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빈자리 채워가는 아내 나발나야, ‘反푸틴’ 선봉에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9 10:00
  • 호수 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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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사망 후 ‘포스트 나발니’ 구심점으로 급부상
‘反푸틴’ ‘반전평화운동’ 러시아 야권 세력의 리더로 여성들 나서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남동쪽에 위치한 보리소프 공동묘지에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였던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이 3월1일 여기서 열렸기 때문이다. 스탈린 시대부터 악명 높은 시베리아 감옥에서 의문사를 당한 나발니를 추모하기 위해 모여든 러시아 시민들은 “전쟁 반대”를 외치며 행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러시아 및 세계 주요 도시에도 자신들의 “희망”이자 “영웅”이었던 그를 추모하는 임시 분향소들이 생겨났다.

BTS 팬이라고 소개한 시민 올가는 필자에게 “나발니 죽음 이후 국내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며 “그의 죽음은 명백한 현실을 직시하길 거부했던 이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 중서부에 위치한 바시코르토스탄공화국에서 정치범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러시아 인권단체 ‘OVD info’에 의하면 현재까지 정치범은 3424명으로 집계된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 나발니의 부인 율리야 나발나야가 2월19일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무장관 회의에서 연설에 앞서 조셉 보렐 EU 외교정책 수장과 악수하고 있다. ⓒAP 연합

대다수 야권 인사, 장기 수감·해외 망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직후 사임했던 러시아의 베테랑 외교관 보리스 본다레프는 나발니의 죽음과 관련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 죽음은 푸틴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다. 그가 자연사로 죽었든 감방에서 살해당했든 그를 평생 감옥에 가둬두고 그곳에서 죽게 만들려는 명백한 의도가 보인다”며 “아직까지는 그의 사망이 러시아 정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잠재적 영향은 장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진보 성향의 독립매체 자코뱅은 알렉세이 나발니의 정치적 유산에 대해 “대중을 조직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평가했다. 즉 나발니는 2018년 대선에선 출마조차 불허되었으나 당시 15만 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았는데 이는 소련 붕괴 이후 최대의 풀뿌리 정치조직이었다. 전국의 캠페인 본부들은 청년 정치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정치에 무심했던 대중에게 정치 참여만이 푸틴 정권에 대한 대안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2021년 1월 그가 베를린에서 독약중독 치료를 마치고 모스크바로 귀환한 후 수감되자 수만 명이 그의 석방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으나 가혹하게 진압되었다. 자코뱅은 당시 푸틴이 이미 우크라이나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고 반대 세력 제거는 필수적이었다고 논평했다. 2015년 야권 정치가 보리스 넴초프가 살해당한 것도 그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침공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나발니는 과거 크림반도 합병에 대해 민족주의적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았지만,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 대해서는 초기부터 수감 중에도 반전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2022년 2월 “이 전쟁을 시작한 사람들은 도적이다. 그들이 도둑질을 계속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폭격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가 반부패재단을 창설한 것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전 의견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전쟁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해 3월에는 전쟁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대응이 “21세기 역사에서 러시아의 위치를 크게 규정할 것”이라며 반전시위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가 지속적으로 “자기 개선”을 해온 정치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러시아 야권의 구심점이었던 나발니가 역사의 뒤로 사라진 지금, 자국의 민주화와 반전평화운동의 과제를 동시에 짊어진 러시아 야권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현재 모든 주요 야권 인사는 장기 수감되어 있거나 해외에 망명 중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나발니의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한 그의 아내 율리야 나발나야가 새로운 구심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데 이미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는 모양새다. 그는 남편 사망이 알려진 2월16일에도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호소했고,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 치하노우스카야와도 만남을 가지며 국제연대의 폭을 넓혔다. 또한 2월28일 유럽의회에서 연설도 하며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그는 유럽연합의 구태의연하고 비효율적인 대러시아 대응을 “따분하다”고 꼬집으며 자신의 남편처럼 혁신적인 방식으로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나발나야, “더 치열하게 싸우자” 시민들 독려

이 자리에서 푸틴은 조직범죄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범죄조직과 싸우는 방식을 적용할 것을 강조했다. 즉 서방에 있는 푸틴과 측근의 금융 조직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수많은 러시아인과 협력할 것을 제안해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남편의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발표한 그의 유튜브 영상은 600만 회 이상 조회되었고, ‘좋아요’ 반응도 약 60만 개를 기록했다. 나발니가 3년간 고문을 많이 당했다고 주장하며 “함께 분노하며 더 치열하게 싸우자”고 시민들을 독려했다. 또한 서방에 3월 러시아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독일에서 ‘프리 러시안’을 공동 창립한 시민 나탈리야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는 야권 연합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면서 “나발나야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러시아 야권에는 강한 여성들이 있지만 나발나야만큼 눈에 띄는 여성은 아직 없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나발니 사례처럼 남편을 대신해 부인이 나서는 닮은꼴이 많다. 예를 들어 언론인 출신 야권 활동가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와 그의 아내 예브게니야 카라무르자의 삶이 그런 경우다. 카라무르자도 독약 테러를 당하고 살아남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비판으로 인한 반역죄 등 날조된 혐의로 25년간 시베리아 감옥에 수감 중이다. 그의 아내는 3월1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을 어렵사리 만나며 남편과 다른 정치범들을 위해 열심히 구명활동을 하고 있다.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야권의 주요 단체들은 약 9개 그룹으로 요약된다. 이 중 ‘러시아 반전위원회’는 전 석유 재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수감 중인 카라무르자, 전 체스 세계챔피언이자 정치 활동가인 가리 카스파로프 그리고 저명한 망명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우크라이나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고 러시아 난민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등 활동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반전평화운동 중 가장 열성적이고 전 세계적으로 연대체가 가장 많은 단체는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FAR)’이다. 러시아 야권 세력 중 드물게 우크라이나·벨라루스·러시아가 함께하는 국제연대를 보여주는데 한국에도 지부가 있다. 전통적인 시위 방식을 뛰어넘는 다양한 비폭력 시위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러시아에서 유통되는 지폐에 반전 구호를 적고, 공공장소에 반전 예술작품을 설치한다든지, 거리에서 꽃을 나눠주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식이다. 또 반전 신문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징집률이 백인계 러시아인들보다 훨씬 높은 소수민족들도 평화운동을 열심히 해오고 있다. 주요 리더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지만, 러시아의 반전평화활동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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