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혼 금지’ 4촌 이내로?…“인륜 말살” vs “시대상 반영” 충돌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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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유림, 가족관계 붕괴 우려하며 강력 반발
혼인 금지 범위 과도하다는 지적도…법무부 “신중 검토”
10월26일 유남석 당시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위헌 제청 및 권한쟁의 심판 선고 시작에 앞서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10월26일 유남석 당시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위헌 제청 및 권한쟁의 심판 선고 시작에 앞서 자리에 앉아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근친혼 허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법무부가 추진한 연구용역에 친족간 혼인 금지 범위를 기존 ‘8촌 이내’에서 ‘4촌 이내’로 축소하자는 제안이 담기면서다. 시대 흐름에 따른 변화를 혼인 관련 법률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과 가족 관계 말살이라는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2일 정부와 성균관에 따르면, 법무부가 최근 실시한 연구용역에서 근친혼 금지 범위를 기존 8촌 이내 혈족에서 4촌 이내로 축소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제안이 실제 법제화되면 5촌 이상 혈족 간 혼인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5촌은 부모의 사촌이나 본인 사촌의 자녀를 의미한한다. 현행법상 근친혼 여부 기준이 되는 8촌은 ‘나’의 부계를 기준으로 고조할아버지가 같은 자손을 의미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0월27일 경북 안동 병산서원 누각 만대루에서 유림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0월27일 경북 안동 병산서원 누각 만대루에서 유림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성균관·유림 “5촌 간 혼인? 즉각 중단해야”

‘5촌 간 혼인 허용’ 가능성이 거론되자 성균관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최종수 성균관장은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5촌까지 혼인을 허용하는 건 인륜을 말살하는 것”이라며 근친혼 허용 금지 범위 조정은 “절대로 있어선 안될 일”이라고 단언했다.  

최 관장은 “흔히 혈족은 부모·자식과 형제·자매를 말하고, 인척은 혈족의 배우자를 의미하는데 가장 가까운 관계는 부모, 3촌, 그 다음은 5촌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5촌 혈족의 혼인이 허용되고 그 부부가 아이까지 낳으면 가족관계가 전부 뒤죽박죽 얽혀버린다”며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족관계 규범이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 관장은 근친혼 금지 범위 축소로 촉발된 전통규범 붕괴가 한국인의 일상과 사회문화 전반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대상 변화에 맞춰 혼인 관련 법률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최 관장은 “사회가 다변화되고 친인척 간 왕래도 줄어든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남이 된 건 아니다. 설이나 추석 명절에 여전히 수천만 명씩 고향을 찾아가 친인척을 만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전화나 문자 등 연락 빈도는 더 높아졌다”며 “가족으로서 유대감은 여전히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고 짚었다.

성균관 및 유도회총본부와 전국 유림도 성명을 내고 “가족을 파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근친혼 기준을 급변경할 경우 “인륜이 무너지고 족보가 엉망이 되며 성씨 자체가 무의미해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미혼인구 증가와 노동공급 장기추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미혼율은 2020년 기준 31.1%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근친혼 허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픽사베이

혼인 제도에 시대상 반영 필요 목소리도 

그러나 한국도 시대 변화를 반영해 근친혼 범위 확대 필요성을 검토할 때가 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2020년 ‘8촌 이내’ 친족 간 결혼을 금지한 것이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A씨는 국내 혼인 제도가 개인의 결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A씨는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은 4촌 이상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허용하고,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는 3촌 이상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허용한다”며 “8촌 이내 혈족의 혼인을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주장했다. 

법무부의 연구용역 출발점이 된 헌법재판소 결정도 변화하는 시대상을 일정 부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헌재는 2022년 10월 현행 민법 일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법무부는 친족 간 혼인 금지·무효 법령 재검토에 착수했다. 

현행 민법은 ▲ 8촌 이내의 혈족은 결혼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809조 1항) ▲ 혼인한 경우 무효(815조 2호)라고 규정한다. 헌재는 ‘혼인한 경우 무효’라는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8촌 이내 혼인 금지 자체는 합헌이지만, 이미 결혼한 경우까지 일률적인 잣대를 적용해 무효화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는 게 당시 헌재 결론이었다. 

법무부로부터 연구용역을 위탁 받은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조항에 한정하지 않고 연구 범위를 근친혼 전반으로 확장, 친족 간 혼인 금지 범위를 4촌 이내로 축소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 교수는 “5촌 이상의 혈족과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을 유지하는 경우가 현저히 감소했다”며 근친혼 허용 범위 확대 필요성을 제기한 배경을 설명했다. 5촌 이상 가족과의 관계가 상당 부분 단절된 점을 감안해 법률적 혼인금지 조항 역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 교수는 근친혼 금지 범위를 한꺼번에 축소할 경우 빚어질 혼란을 감안해 현행 8촌 이내에서 6촌, 이후 4촌 이내로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다만 점진적 축소가 오히려 위헌 논쟁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만큼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근친혼 허용 범위 조정 가능성을 두고 논란이 커지자 법무부는 지난달 28일 입장문을 내고 “개정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법무부는 “친족간 혼인 금지에 관한 기초조사를 위해 다양한 국가 법제 등에 대한 전문가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등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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