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참패한 ‘2012 총선’과 평행이론?…차이점도 있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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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민주, 승리 자신했지만 ‘106석 패배’…데자뷔
①정권심판론 안주 ②공천 파동 ③與 차기주자와 대결 유사
①현역프리미엄 ②이재명 팬덤 ③박근혜-한동훈 차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친명횡재‧비명횡사’ 공천 논란으로 대혼돈을 겪고 있는 가운데, 2012년 총선 당시 ’106석 패배‘의 악몽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당 안팎으로 그 당시와 유사한 위기 신호가 포착되면서 당내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2012년과 나란히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섣부른 비관론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명박 정권 4년차인 2012년 4월11일 치러진 19대 총선에선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이 152석으로 과반 득표에 성공했다. 반면 제1야당이던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은 127석에 그치며 쓴 패배를 맛보았다. 총선 직전까지 승리를 자신하던 민주통합당의 충격은 배가됐다. 이후 기세가 꺾인 민주통합당은 같은 해 말 치러진 18대 대선에서도 패배하면서 긴 암흑기를 갖게 됐다.

 

MB심판 의존‧통진당과 연대…‘박근혜 비대위’에 열세

“그때랑 너무 비슷하다.” 최근 정치권에선 2012년과 지금 민주당의 상황이 데자뷔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장 먼저 나오는 이유는 ①정권심판론에 대한 안주 분위기다.

당시 전반적인 여론은 민주당에 유리했다. 집권 말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줄곧 20%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을 밑도는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총선 전략으로 ‘MB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민주당은 당시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씨의 돈뭉치 의혹 등 각종 비리를 지적했다. 총선 전 2월경 ‘MB 비리 특위’를 가동했고 검찰의 부실 수사를 비판했다. 현재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중심에 세우고 윤석열 정권 심판을 외치는 모습과 유사하다.

총선 6개월 전 치러진 ‘보궐선거’에서의 승리도 2012년 민주당의 자신감을 키운 요인이 됐다. 2011년 10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물러나고 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인 박원순 후보가 당선됐다. 정치권에선 이듬해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이 패배할 것이란 관측이 쏟아졌다. 지난해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를 꺾었을 때와 시기적‧내용적으로 매우 비슷하다.

2012년 민주당은 ‘정권심판론’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야권연대’를 추진하기도 했다. 일부 지역구까지 양보하며 당시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이뤄 ‘반(反)이명박’ 세력 결집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 일부 의원과 지지층이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 또한 오늘날 진보당과 비례연합정당을 구축한 민주당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천’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②계파 간 갈등도 12년 전과 지금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당시 한명숙 대표는 “친노(親노무현), 비노(非노무현) 구도는 없다”며 통합을 강조했지만 공천 과정에서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친노 위주 공천이 이뤄지면서 당시 비주류였던 비노 구(舊)민주계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복수의 지역에서 공천이 배제되자 ‘공천 학살’을 주장했고, 끝내 탈당해 정통민주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최근 민주당 내 ‘문명(친문재인-친이재명) 갈등’과 연쇄 탈당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당으로부터 하위평가자로 지목된 비명 송갑석 의원은 “2012년 당시에도 당내 경선에서 광주 서구갑 지역구는 느닷없이 여성전략지역이 됐고, 저를 포함해 1·2등을 달리던 후보는 배제됐다”며 “(지금 상황은) 당시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정권심판론’만 믿고 있던 민주당은 여당이 차기 대권주자를 앞세워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꾸리면서 더욱 기세가 꺾였다. 2012년 여당인 새누리당은 여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박근혜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경제민주화’ 등을 앞세우며 중도 표심을 노렸고 ‘정권심판’이라는 총선 성격을 희석시켰다. 대통령의 저조한 지지율 속 국민의힘이 미래권력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등판시킨 것도 이와 유사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박근혜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여당 내 야당’이었던 박근혜, 여전히 ‘친윤’ 한동훈

다만 12년 전 민주당과 지금의 민주당 사이엔 차이점도 존재한다. 따라서 106석으로 참패한 당시 상황을 거듭 소환해 총선 전 기세를 꺾어선 안 된다는 경계령도 나온다. 당시에 비해 지금 민주당이 처한 상황과 조건이 한층 낙관적이라는 지적이다.

그 이유 중 하나로 ①현역 프리미엄이 꼽힌다. 보통 선거에선 지역구 현역 국회의원들이 조직력과 인지도 면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곤 한다. 2012년 총선 전 민주통합당 현역 국회의원 수는 81명에 불과했다. 현역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지역이 극히 적었던 반면, 지금 163석을 가진 민주당의 경우 전국 곳곳에서 현역 프리미엄이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이 갖은 내홍 속에서도 본선에서 여당에 유리할 거라고 전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②당 대표의 팬덤도 12년 전과의 차이로 거론된다. 2012년 총선을 이끈 한명숙 대표의 경우 차기 대권 주자도 아닐뿐더러 자체 세력도 부족했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계파가 당 주류를 이루고 있는 데다 대선 전부터 이어진 강성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친명계를 중심으로, 이 대표를 향한 이러한 지지세가 총선에서 어느 정도 승세를 유지해줄 거란 기대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과 대척점에 선 ③박근혜와 한동훈의 차이도 작지 않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뚜렷한 차별화를 이루며 ‘여당 내 야당’ 입지를 굳혔다. 강한 그립감으로 당의 정강·정책을 개편하고 강력한 총선 전권을 행사했다. 이 전권을 바탕으로 현역 의원들을 대거 물갈이하며 ‘혁신 이미지’를 꾀했다. 이러한 추진 배경엔 당시가 이명박 정부 임기 말이었던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그에 비해 윤석열 정부 전반기에 당을 이끌게 된 한동훈 위원장은 여전히 ‘친윤’ ‘윤석열의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공천에서 ‘용산 낙하산’이 크게 나타나지 않으면서 한 위원장이 어느 정도 독자적인 장악력을 가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현역들을 대거 살리고,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의혹’ 등 용산 이슈에 소극적인 모습을 유지하면서 12년 전 박근혜 위원장과 분명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안팎에선 2012년의 악몽을 재현하지 않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금의 공천 갈등을 해소하는 일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27일 “민주당은 2012년 뼈아픈 패배 후 수년 간 내홍과 분당과 패배를 겪으며 암흑기에 빠졌다”며 “지금 당 분위기를 봤을 때 그 어두운 길의 초입에 들어서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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