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이요? 아직…” 與野 ‘벼락 공천’의 그림자
  • 박성의·변문우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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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연고 없는 후보들 부랴부랴 ‘공약 과외’ 받기도
‘낙하산 낙인’ 후보 캠프 ‘당협 지원 외면’에 전전긍긍
ⓒ일러스트 김경주
ⓒ일러스트 김경주

“공약이요? 이제부터 공부해봐야죠.”

지난 28일, 공천이 확정된 A후보에게 준비 중인 공약을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는 지역 현안에 대해선 “연고가 없어서 잘 알지 못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아직 캠프도 제대로 꾸리지 못해서 정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총선까지 40여 일, 254개 지역구의 대진표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본선행을 확정지은 여야 후보들은 저마다 ‘준비된 일꾼’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취재 결과 대표 공약은커녕 지역 현안조차 파악하지 못한 후보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역과 별다른 연고도 없이 ‘전략공천’을 받은 후보나 지도부 판단에 따라 지역구를 갑자기 옮긴 후보들에게 이 같은 특징이 두드러졌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이날 오후 1시30분 정개특위 전체회의를 열어 선거구 획정안,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공개된 여야 합의 획정안에 따르면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은 기존 253명에서 254명으로 1석 늘었다. 대신 비례대표가 1석 줄었다.

시민들의 관심은 ‘우리 동네’에 어떤 후보들이 나서느냐에 쏠려있다. 254개 지역구에 어느 당, 몇 선의, 누가 오느냐에 따라 향후 4년 간 그 지역의 환경도, 개발 속도도,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 이에 여야 모두 지역과 후보의 ‘연결고리’를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 지역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토박이거나, 당협에서 일했던 후보일수록 ‘지역 맞춤형’ 공약을 내세울 능력도, 명분도 갖출 수 있어서다.

문제는 지역의 미래를 위해 나왔다는 후보들 중 아직 지역의 과거, 현재에 대해 문외한인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 당이 출마 지역을 ‘내리 꽂은’ 전략공천자거나, 당 상황에 따라 출마지를 갑자기 바꾼 후보들이다.

최근 지역구를 바꾼 B후보 측은 최근 몇 주간 지역 당협 관계자들에게 현안을 ‘집중 과외’ 받고 있다고 했다. 해당 지역에서 학교를 졸업한 것도, 회사를 다닌 것도 아니기에 지역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서다. 그는 출마 포부를 묻자 “OO의 미래를 개척해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사는 동네로 만들겠다”고 답했다.

일부 지역구의 경우 이 같은 ‘당협 과외’ 조차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이 내려 보낸 ‘낙하산 공천자’라는 낙인이 찍힌 경우다. 이 탓에 당협 관계자들이 고의적으로 해당 후보 측의 연락을 회피하거나,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낡은 자료를 인수인계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단수공천을 받았던 C의원은 “지역 당협관계자가 나보고 ‘굴러들어온 돌’이라더라. 그러면서 공약도 알아서 만들어보라고 연락을 끊었다”며 “당협이 돕지 않으니 답답했다. 밤을 새가며 겨우겨우 ‘벼락치기 공약’을 만들어 본선에 임했다”고 전했다.

지역을 오래 지킨 다선 의원이라고 참신한 공약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일부 의원실의 경우 중앙 정치 활동과 바쁜 스케쥴 등을 이유로 대표 공약조차 아직 선별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상대 후보가 확정되기 전까지 공약을 발표하지 않겠다는 구상인데, 이 같은 ‘깜깜이 공약’에 지역 유권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서울 노원구에서 임대업을 하고 있는 김아무개(66)씨는 “4달도 아니고 4년을 넘게 일할 사람을 뽑는 건데 한 달 전에나 공약을 내놓고 토론하고 하는 건 너무 급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차아무개(37)씨는 “정치에 원래부터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 더 없어졌다”며 “정권을 막론하고 삶은 늘 힘들었다. 후보들이 정말 지역 개발에 얼마나 깊은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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