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금융사고에도 준법감시 5년 내내 ‘적정’…내부통제 문제 없나
  • 정윤성 기자 (jy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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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사고 2600억원에 DLF, ELS 사태에도 ‘이상 무’
점검 결과도 의문인데 활동 내용도 애매모호
내부통제 손질 나선 당국…공시 제도도 강화해야

4대 금융지주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의 준법감시인력 활동 결과가 5년 내내 모두 ‘적정함’으로 공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금융권의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이 지적됨에 따라 금융당국도 내부통제 강화에 팔을 걷어 붙였지만, 정작 공시에선 이런 문제를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다. 투자자들에게 투명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5대 시중은행에서 2200여명이 자발적으로 은행을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1인당 퇴직금 지급액은 평균 6억원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 연합뉴스
20일 4대 금융지주와 은행의 2019년~2023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준법감시인력의 내부통제 활동내역 및 점검결과는 모두 ‘적정함’으로 공시됐다. ⓒ 연합뉴스

준법감시 ‘적정함’…실효성은 물음표

20일 4대 금융지주와 은행의 2019년~2023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준법감시인력의 내부통제 활동내역 및 점검결과는 모두 ‘적정함’으로 공시됐다. 금융권의 잇따른 내부통제 사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시하는 준법감시인의 활동에 대해선 특이사항이 없다는 결과를 낸 것이다.

은행, 금융투자사, 보험사 등 금융사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준법감시인을 1명 이상을 의무적으로 둬야 한다. 준법감시인은 이사회가 임명한다. 이에 따라 4대 지주와 시중은행은 각각 준법감시인 1명과 지원 조직 등을 꾸리고 있다.

준법감시인은 자사 임직원의 내부통제 기준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감시하는 일을 한다. 내부통제 기준 위반이나 미흡 사항이 있을 땐 이사회 감사위원회나 감독기관에 보고할 수 있다. 금융사도 준법감시인 업무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별도의 인사관리를 하는 등 규정을 따로 마련해 운용하고 있다.

이처럼 준법감시인의 활동은 금융사의 내부통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지만 이에 대한 평가와 공시는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022년 우리은행 직원의 600억원대 횡령 등 금융권에서 크고 작은 내부통제 사고가 발생했지만 준법감시인의 활동에 관한 공시엔 적정하다는 결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18년부터 2023년 7월까지 금융사 내부직원에 의한 금전사고는 은행에서 207건 발생했고, 규모도 26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 같은 내부통제 위반 사고가 준법감시인의 활동을 통해 적발된 것인지는 공시를 통해 알기 어렵다. 또한 준법감시인의 활동을 통해 적발하지 못했다면 그 자체로 제도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은행(왼쪽)과 SC제일은행(오른쪽)의 사업보고서 항목 중 준법감시인의 주요 활동내역 및 그 처리결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갈무리
국민은행(왼쪽)과 SC제일은행(오른쪽)의 2023년 사업보고서 중 준법감시인의 주요 활동내역 및 그 처리결과 항목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갈무리

공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준법감시인의 활동 내용도 모호했다. 각 시중은행의 공시는 준법감시인의 내부통제 점검 주기와 점검 내용, 점검 결과 항목에 따라 공시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요 내부통제 기준 준수여부에 대한 점검 및 조사, 영업점 현장 점검 등 추상적인 내용만 명시하고 처리 결과는 일괄적으로 적정하다는 결과를 냈다. 해당 공시 내용만 봐선 준법감시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점검 결과를 냈는지 투자자들이 자세히 알기 어려운 것이다.

준법감시인의 활동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시한 금융사도 있다. SC제일은행의 2023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테마별 준법점검 △상시감시 활동 △현장점검 △준법통제 등으로 항목을 구체화했다. 또한 내부통제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위반 건수와 처리결과를 명시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지난해 금융권에서 배임·횡령 등 금융사고 금액가 끊이지 않자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의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금융권은 준법감시 강화 중정보 제공도 실효성 높여야

당국도 금융사 내부통제 선진화를 위해 준법감시제도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나 최근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으로 선제적인 내부통제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다.

2015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은행 내부통제 및 준법감시인 제도 모범규준’을 마련해 준법감시인의 지위와 독립성을 강화하고 준법감시부서의 내부통제 점검업무가 효과적으로 수행되도록 그 현황을 공시하기로 했다.

2022년부턴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에 따라 일정비율의 준법감시인력 확충이 의무화됐다. 이 중 석사 이상 학위 소유자와, 변호사 회계사 자격증 보유자 등 전문 인력에 대한 비중도 20% 이상으로 규정하는 등 관련 기준도 구체화하기로 했다.

금융사들도 당국 기조에 발을 맞추고 있다. 4대 시중은행의 준법감시 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 319명으로 2022년 말(284명)에 비해 12.3%(35명) 늘었다. 시중은행이 디지털 전환을 위해 전반적인 인력 감축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개선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내부통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더해 금융사고에 따른 손실은 주주들의 이익과도 직결되는 만큼, 투자자들에게 내부통제에 관한 더 투명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사의 내부통제 시스템과 관련해 경영진이나 임직원 등 다양한 책임자가 있지만, 준법감시인도 상당한 책임을 가진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선 공시를 투명히 함으로써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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