “자율배상 필요” vs 은행권 “선제적 배상 어려워”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오는 16일부터 주요 ELS 판매사(은행 5곳·증권사 6곳)에 대한 2차 현장검사에 돌입한다. 금감원은 지난 2일 마무리된 1차 검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토대로 각 사례를 유형화·체계화하는 것을 2차 현장검사의 주안점으로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당국은 이르면 이달 말까지 '책임 분담 기준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금융당국은 ELS 판매사들을 상대로 ‘선제적 자율배상’ 압박에 나설 전망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5일 “불법과 합법을 떠나 금융권 자체적인 자율배상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최소 50%라도 먼저 배상을 진행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선 당국의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사 결과와 구체적인 지침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선제적인 자율배상을 실시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이익도 크다는 입장이다. 은행들은 대형 법무법인과 계약을 체결하고 대응을 준비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의 지침이 나오거나 현장검사가 끝나야 무언가 결정할 수 있는 상태로 보인다”며 “현재로선 금융사가 독단적으로 자율배상안을 내놓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올 상반기에만 수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ELS 투자 손실이 최근 도마에 오르면서 판매사인 은행권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올 상반기에만 수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ELS 투자 손실이 최근 도마에 오르면서 판매사인 은행권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불완전판매 결론 안 나…선배상 시 수조원대 과징금 물 수도

금융사가 자율배상을 주저하는 이유론 배임과 과징금 우려가 꼽힌다. 자율배상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거나 주주의 이익과 상충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배임 소지가 불거진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또한 현행 자본시장법은 불완전판매 등 예외적인 사유가 아니라면 판매사가 투자자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1차 현장검사에서 불완전판매 사례가 확인됐다는 금융당국의 발표가 있었지만, 절차상 사실이라 결론 나지 않은 상태에서 명확한 조사를 통한 근거 없이 자율배상을 추진하긴 어렵다는 의미다.

수조원에 이를 수 있는 과징금도 부담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서는 판매자가 투자자에게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고 불완전판매한 경우 판매액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21년 금소법이 시행된 이후 금융사가 판매한 ELS 규모가 17조1000억원이므로 이에 대해 최대 50%의 과징금이 매겨질 수 있는 셈이다. 은행이 선제적인 자율배상을 실시할 경우 불완전판매 정황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향후 관련된 법적 다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율배상을 실행했을 때 주주나 채권자로부터 배임이나 금융사가 떠안을 부담에 대한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라며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무법인 등을 통해 법적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의 책임 분담 기준안이 나와도 실제 배상이 얼마나 걸릴지는 미지수다. 투자자들의 배상 수준이 제각각이고 사례도 다양해서다. 금융당국은 1차 검사에서 확인된 불완전판매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한편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판매한 홍콩H지수 기초 ELS 상품 만기 도래 규모는 지난 7일까지 973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고객이 돌려받은 돈(상환액)은 4512억원으로 평균 손실률이 53.6%(손실액 5221억원)에 이른다.

홍콩H지수 ELS는 가입 후 만기가 도래했을 때 홍콩H지수가 가입 당시의 70% 이상이면 원금과 이자를 받는 파생상품이다. 하지만 지수가 70% 이하로 떨어질 경우 하락률에 따라 원금을 잃게 되는 구조다.

올해 전체 15조4000억원의 홍콩H지수 ELS가 만기를 앞두고 있다. 홍콩H지수가 반등하지 않고 현재 흐름을 유지할 경우, 올 한 해 전체 손실액은 7조원 안팎까지 불어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