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교수들 “2000명 포기해 달라…증원 필요성엔 공감”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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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대 교수 5인 인터뷰 “2000명, 아무 근거 없다”
“교육 여건 부실로 인한 의료 질 저하, 피해는 국민 몫”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연 긴급총회에 의료진이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연 긴급총회에 의료진이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1999명이라도 좋다. 다만 정부가 합리적·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협상하길 바란다.”

서울의대 교수들이 증원 규모와 관련된 중재안을 제시하며 막판 협상을 호소했다. 더 이상 대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집단 사직을 하겠다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이다. 의대 증원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정원 ‘2000명’ 규모를 고집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0년 뒤 2035년 의사가 1만 명 부족해 증원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5년간 해마다 2000명 늘려야 한다는 증원 규모에 대해선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반발했다. 비대위가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전체 의대 교수 1475명 중 1146명)의 99%는 ‘정부의 증원 규모를 비합리적’이라고 답했다.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다섯 명의 서울의대 교수들은 “정부에게 2000명은 신앙 같다. 숫자만 고집하지 말고 현실을 들여다 봐 달라”고 입을 모았다. 

홍윤철 서울의대 교수는 “다양한 시나리오로 지역별 분석한 결과, 가장 합리적인 규모는 500~1000명이라고 분명히 명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증원 숫자는 타협의 대상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따른 선택”이라며 “의료개혁 방향 논의 없이 일방적인 숫자 통보는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정부가 근거로 제시했던 의사인력 추계 보고서의 연구자다.

또 다른 교수는 대학의 임상 실습 과정 등을 고려해 증원 규모를 수용할 수 없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A 교수는 “위암 수술 실습에서 환자의 옆에 서서 참관하는 학생이 2명에서 6~8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위암 수술 건수가 3~4배로 늘지 않는 이상 학년이 끝날 때까지 수술 한 번을 제대로 못 보는 학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A 교수는 “이러한 실습 여건으로 의료의 질적 저하를 겪는 건 고스란히 국민 몫”이라며 “기술 발달로 버추얼(가상) 강의가 가능해도 환자 생사가 걸린 수술은 차원이 다른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증원 초기 5년 동안 대학이 교육 여건을 마련해도 그 이후는 또 다른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홍 교수는 “정책이나 의료 시장 상황이 변할 것에 대비해 ‘돌아갈 수 있는 수준’으로 증원해야 한다”며 “대학에서 교수 증원과 시설 준비 등 막대한 투자로 학생을 증원했는데 5년 뒤 이야기가 달라지면 그 손해는 누가 감당하느냐”고 꼬집었다.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되가고 있는 가운데 13일 서울 시내의 한 병원에서 시민들이 접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되가고 있는 가운데 13일 서울 시내의 한 병원에서 시민들이 접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협상 골든타임 거의 끝나가”

서울의대 교수 430명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예고한 18일까지가 ‘협상 마지노선’이란 주장도 나온다. A 교수는 “실질적 골든타임은 전공의 집단사직 주간에 이미 끝났다. 그러나 심폐소생술 30분 뒤 기적처럼 살아나는 경우처럼 의정 관계에도 마지막 희망이 남아있다”면서 “이번 주를 넘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진행 분당서울대 병리과 교수는 “정부가 이미 각 사회집단의 심리적 욕망을 건드리면서 핵분열이 일어났다”며 “대학 입장에선 등록금이 늘어나기에 무조건 증원,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선 의대 입학 길이 열리니 환영, 의료 자본가들도 싼 값에 인력이 늘어나니 반색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의대 교수도 가르칠 학생이 늘면 일자리도 늘고 지위도 좋아진다. 그럼에도 (의대 교수들이) 이해관계와 무관히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데에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오주환 서울의대 교수는 협상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가 본격 논의되면 의료계에서 반색할 지점도 충분히 있다”면서 “의정이 협상장에 앉게 되면 합의 가능한 대안부터 추진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간 정부의 태도에 대해 “정부가 2000명만 고집해 정작 본질적인 의료개혁 논의는 시작도 못했다”며 “증원 규모로만 싸우다가 정책 전체에 대한 진정성도 의심받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전공의 간의 강대강 대치에 대해선 우려를 표했다. 배우경 분당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집단사직 주동자를 잡겠다고 나설수록 전공의들과 협상은 더 어려워진다”며 “구속될 가능성이 있기에 제대로 된 대표단도, 공식적인 대화 창구도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에 현재 전공의들은 개별 행동 수준에 그친 상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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