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작위’하겠다며 팔 벌리는 중국
  • 박승준│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
  • 승인 2011.12.26 00:2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발빠르게 조문하고 김정은 지지 의사도 신속히 표명‘북한 지지축’으로서 행보 강화할 듯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12월20일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을 방문해 김정일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의 유소작위(有所作爲)가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김정일 사망 발표 이틀 뒤인 12월21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 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런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유소작위’는 ‘할 일을 한다. 자신의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1997년에 사망한 중국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鄧小平)이 말한 외교 지침이다. 덩샤오핑은 1990년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정치 체제가 무너지자 ‘도광양회(韜光養晦), 유소작위’라는 지침을 내렸다.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르고, 때가 되면 해야 할 역할을 하라’라는 뜻이었다. 즉 <환구시보>는 김정일 사망 발표 직후 중국이 해야 할 역할을 했으며, 그 결과가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한 것이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12월17일 오전 8시30분에 사망하고, 19일 낮 12시에 이루어진 김정일 사망 발표 직후 중국은 실로 발 빠르게 행동했다. 4시간 후에 마자오쉬(馬朝旭) 외교부 대변인이 애도 성명을 발표했고, 8시간 뒤인 오후 8시에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명의로 된 조전(弔電)이 발표되었다. 조전의 내용 가운데 핵심 부분은 ‘우리는 조선(북한) 인민들이 김정일 동지의 유지를 계승하고, 조선노동당 주위로 긴밀히 단결해서, 김정은 동지의 영도 아래 비통함을 역량으로 변화시켜서 사회주의 강성 국가 건설과 지구적인 평화 건설을 위해 전진할 것으로 믿는다’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김정은의 권력 승계를 강력히 지지한다고 분명하게 의사 표시를 한 것이었다.

김정일의 아버지 김일성의 경우에는 1994년 7월8일 새벽 2시에 사망했고, 다음 날인 7월9일 낮 12시에 사망 사실이 발표되었다. 이틀 뒤인 7월11일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덩샤오핑과 자신의 조의를 전달했다. 당시에 전달된 조문 내용의 핵심 부분 역시 ‘우리는 조선 인민들이 김정일을 위수(爲首·우두머리)로 하는 조선노동당 주위로 단결하기를 바란다’라는 것이었다. 김일성 사망 직후에도 덩샤오핑과 장쩌민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김일성 다음의 북한 후계자로 김정일이 결정되기를 희망한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북한 권력 승계, 중국의 의도대로 돼가나

1994년 김일성 사망에 이어 이번 김정일 사망에도 중국은 이른바 조전(弔電)에 의한 내정 간섭적 국제 정치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일성 사망이나, 이번 김정일 사망에도 신속하게 후계자인 김정일 또는 김정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혹시라도 북한 내에서 있을 권력에 대한 도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북한은 이미 김정일 체제부터가 중국의 지지 아래 성립된 것이며, 앞으로의 김정은 체제 역시 중국의 지지 아래 존속되는 체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할 인물로 부각되고 있는 장성택 조선노동당 행정부장 역시 김정일이 2010년 5월부터 최근까지 잇달아 세 차례 방중할 때 수행하면서 중국과의 의사소통을 잘 해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북한 권력 내부가 중국의 의도대로 김정은에 의한 권력 승계 체제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