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납치당했어요” 했던 딸 목소리…알고 보니 AI였다
  • 박선우 객원기자 (capote1992@naver.com)
  • 승인 2024.03.1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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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화하는 AI 악용 범죄
딸 美 유학중인 점 악용해 보이스피싱 시도
제주경찰, 발 빠른 국제공조로 금전 피해 막아
경찰 로고 ⓒ연합뉴스
경찰 로고 ⓒ연합뉴스

‘유학 간 딸이 납치를 당했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해외 보이스피싱 범죄임을 직감하고 거액의 금전 피해를 막아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AI(인공지능) 기술로 어린 여성의 목소리를 생성해 딸 행세를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후 9시10분쯤 ‘해외에서 유학중인 딸이 납치됐다’는 취지의 신고가 제주 안덕파출소에 접수됐다.

신고자는 제주에서 한달 살기 중이던 A씨 부부였다. 이들 부부는 신고 약 5분 전인 오후 9시5분쯤 모바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어린 여성의 목소리를 한 통화 상대방은 “엄마, 제가 납치를 당했어요”라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중인 딸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사실 통화 속 목소리는 보이스피싱 일당이 AI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낸 어린 여성의 가짜 목소리였다. 다만 통화 시간이 짧았던데다, 해외에 있는 딸과의 연락이 어려운 A씨 부부로선 속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딸과의 짧은 통화가 끝난 뒤엔 신원미상의 남성이 전화를 건네받았다. 해당 남성은 “현금 1000만원을 보내지 않으면 딸을 해코지하겠다”고 협박한 뒤, 남편의 휴대전화 전원을 끄도록 지시했다. 경찰에 신고할 수 없도록 미리 손을 쓴 것이다. 다만 아내의 통화 내용을 들은 남편이 이미 112에 ‘딸이 납치됐다’고 신고한 후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최상위 출동 경보인 ‘코드 0’를 발령하고 A씨 부부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그러나 남편의 휴대전화 전원은 피싱 일당의 지시에 따라 꺼진 상태였다. 경찰은 딸의 납치 상황에서 신고자인 부친의 휴대전화가 꺼진 사실에서 최근 빈발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상황임을 직감, 기지국 위치 추적을 통해 A씨 부부를 찾아 나섰다. A씨 부부를 찾는데 시간을 지체했다간 거액의 금전적 사기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A씨 부부를 찾아내 진정시키는 한편, 미국 시카고 한국 총영사관 측과 연락을 취했다. 학교 행사차 이날 대만행 비행기를 탑승할 예정이던 딸 B씨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딸 B씨가 안전하게 비행기에 탑승한 사실이 시카고 공항경찰대를 통해 확인됐다.

A씨 부부는 지난 15일 제주경찰청 ‘칭찬합니다’ 게시판에 올린 감사의 글에서 “위급한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만 해도 경찰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즉시 출동한 안덕파출소 경찰관, 서귀포 형사들의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신념이 우리 가족을 신종 보이스 피싱범죄로부터 지켜줬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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