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민심 만만하게 보지 마래이”…총선 ‘태풍의 눈’ 떠오른 PK
  • 부산=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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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벨트’에 ‘동부산’까지 비상 걸린 與…연제구는 진보당 역전 허용
與, 위기감에 한동훈 출동 ‘총력전’…민주는 8년 전 ‘부산 5석’ 돌풍 기대

4·10 총선을 앞두고 부산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후보들이 국민의힘 후보들을 상대로 부산의 주요 격전지에서 접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낙동강 벨트’ 서부산은 물론, 중·동부산 권역에서도 국민의힘이 열세인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PK(부산·울산·경남)는 보수 텃밭’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가운데, 야권에선 지난 20대 총선에서 거둔 ‘부산 5석’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반대로 적신호가 켜진 여권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까지 직접 부산을 찾으며 ‘보수 집토끼’ 단속에 나섰다.  

26일 부산 연제구에 위치한 부산시청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시사저널 변문우
26일 부산 연제구에 위치한 부산시청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시사저널 변문우

與텃밭 아니다? ‘숫자’로 드러난 PK민심

한국리서치가 지난 21~24일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부산 낙동강벨트 최대 격전지인 북갑은 현역인 전재수 민주당 의원(53%)이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36%)을 큰 격차로 앞섰다. 사하갑은 현역인 최인호 민주당 의원(50%)이 이성권 국민의힘 후보(39%)에 11%포인트 앞섰다. 현역 장제원 의원이 빠진 사상도 배재정 민주당 후보(43%)가 김대식 국민의힘 후보(39%)를 근소한 차로 제치며 접전을 펼치고 있다.

전통적 보수 강세지역이었던 ‘동부산’ 권역도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선거구 합구로 ‘현역 매치’가 이뤄진 남구는 박재호 민주당 의원(44%)이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42%)에 오차범위(4.4%p) 내 우위를 보였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24년간 보수당 의원이 집권했던 부산 해운대갑에서도 이변이 나타났다. 홍순헌 민주당 후보(43%)가 주진우 국민의힘 후보(39%)를 근소하게 앞지른 것이다.

부산의 교통·경제·금융·문화 인프라가 집결된 ‘중부산’ 권역도 여권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8~9일(1차)과 18~19일(2차)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서면’을 품은 부산진갑도 정성국 국민의힘 후보(45.7%)와 서은숙 민주당 후보(43.8%)가 오차범위(4.3~4.4%p) 내 접전을 펼쳤다. 특히 ‘시청’이 위치한 연제구는 진보당의 노정현 후보(47.6%)가 김희정 국민의힘 후보(38.3%)에 앞서며 이변을 예고했다.

ⓒ시사저널 양선영
ⓒ시사저널 양선영

치솟은 물가에…서울-지방 격차에 한숨

부산의 민심 기류가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시사저널은 25~26일 이틀간 부산 주요 격전지 네 곳(북구갑, 진구갑, 연제구, 남구)을 찾아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토로한 내용은 ‘고물가’였다. 서면에서 게임방을 운영하는 40대 이아무개씨는 “요새 서면에서 오래 자리를 유지하는 점포들이 거의 없다. 몇 달마다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남구 부경대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최아무개(42)씨도 “(개강 시즌임에도) 대학가가 활기를 잃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여기에 수도권과의 격차로 갈수록 심해지는 ‘인구 감소’ 문제도 거론됐다. 서면에서 학원 수업을 기다리고 있던 김아무개(26)씨는 “서면이 예전처럼 시끌벅적하지 않다”며 “다들 서면 번화가는 물론 부산 자체를 떠나려고 하는 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부경대 재학생 정아무개(25)씨는 “청년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다들 부산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나. 지금 동기들만 해도 전부 수도권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시민들은 민생 문제를 초래한 원인으로 ‘윤석열 정부’의 책임을 묻기도 했다. 서면 실내포차를 운영 중인 40대 자영업자 박아무개씨는 “부산 민심이 확실히 바뀐 게 느껴진다. 지인들도 같이 술 먹으면서 얘기해보니 원래 보수세 강한 분들도 ‘정부가 개판을 치고 있다’며 생각을 많이 바꿨다”고 말했다. 연제구 연산로터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김아무개(63)씨도 “자영업자들의 분노가 최고치에 다다랐다”며 “오죽하면 진보당을 찍을 정도겠나”라고 전했다.

반면 해묵은 경제난과 인구 감소 문제 등을 윤석열 정부만의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진구 부전시장에서 밀면집을 운영하는 50대 김아무개씨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치면 전 문재인 정권이 집값 상승시키고 코로나 때 예산 막 나눠준 것 아니냐”라며 “오래 전부터 곪아온 문제”라고 주장했다. 북구 화명동 주민인 정아무개(48)씨도 “이재명당은 범죄 혐의를 방탄하면서 정부 발목만 잡는다”며 “정부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여당이나 야권 모두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질타도 나왔다. 앞선 게임방 운영자 이씨는 “윤석열이나 이재명이나 둘 다 기대가 안 되긴 마찬가지다”라며 “이번 총선에서도 굳이 표를 행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부경대 재학생 정씨도 각종 청년 문제로 “정치에 관심과 기대를 끊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후보의 자질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부전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60대 정아무개씨는 “진구갑에 출마한 두 후보가 누구인지 처음 들었다. 그나마 잘했던 (서병수) 의원을 엉뚱한 곳으로 보내버렸다”며 “국민의힘이 정신을 못 차렸다”고 비판했다.

26일 부산 진구에 위치한 부전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시사저널 변문우
26일 부산 진구에 위치한 부전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시사저널 변문우

“총선 전 보수 지지층 결집” “민주, 30년 만의 강력한 라인업”

총선 전선에서 뛰고 있는 국민의힘 후보들도 바뀐 지역 분위기를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병수 의원은 25일 시사저널과 만나 “최근의 기류에 당황스럽기도 하다”며 “이종섭·황상무 논란으로 당정 갈등이 노출되고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도 문제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민심을 들어보면 물가 문제도 가장 큰데, 물론 우리 정부의 책임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문제가 축적돼온 만큼 억울한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당 차원에서도 돌아선 민심을 잡기 위해 총선 직전 총력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대구·울산·경남 양산에 이어 부산 사하구로 발걸음을 옮겨 “오늘부터 저희가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몸 바쳐 뛰겠다”고 외쳤다. 관련해 서병수 의원도 “한동훈 위원장이 문제를 잘 수습하는 것 같다”며 “정부와 당에서 경제 구조를 복원시키는 정책을 공약으로 낸다면 본격적 선거에서 좋은 반전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여론조사는 일종의 모의고사에 불과한 만큼, 총선 직전 지지층이 결집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박수영 의원은 같은 날 시사저널에 “진영간 대립이 격화되면 부산도 치열한 선거가 예상된다”며 “이번 선거는 본인의 사법리스크를 덮기 위해 통진당 후예들과도 손잡은 이재명 세력과 싸우며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선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총선의 의미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민주당에선 이번 총선에서 20대 총선의 부산 돌풍을 재현할 것이란 기대감이 감지된다. 전재수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제 지역구인 북갑을 토대로 옆의 낙동강 벨트 등 지역구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총선은 30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가 부산시민들에게 내놓은 후보들 중 가장 강력한 후보들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당히 부산 전체판도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총선 판세를 낙관하지 않고, 더욱 바닥민심을 훑으며 승기를 잡겠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전 의원은 “국민들이 민생 문제로 정말 힘들어한다. 다들 고물가에 못 살겠다고 한다”며 “정쟁 대신 바닥 민심을 꼭 챙겨,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선거 캠페인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호 의원도 시사저널과 만나 “그동안 국민의힘에서 부산을 안일하게 생각하고 방치해왔다”며 “부산 정치인들부터 진정성을 가지고 부산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의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최대 ±4.4%p다. 또 KSOI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3~4.4%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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