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생명력의 원천을 만나다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5 14:00
  • 호수 179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소설 진수 보여준 츠쯔젠의 《가장 짧은 낮》

츠쯔젠은 중국 문학에서 가장 위치가 확고한 소설가 중 한 명이다. 아직 국내에는 소수의 마니아층만 가진 작가지만 츠쯔젠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2011년 장편소설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을 시작으로 《백설까마귀》 등 장편 3편과 단편집 2권이 번역됐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된 책은 작가의 단편들 가운데 진수를 모은 《가장 짧은 낮》이다.

이번 책에 수록된 단편은 표제작을 비롯해 16편이다. 단편의 생명력은 소재에서 나온다. 장편처럼 스토리텔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츠쯔젠의 단편은 소재나 스토리텔링 모두가 인상적이다.

첫 소설 《깨끗한 물》은 설날을 앞두고, 가족이 소년 톈두의 방에 만든 목욕 대야에서 차례로 목욕을 하는 춘제(春節·중국 최대 명절) 전날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한국도 과거 명절 전에 비슷한 방식으로 목욕을 했기 때문에 어떤 소재보다 사실적인 느낌이다. 이제 어린애처럼 돼가는 할머니부터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엄마, 아빠의 목욕까지. 소년의 눈에 뿌연 수증기로 가득 찬 목욕은 정겨운 소재다.

표제작 《가장 짧은 낮》은 인상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은 아들이 마약으로 인해 감호시설에 들어간 후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가방 의사’를 하는 사람이다. 동북 3성을 주유하며 수술을 하는 그는 다롄 근처의 시골에서 항문 수술을 하고, 집이 있는 하얼빈으로 향하는 고속철도를 탄다. 주인공은 과연 무사히 그날 안에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

2016년 아시아 청년 작가 단편집에 수록돼 츠쯔젠 마니아를 만든 계기가 된 《돼지기름 한 항아리》도 재수록됐다. 러시아 접경 벌목지구대에서 일하는 남편 라오판의 편지를 받고, 세 아이와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 집을 정리하는 주인공은 도살업자 훠다옌과 이야기해 집을 돼지기름 한 항아리와 바꾸어서 출발한다. 아름다운 항아리와 그 항아리가 만든 에피소드가 한 가족에게 주는 흥미로운 결과는 광팬을 만들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가장 짧은 낮》에 수록된 모든 작품에는 중국 북방 서민들의 강인한 삶의 에너지와 소박하고 순수한 심성, 온갖 재난과 곤경을 관통하는 인성의 에너지, 외부세계의 냉혹함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인간 내면세계의 온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명에 대한 존중이 가득 담겨있다. 

가장 짧은 낮 │츠쯔젠 지음│글항아리 펴냄│ 568쪽│2만3000원
가장 짧은 낮 │츠쯔젠 지음│글항아리 펴냄│ 568쪽│2만3000원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