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훈의 백세호흡③] 만병의 시작은 코로부터 온다(上)
  • 이태훈 이태훈한의원 대표원장 (l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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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는 염증을 방어하는 면역 장기(Immunity Organ)
코 구조 붕괴로 발생한 비염, 심할 경우 대인기피증 올수도

“진정한 부(富)는 금과 은이 아니라 건강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한 말이다. 건강은 이제 다가오는 백세시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건강 상식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객관적인 근거 없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증상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뇌피셜’은 오히려 건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악화시키게 된다. 시사저널은 이태훈 이태훈한의원 대표원장의 기고를 통해 건강하게 백세시대를 맞이할 팁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코가 호흡과 면역 측면에서 얼마나 놀라운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2편 ‘코는 생명의 통로’에서 소개했다. 코는 일상생활에서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시간인 0.25초(1/4초) 안에 먼지 세균 바이러스를 80%나 제거하는 ‘공기면역’의 주인공이다.

‘음식면역’의 핵심인 장(腸)도 면역세포의 70-80%를 보유한 채 음식물과 호흡 시에 유입되는 유해물질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하루 10여 차례 먹고 마시는 음식물의 유해성과 하루에 약 2만 회에 걸쳐 들어오는 공기 독성의 위급성은 치명도 측면에서 막상막하인 듯하다.

하지만 1분만 산소공급이 되지 않아도 200만 개의 뇌세포가 죽어나가고 3분 정도 산소공급이 정지되면 사망을 향해 치닫는, 위기감이 훨씬 더 찌릿하게 느껴지는 것이 호흡바라기인 필자의 편견일까.

사진설명_서울의 한 병원에 비염이나 알레르기 증상 치료를 위해 방문한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병원에 비염이나 알레르기 증상 치료를 위해 방문한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는 열려있어야 건강하다

코의 숨길은 ‘상중하 비도’(上中下 鼻道)라고 부르는 세 개의 통로로 돼있다. 이 통로를 지나는 먼지나 세균, 바이러스 등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끈적끈적한 점막으로 덮여있다. 세 개의 통로는 비행기 날개 구조의 비갑개(코선반, 상중하)에 의해 구분된다. 이 구조는 점막의 표면적을 넓혀주면서 코안다 효과(Coanda Effect, 물체 표면 가까이에서 형성된 기류가 압력 차이로 인해 물체 표면에 붙는 듯한 형태로 흐르는 현상)를 발생시켜 이물질의 포획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준다.

또한 콧방울(콧볼) 내부에 있는 ‘비밸브(nasal valve, 열고 닫음을 통한 공기량 조절)’를 지나는 공기는 회전이 걸려 점막에 골고루 접촉하면서 먼지 세균이 효과적으로 제거되고, 온도와 습도를 최적화시킨다.

코 내부에서 분비되는 면역글로불린(IgA, G)과 라이소자임, 락토페린, 비만세포, 거식세포, 백혈구, 호산구, 뮤신 그리고 약 3000만 마리의 공존세균이 협력해서 코의 염증을 지속적으로 방어하는 공기면역에 기여한다. 생명 유지에 절대적인 산소-이산화탄소의 완벽에 가까운 환기도 가능해진다. 이 과정들을 한 마디로 줄이면 ‘코가 열려있으면 코가 알아서 한다’이다.

코안다 효과(Coanda Effec)는 코 점막의 표면적을 넓혀주면서 이물질의 포획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준다.
코안다 효과(Coanda Effec)는 코 점막의 표면적을 넓혀주면서 이물질의 포획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준다. ⓒ이태훈한의원 제공

비행기 날개와 비슷한 코의 구조

사회 각 분야에서 남들 눈에 띄진 않지만, 묵묵히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 즉 ‘언송 히어로(unsung hero, 소리 없는 영웅)’들이 곳곳에서 우리 모두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다. 단지 우리가 잊은 채 살아갈 뿐이다.

인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보다 고등하다. 드러나지 않는 영웅(헌신적인 존재)들로 가득한, 신비로움이 살아있는 협동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모든 조직이 전력을 다해서 건강이라는 한 목표를 향해 최선의, 최상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치 당연한 듯이 진행되고 있는 이 절묘한 하모니(균형과 조절)의 가치와 중요성은 관련 질병 발현과 고통으로 이어질 때쯤 알게 된다.

30여 년 전 ‘공기면역의 80%’라는 절대적 지분을 소유한 코의 광범위한 염증성 변화, ‘비염’에 대해 처음으로 매력을 느꼈던 때가 떠오른다. 타 질환들도 구조․기능적 균형감을 잃어버린 결과로 발생하지만, 인체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터프 가이, 코의 대반전은 허무하기까지 했다.

진료실 문이 열리며 연로하신 어머님이 40대 중반의 미혼(未婚)인 아들의 등을 떠밀면서 들어온다. 예전에는 코가 큼직하기만 하면 ‘복(福)코’라고 불렸지만, 이 환자는 콧볼 바로 윗부분이 부어있었다. 코 내부 용적이 적어지면서 코의 크기를 강제로 키우려는 방어기제가 작동된 것이다. 또한 dog-oil(?)로 번질거리며, 움푹 파인 땀구멍이 너무나 많은 ‘병(病)코’(필자가 만든 명칭)였다.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니 비중격(코를 좌우로 나누는 중간벽)은 편위(한쪽으로 휘어져있음)돼 있고, 사방에 염증 흔적과 깊은 손톱자국이 곧 피를 쏟을 듯이 갈라져있다. 디지털 체열진단기(DITI) 검사에서는 부비동염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알러지성비염과 혈관운동성비염이 공존하는, 심한 비염 환자였다.

음향비강통기도(Acoustic Rhinometry) 검사상 좌우 코 면적이 형편없이 좁아져 있다. 코가 막혀서 입호흡을 오래 한 탓에 입술은 갈라져있고 돌출돼 있으며 색깔은 검게 변해있다. 안구는 충혈상태로 각막 표면이 거칠다. 입호흡으로 인해 수면무호흡이 생겨 수면상태는 엉망이고 새벽까지 게임과 유튜브를 보다가 낮에는 졸음폭탄이 쏟아지는 주간기면(낮에 졸림증)에 시달린다.

두통과 만성 피로로 커피와 술을 자주 마시는 등 지면에 모두 적기 어려울 정도의 증상들로 가득했다. 대인기피증이 심해 대화 중 눈을 피하고 말끝이 불분명하다. 엄마와의 눈빛교환 시에만 예리한 불꽃이 튀는 소위 ‘캥거루족(나이 들어서도 부모 품을 떠나지 못하는 청년들)’의 전형이다. 이 환자는 비염이 심해져 전신질환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좌우 코 면적이 좁아질 경우 두통과 만성 피로뿐 아니라 대인기피증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사진은 음향비강통기도 검사 결과 모습. ⓒ이태훈한의원 제공
좌우 코 면적이 좁아질 경우 두통과 만성 피로뿐 아니라 대인기피증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사진은 음향비강통기도 검사 결과 모습으로 왼쪽이 정상이다. ⓒ이태훈한의원 제공

코의 숨길이 막히면 생기는 일

이 환자의 문제는 다양한 검사로 정확한 진단 결과를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있지만, 단 한 마디로 설명이 가능하다. ‘코의 숨길이 막혀 있다.’ 코의 숨길이 막혀있음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코 구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숨길은 인체의 여느 구조와 마찬가지로 3차원으로 돼있다. x축은 코 밑바닥에 해당하는 구개(입 덮개), y축은 비중격(콧구멍을 좌우로 나누는 벽)과 비갑개(코선반), 코연골(비익, 측비)의 단면적(위에서 아래로 자른 면적)이며, z축은 코 입구에서 뒤(상기도)까지의 터널 공간 전체를 말한다.

쉽게 말해 콧구멍 전체의 면적을 ‘숨길(비도)’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구성하는 뼈들은 연골이나 얇은 막성골(membranous bone, 막처럼 얇은 뼈)로 이뤄져 있어 탄력과 복원력이 매우 뛰어나다.

구조 기능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코 숨길이 손상되기 위해서는 강도(strength)를 뛰어넘는 충격(타박 낙상 교통사고), 타고난 모양새인 유전(안면구조), 코를 감염시키는 잘못된 습관(코 후비기), 코 숨길 유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콧볼 축소수술 그리고 코숨길을 막아서는 부비동 염증 등의 유발 인자 등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다음 편 ‘만병의 시작은 코로부터 온다(下)’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이태훈 이태훈한의원 대표원장
이태훈 이태훈한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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