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0년 기업 13곳 재무 현황 비교해 보니…실적 및 주가 양극화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6 07:3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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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년간 메리츠화재·두산·하이트진로 클 때 KR모터스·광장은 ‘거꾸로 성장’

지난 22년간 100년 장수 기업 13곳의 매출은 20조6720억원에서 107조1900억원으로 418.0%나 증가했다. 자산총계 역시 135조1090억원에서 1010조7020억원으로 648% 늘어났다. 하지만 기업의 외형이 성장한 만큼 내실이 받쳐주지는 못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2조1630억원 적자에서 9810억원 흑자로 반등하는 데 그쳤다. 7개 상장기업의 주가 상승률 역시 44.5%로 매출이나 자산 증가율에 크게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100년 장수기업 안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사실은 시사저널이 창사 100주년을 넘긴 국내 장수 기업 13곳의 매출과 자산, 순이익 등 재무 현황과 주가 등을 전수조사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자료 조사에 한계가 있는 만큼, 기간은 2000년부터 2022년 말까지로 한정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메리츠화재 본사 건물 ⓒ시사저널 박은숙

실적 양극화, 무엇이 갈랐나

매출과 자산이 가장 많이 오른 기업은 메리츠화재였다. 매출은 2000년 1조5580억원에서 2022년 12조8290억원으로 22년간 723.4%나 증가했다. 순이익 역시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특히 자산의 경우 1조6490억원에서 35조9060억원으로 22년 만에 2000% 넘게 증가했다. 재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장 폭이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메리츠화재는 1922년 설립된 ‘조선화재’가 모태기업이다. 해방 후인 1950년 동양화재로 한 차례 사명을 바꿨다. 당시만 해도 메리츠화재는 국내 손보 업계 부동의 1위였다. 1956년 국내 보험사 최초로 대한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을 정도다. 메리츠화재는 1967년 한진그룹에 편입되면서 본격적으로 점포망 확대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영업실적이 받쳐주지 않으면서 1980년 들어서는 중위권으로 업계 위상이 하락했다.

메리츠화재가 다시 도약을 시작한 것은 2005년 한진그룹으로부터 독립하면서다. 조정호 회장은 제2의 창업을 선포했고,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 메리츠종금, 메리츠자산운용, 메리츠정보서비스 등 지금의 금융그룹 기반을 다졌다. ‘메리츠(meritz)’라는 사명도 이때 새로 도입했다. 외형 경쟁을 통한 몸집 불리기보다 수익성을 기반으로 한 내실 경영이 주효했다. 조 회장은 불완전판매 소지가 있는 홈쇼핑 판매보다 대면을 통한 장기보험 판매에 주력했다. 그 결과 메리츠화재는 100년 장수 기업 중에서도 ‘트리플 크라운’(매출·자산·순이익 1위)을 달성할 수 있었다.

두산그룹의 지주회사인 (주)두산의 성적도 나쁘지 않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주)두산의 매출과 자산은 각각 16조9960억원과 26조3150억원으로 2000년 대비 570.2%와 402.8% 증가했다. (주)두산은 1896년 고(故) 박승직 창업주가 세운 박승직 상점이 모태다. 국내 장수 기업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두산의 주력은 주류와 무역이었다. 이후 식음료 사업에 진출하면서 소비재로 사업의 중심이 옮겨갔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두산은 다시 한번 변신을 시도했다. 처음처럼 등 알짜 사업을 매각하고, 한국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대우종합기계(현 HD현대인프라코어), 밥캣(현 두산밥캣) 등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중공업 중심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탈원전 정책 후폭풍과 두산건설의 미분양 사태 등이 겹치면서 그룹 전체가 휘청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산은 자산과 사업부 매각을 통해 23개월 만에 채권단 관리체제에서 벗어나는 저력을 보여줬다.

올해 100년 기업에 새로 진입한 삼양사와 하이트진로의 매출과 자산 역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양사는 매출(119.4%)과 자산(154.5%), 순이익(164.5%)이 고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하이트진로의 경우 매출은 375% 늘어난 반면, 자산은 97.1% 증가하는 데 그쳤고, 순이익은 22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은행권에서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100년 기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매출은 5조5010억원에서 33조8100억원으로 514.6%, 자산은 51조1390억원에서 491조9810억원으로 576.05% 증가했다. 우리은행 역시 매출은 8조5150억원에서 37조2350억원으로 337.3%, 자산은 72조7820억원에서 447조3890억원으로 514.70% 증가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이들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7개 기업의 성장률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영면 동국대 경영대학 교수 “일본의 유력 경제지인 ‘일경 비즈니스’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평균수명은 30년 정도다. 그만큼 100년 역사를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 “한국의 100년 기업들 역시 두산 등 일부를 제외하고 존재감이 미미한 게 사실이다. 격변하는 경영환경 아래서 변화나 혁신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7개 상장기업 중 주가 오른 곳은 두 곳뿐

실제로 몽고식품, 동화약품, 성창기업지주, 경방, KR모터스, 강원여객자동차, 광장주식회사 등도 100년 기업이지만 매출이나 자산 성장률이 높지 않았다. KR모터스와 광장주식회사의 경우 지난 24년간 매출이 역성장을 보이기도 했다. 성창기업지주나 강원여객자동차 역시 순이익이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몽고식품의 순이익 증가율이 3323.3%로 조사 대상 기업 중에서 가장 높았지만, 6000만원에서 20억원으로 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가도 마찬가지다. 13개 100년 기업 중에서 상장사는 모두 7곳이다. 이들 기업 중에서 주가가 오른 곳은 두산(435.2%)과 KR모터스(88.2%) 두 곳뿐이었다. 나머지 동화약품과 성창기업지주, 경방, 하이트진로, 삼양사의 경우 주가가 30~77%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주가가 상승한 두산과 KR모터스도 2022년 말 기준으로 순이익이 적자로 돌아서거나, 적자 상태라는 점에서 의미가 반감된다고 전문가들은 꼬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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