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의 양면’ 청년 나이 상향…“올릴까 말까” 고민하는 전북자치도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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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자치도 조례, 18세 이상 39세 이하로 청년 규정
시·군별 청년 연령 들쭉날쭉…강원·전남은 45세로 확대
“사회역할 변화에 재정립 필요” vs “청년정책 효과 분산”

‘청년 나이, 높일까 그대로 유지할까’ 

전북특별자치도가 ‘청년 연령 상향’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최근 전국 자치단체들이 청년 인구를 늘리기 위해 상향하는 추세에 비해 고령화된 전북의 청년 나이 상한이 상대적으로 낮아 청년 정책 실행 등에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 14개 시·군의 경우 지역 실정을 반영하면서 청년 나이가 제각각이어서 ‘고무줄 청년 나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사회 구조적 인구 변화에 따라 청년 나이 기준의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전북자치도는 청년 연령 상향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상황에 따라 긍정과 부정적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어서다. 청년 나이를 높일 경우 고령화된 농어촌지역에서 청년 정책 수혜대상이 확대될 수 있지만 거꾸로 청년 비율이 높아지면 청년 정책의 효과가 분산될 수도 있다. 청년 나이 상향에 대한 의견수렴 공청회에서도 참여한 도내 청년과 시군 사이에서 찬반이 엇갈렸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청년 연령 상향'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2017년 4월 제정된 도 조례상 현재 청년은 ‘18세 이상 39세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다른 자치단체의 상향 추세에 비해 청년의 나이 상한선이 여섯살 정도 낮다. 청년 나이를 상향해 청년 비율이 높아지면 청년 정책의 효과가 분산될 수도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청 전경 ⓒ시사저널
전북특별자치도가 '청년 연령 상향'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2017년 4월 제정된 도 조례상 현재 청년은 ‘18세 이상 39세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다른 자치단체의 상향 추세에 비해 청년의 나이 상한선이 여섯살 정도 낮다. 청년 나이를 상향해 청년 비율이 높아지면 청년 정책의 효과가 분산될 수도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청 전경 ⓒ시사저널

고무줄 ‘청년 나이’…신중한 전북 “의견 수렴 필요”

27일 전북특별자치도에 따르면 2017년 4월 제정된 도 조례상 현재 청년은 ‘18세 이상 39세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현행 청년기본법상 청년은 ‘19세 이상 34세 이하’지만 지자체 조례로 그 나이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단서 조항에 따라 청년 연령을 유연하게 바꾼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시군의 청년 나이가 도 조례에 맞춰진 것도 아니다. 해당 조례가 2020년 12월 개정되면서 지역 사정에 따라 다르게 적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청년 비율이 높은 지역은 전북자치도와 같은 기준을 쓰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청년 수가 적고 고령화한 농촌지역 시·군은 청년의 연령 상한이 높은 편이다.

실제 도내 14개 시·군의 청년 나이는 제각각이다. 장수군이 15~49세로 청년의 범위가 가장 넓다. 남원·임실은 19~45세, 무주·순창 18~49세, 정읍·완주·진안·고창·부안 18~45세, 전주·군산·익산·김제는 18~39세다. 장수군에서는 아버지와 아들뻘 나이인 49세와 15세가 조례상 동일한 ‘청년’이다. 

전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광역단체 역시 청년연령 기준이 갈린다. 강원과 전남의 청년 연령은 18∼45세이고 전북과 부산, 인천, 대전은 18∼39세, 서울·대구·광주·울산·세종·충북 등 나머지 11개 광역단체는 19∼39세다.

 

‘청년 나이’ 올리는 지자체…“청년정책 본래 취지 훼손” 의견도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를 만들어 ‘청년 나이’ 기준을 올리고 있다. 지자체마다 ‘청년 인구’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 출산율이 감소하고 고령화가 심해지자 청년의 기준도 바뀌는 것이다. 특히 청년 정책을 실행할 때 인구가 적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농촌 고령화로 읍·면 청년회장의 대부분이 40∼50대인 데다 청년 취업자 주거비 지원 등 각종 ‘청년 정책’을 시행하려 해도 대상자가 적다보니 기준을 손보지 않을 수 없다. 

전북 완주군은 올해 초 청년 기준 나이를 기존 18∼39세에서 18∼45세로 상향 조정했다. 군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타 지자체 청년 연령 상향 추세를 반영하고, 청년 지원 수혜 대상을 확대하고자 '청년 기본조례'를 일부 개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완주군 청년 인구는 지난해 12월 기준 2만1265명(전체 인구 대비 21.7%)에서 2만9226명으로 7961명이 늘어났다.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이 지난해 5월 충북 괴산군 소재 숲속 작은 책방에서 청년마을 관계자 및 영농 유튜버 등과 지방소멸대응 정책현장 간담회를 하고 있다. ⓒ행안부 제공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이 지난해 5월 충북 괴산군 소재 숲속 작은 책방에서 청년마을 관계자 및 영농 유튜버 등과 지방소멸대응 정책현장 간담회를 하고 있다. ⓒ행안부 제공

전남의 경우 지난해 4월 도의회가 청년의 나이 상한을 45세로 올리는 ‘전남도 청년 기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통과시켰다. 기존에는 청년을 ‘18세 이상 39세 이하’로 규정했었다. 청년 유출로 인해 인구 감소가 심각한 도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나이를 여섯살 올리는 조례 개정을 통해 전남의 청년 인구는 약 14만 3000명 늘어났다. 강원 역시 지난해 12월 청년 나이를 18~39세에서 45세로 확대했다.

이러한 추세는 비단 전남과 강원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기준 이미 전국 48곳의 기초자치단체가 40대도 청년에 포함하는 조례를 두고 있다. 이중엔 만 49세까지를 청년으로 하는 곳도 26곳이나 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인구 소멸지역은 특히 청년 인구가 많이 빠지고 있어 관련 정책이 중요하다”며 “연령이 낮으면 그만큼 혜택을 보는 사람이 적다. 각 지자체가 연령을 높여서라도 청년 인구 유출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양한 청년지원 혜택 대상자가 늘면서 애초 청년으로 규정했던 세대가 자칫 소외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청년 나이를 늘려 예산이 늘어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현주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는 “49세까지 청년이라고 보는 지자체도 있는데, 이들을 사실상 청년으로 보기 어렵다”며 “연령을 늘려 대상자를 확대하는 것은 본래 정책 목표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기 공동대표는 “청년정책은 다른 복지정책 보다 지원조건이나 자산·소득기준 등 참여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편”이라며 “연령을 높여 대상자를 확대하는 것은 정작 청년세대를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없고 본래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북특별자치도가 3월 26일 전북청년허브센터에서 전북 청년연령 상향 의견수렴 공청회를 열고 있다. ⓒ전북자치도
전북특별자치도가 3월 26일 전북청년허브센터에서 전북 청년연령 상향 의견수렴 공청회를 열고 있다. ⓒ전북자치도

공청회에서도 ‘찬반’ 엇갈려

이처럼 도내 청년 연령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청년 연령 재정립 논의가 지역별로 활발하다. 취업, 결혼 지연에 따른 청년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 변화, 중위연령(인구를 연령순으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의 급격한 상승 등 사회·경제적 연령의 인식 변화가 그 배경이다. 우리나라의 2023년 중위연령은 45.6세다.  

전북 역시 대내외적으로 청년 연령 상향에 대한 요구가 적지 않다. 다만 전북자치도는 의견수렴이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려 한다. 연령을 높이면 더 많은 지역 주민이 청년 수당, 지원금, 저리 대출 등 혜택을 받을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 사회초년생을 겨냥한 정책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도는 지난 26일 청년기본조례 청년연령 상향조정과 관련해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공청회는 시군별 청년정책 담당자와 18~39세 이하, 40세 이상 45세 이하 등 각각 1명씩 참여했으며, 도의원을 포함해 총 50여명이 참석했다. 

공청회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익산시 등 일부 시군의 청년 나이 상향 청원 제기, 주민 여론조사 진행 등 청년연령 상향에 대한 요구가 있는 만큼 찬성의 뜻을 밝혔다. 연령 상향 시 인구 유입과 청년정책 수혜대상이 확대되고, 도와 시군 매칭사업의 혼란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결이 다른 의견도 나왔다. 전북도 조례의 청년 기준을 최대로 상향하고, 시군 실정에 맞도록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것이다. 

이에 반해 청년연령 상향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었다. 재정 부담이 가장 큰 반대 이유였다. 청년정책 지원 대상이 한정돼 연령 상향 시 예산이 부담된다는 것이다. 특히 전주와 군산, 익산 등 상대적으로 청년 인구가 많은 도시지역의 경우 재원 부담이 커진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청년 연령 상향에 대한 의견이 갈리자 전북자치도는 추후 도민을 대상으로 청년 연령 상황에 대한 여론조사도 실시하는 등 더 많은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전북자치도 관계자는 “청년 연령 상향으로 고령화된 농어촌지역 수혜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면서도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한 사회초년생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은 그 효과가 분산될 수 있어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책 수혜자인 청년들과 더 많이 소통하면서 의견 수렴을 통해 청년의 목소리를 정책에 담아내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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