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면허 따고 차출된 공보의 “의료사고 날까 두렵다”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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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투입된 공보의 “수련병원 경험 고려 없이 배치”
사고 우려 압박감 토로 “정부, 법적 책임 병원에 전가”
응급의학과 교수 “공보의, 아무 일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돼”

 

3월11일 오전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에서 한 의사가 복도를 지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 이탈이 장기화하자 지역 거점국립대병원에 공보의와 군의관을 파견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에서 한 의사가 복도를 지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 이탈이 장기화하자 대형병원 20곳에  공보의와 군의관을 파견했다. ⓒ연합뉴스

“솔직히 너무 긴장되고 무섭습니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 파견된 공보의 A씨)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차출된 공중보건의(공보의)들이 환자 생명과 직결된 응급실·중환자실 등에 투입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에 배치된 공보의 절반 이상이 수련병원 경험이 없거나 적은 일반의여서다. 이에 전공의 이탈로 한계치에 다다른 의료 현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14일 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 대형병원 20곳에 차출된 공보의 138명, 군의관 20명 등이 전날 현장에 투입됐다. 정부는 이들의 배치를 통해 현장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경감해 비상진료체계의 지속성을 제고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보의 138명 중 46명만 전문의이고 나머지는 일반의라서다. 이들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만 취득했거나 인턴까지만 수료한 상태다. 수련 경험이 낮다는 의미다.

시사저널과 연락이 닿은 공보의 A씨 역시 비슷한 케이스다. A씨는 현재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 차출된 상태다. 그는 의대 졸업과 함께 의사 면허를 취득한 직후 공보의를 시작한터라 수련 병원에서의 경험이 전무하다. A씨는 “공보의로 배치된 농촌 지역의 보건소에서도 보건증 발급 등 행정 업무를 주로 수행하고, 예방접종이나 간단한 진료만 봐왔다“고 말했다.

A씨는 전날 파견된 병원으로부터 응급의학과 배정을 받았다. 그는 “병원이 수련병원 경험을 고려 없이 상황이 시급한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공보의를 투입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발표와 달리 실무 교육은 없었다. 당초 정부는 투입된 공보의들은 11~12일 동안 병원에서 실무 교육을 받고 13일부터 전공의 업무 일부를 대신한다고 밝힌 바 있다.

A씨는 “병원 행정 직원이 와서 주차나 식사, 숙박 등을 안내하고 내부 EMR(전자의무기록시스템) 사용법만 가르쳐 주고 갔다”면서 “실제 의료 업무에 필요한 교육은 배정된 과에서 배우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응급의학과에 배치된 이후에도 교육을 받을 여건이 아니었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그는 “전공의 이탈로 인력이 부족한 응급실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공보의를 상대로 제대로 된 실무 교육을 해줄 상황이 아니었다”며 “대략적인 업무 분장만 지시받은 뒤 바로 투입됐다”고 말했다.

A씨는 결국 의대에서 배운 실습 경험을 토대로 ‘술기(의사가 환자 몸에 행하는 의학적 행위를 일컫는 전문용어)’를 진행했다. 그는 “투입 첫날이라 동맥 채혈 등 간단한 업무를 수행했다”면서도 “해본 적 없는 ‘복수천자(주사로 복수를 뽑아내는 것)’와 같은 의료 행위도 앞으로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난 11일 대형병원에 파견된 공보의가 제공받은 숙소 ⓒ독자 제공
지난 11일 대형병원에 파견된 공보의가 제공받은 숙소 ⓒ독자 제공

“중대본에 배상 보험 요청했지만 진척 없어”

A씨는 “자칫 의료사고가 발생할까 두렵다”고 털어놨다. 그는 “매순간 긴장하며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사고가 의도하고 발생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사가 오가는 곳이 응급실인데 그런 무서움도 공보의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복지부 의료 인력 파견 지원 관련 화상 회의록’에 따르면, 복지부는 공보의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병원에 위임했다. 사고 발생시 병원 법무팀이 본원 소속 의사에 준해 공보의에게 소송을 지원하라는 것이다.

이성환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대공협) 회장은 시사저널과 통화에서 “배상 보험에 가입된 상태로 공보의를 의료 현장에 투입해달라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요청했는데 진척된 게 없다”며 “정부가 져야 할 법적 책임을 병원에 전가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A씨 역시 “파견 병원에 질의했더니 ‘민사소송을 당하면 소속된 변호사를 붙여줄 것’이라고 구두로 얘기한 게 전부”라며 “그러면서 형사소송은 책임져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복지부 의료 인력 파견 지원 관련 화상 회의록 ⓒ독자 제공
복지부 의료 인력 파견 지원 관련 화상 회의록 ⓒ독자 제공

“현실적으로 공보의가 할 수 있는 건 청소뿐”

현장에서도 공보의 투입에 회의적인 시각이다. 23년째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한림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응급실에서 공보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 회장은 “지금과 같은 신분으로는 역량이 부족할뿐더러 설령 의료사고라도 나면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조차 어렵다”며 “몸에 무언가 주입하는 술기를 잘못하면 환자가 합병증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공보의 투입이 되레 응급 환자를 처치하는 데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공보의의 술기를 지켜보는 게 더 신경 쓰인다”며 “차라리 직접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공보의가 할 수 있는 건 청소뿐”이라고도 덧붙였다.

한편, 복지부는 공보의의 추가 차출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1일 군의관 20명과 공보의 138명 등 총 158명을 전국 병원 20곳에 투입한 가운데 내주 군의관 50명, 공보의 150명을 추가로 차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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