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방치됐다”…‘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절규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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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놓인 다가구주택 피해자, 법 개정 촉구
대책위 "정부 특별법 무용지물…피해자 계속 발생”
3월6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피해자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사저널 강윤서
3월6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피해자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사저널 강윤서

정부가 전세사기 특별법을 통해 피해자 구제에 나섰지만 제도적 허점이 많아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법망에서 배제된 ‘다가구주택’ 전세사기는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희망조차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전세사기 대책위원회는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피해자 기자회견’을 열고 다가구주택에 대한 지원책 마련을 촉구했다. 피해자들은 “정부가 다가구와 다세대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만든 법의 사각지대에서 버텨왔다”고 호소했다.

다가구주택은 법률상 단독주택이지만 한 집에 최대 19가구까지 거주할 수 있다. 다가구주택은 개별 호실별로 등기가 나오는 다세대주택과 달리, 등기부상 집주인이 1명이어서 사기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 

다가구주택 세입자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순서에 따라 임차인 간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천호성 법무법인 디스커버리 사기전문 변호사는 “세입자 입장에선 본인보다 선순위 임차인들 보증금 합계 금액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현행법은 임대인 동의를 받아야만 임차 보증금의 합계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인중개사도 임대인 동의 없이 임차 보증금의 합계를 확인할 수 없어 임대인이 금액을 속이면 모두가 속는 구조”라며 “다가구주택 피해자 상당수가 이런 방식으로 사기를 당했다”고 지적했다.

천 변호사는 “개정된 주택임대차법 시행령에도 임차 보증금 합계를 확인할 때 ‘임대인에게 동의할 의무가 있다’만 명시하고 처벌 규정은 없다”며 “여전히 선제적 확인 방법이 없어 계약을 체결하고 잔금을 치른 뒤에야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다가구주택 피해자, 보증금 회수 방법 無”

대전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피해자인 조원희(32)씨는 “대학원 시절부터 저축해서 모은 5000만원과 대출 받은 1억원으로 전셋집을 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대인이 다가구주택을 무자본으로 건축하고 관련 일당이 합심해 2000세대, 30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전세 사기를 벌였다. 조씨가 거주 중인 건물도 포함됐다.

조씨는 “불철주야로 알아봐 겨우 피해자 인정을 받았건만 다가구주택 피해자는 경매에 노출되는 순간 손발이 묶여 보증금을 회수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정부의 특별법은 대출 빚을 빚으로 해결해 주면서 피해자들을 우롱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전세사기 피해자이자 경산전세사기대책위 공동위원장인 석진미씨도 “단란하게 세 식구가 모여 저녁식사 하는 일상은 이제 상상조차 안 된다”며 “7살 딸에게 너무 미안해 억장이 무너진다”고 토로했다. 

석 위원장은 “(경북) 경산 피해자들은 다가구주택 중심이며 대부분 젊은 청춘들”이라며 “현 법안에는 다가구주택 내용이 부족해 저희에게 아무 실용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액임차인의 보증금을 보호하기 위한 최우선변제금의 권리조차 받지 못한다”며 “다가구주택은 거주지에서 쫓겨나야 하는 신세”라고 했다. 이어 “개인 간 거래라며 선구제를 반대하는 정부와 여당에 대해 피해자들은 더는 참고 기다릴 수 없다”며 “오늘도 경매로 인해 집단 퇴거해야 하는 다가구주택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장선훈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 부위원장은 “대전과 경산의 다가구주택 피해 건물 수는 고작 350채도 되지 않지만 국민 수는 3300명이 넘는다”면서 “10배수에 가까운 피해자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정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전과 경산에 있는 다가구주택은 전국 다가구주택의 40%도 채 되지 않는 규모”라며 “아직 60% 이상의 다가구주택은 범죄에 노출된 채 여전히 방치돼 있다”고 덧붙였다.

3월6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3월6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대책위, 특별법 개정안 통과 촉구

전문가들은 다가구주택 관련 법 개정과 행정시스템이 오랜 기간 방치됐다고 비판했다. 1주택임에도 19명의 임차인과 임대차 계약을 맺는 기이한 구조로 인해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구제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운영위원장인 김태근 변호사는 “현행법으로는 다가구주택의 선순위 세입자가 이의 신청할 경우 주택에 대한 경매절차를 중지할 수 없고, 규모상 세입자의 우선매수권 행사도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또 “LH공사는 선순위 담보권이 없는 다가구주택 매입 계획을 발표해 선순위 담보권이 있는 주택은 매입될 수조차 없는 상태”라면서 “실제 매입한 사례도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책위는 최소한의 피해 회복을 위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개정안에는 최우선변제금 상당의 전세금 채권 선구제 방안과 국자산관리공사의 선순위 채권 매입을 통한 다가구 주택에 대한 경매 절차 연기,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대한 주택관리 방안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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