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대기 3분 진료’ 국내 병원서 ‘15분 진료’ 해봤더니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10.2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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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 서울대병원 교수 “의사·환자 신뢰로 중복 검사 등 진료비 감소·치료 효과 상승”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충분히 전달하고, 의사는 환자가 이해할 때까지 치료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상적인 병원 진료실 풍경이다. 선진국에는 이미 이런 진료실 분위기가 정착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1개국의 평균 진료 시간은 17.5분이다. 의사와 환자는 질환에 대해 상담할 시간이 충분한 것이다. 

 

우리의 병원 현실은 다르다. 흔히 '1시간 대기 3분 진료'라고 비꼴 정도로 진료 시간은 짧다. 일반적으로 대학병원에서 15분에 환자 4명 정도를 본다. 환자 1명당 약 3분의 진료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대형병원의 환자 진료 시간이 평균 31초로 나온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의사와 환자가 충분한 대화를 나누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음 환자를 봐야 하므로 의사는 한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컴퓨터 모니터에 띄운 검사 결과를 보며 진단하고 처방할 뿐, 환자와 눈을 맞출 겨를도 없다. 

 

환자는 환자대로 불만이다. 무엇보다 의사가 제대로 진단했는지 불안하다. 의사에게 속 시원한 설명을 듣지 못한 환자는 같은 병원에서 의사를 바꿔 재진료를 받거나, 아예 다른 병원에서 똑같은 검사를 받는다. 이른바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전전하는 '의료 쇼핑'이다. 기자가 만났던 한 탈북자는 병원 진료실의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은 의료기술이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의사에 대한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의사는 환자인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며 진료를 끝냈다. 물어볼 것도 많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쫓기다시피 진료실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고질적인 '3분 진료'에 변화를 주려는 움직임이 있다. 몇몇 의원과 개인병원은 오래전부터 '15분 진료'라고 부르는 심층진료(또는 심층진찰)를 진행해왔다. 몇 해 전부터는 일부 대학병원도 15분 진료를 시작했다. 보건 당국이 심층진료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서다. 올해 25개 병원이 15분 진료 시범 사업에 참여 중이다. 이 시범 사업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와 15분 진료가 정착되면, 선진국과 같이 여유로운 진료실 풍경이 펼쳐질 전망이다. 

 

서울대병원은 공식적으로 1년 전부터 15분 진료를 개시했다. 비공식적으로는 그 전부터 여러 의사가 개인적으로 15분 진료를 진행했다. 그중 한 명이 임재준 호흡기내과 교수다. 15분 진료의 효과를 체험한 그는 공식적으로 15분 진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의사다. 임 교수를 만나 '15분 진료, 그 후의 진료실 풍경'에 대해 들어봤다. 

 

서울대병원에서 공식적인 '15분 진료(심층진찰)'를 처음 시작한 임재준 호흡기내과 교수가 15분 진료의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심층진료를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약 3년 동안 15분 진료를 했다. 병원이 공식적으로 15분 진료를 개시한 지는 약 1년 됐다. 나는 결핵이 전문이어서 주로 난치성 결핵 환자를 본다. 일주일에 초진 환자 7명을 대상으로 15분 동안 진료하고 있다."  

 

국내에서 15분 진료는 누가 처음 시작했나. 

 

"나는 15분 진료를 국내 최초로 진행한 의사가 아니다. 서울대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심층진료를 시작했을 뿐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오래전부터 묵묵히 환자를 정성스럽게 진료해온 의사는 우리 주변에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심층진료를 시범사업으로 진행하자 참여하려는 의사가 예상보다 많았다. 그만큼 충분한 진료 시간이 절박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여서 15분 진료를 한다고 해서 의사에게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의사 자신의 퇴근 시간을 밤 8~9시까지 늦춰가며 희생하는 것이다. 현재 서울대병원에서는 약 20명의 의사가 15분 진료를 한다."  

 

심층진료 시간을 15분으로 잡은 배경은 무엇인가.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사실 병원에서 15분에 대게 환자 4명의 예약을 잡는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15분에 환자 1명을 진료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실제로 15분은 내과 초진 진료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선천성 기형 등 소아과에서 중증 환자를 진료할 때는 15분도 부족하고, 두툼한 진료 기록을 가져오는 환자를 접하면 30분은 필요하다고 한다. 또 정형외과에서는 15분도 길다고 한다. 현장에서는 진료 과목이나 환자 상태에 따라 진료 시간이 늘거나 줄어든다."  

 

외국에서 몇 분 정도 진료하는가.  

 

"미국의 경우 초진이 30분, 재진도 15~20분이다. 짧아도 최소 15분은 된다." 

 

재진 15분은 길지 않나.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임신한 아내가 산부인과에 갔더니 30분 동안 진료받았다. 재진인데도 말이다. 진찰을 다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의사는 환자에게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는 괜찮은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 등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했다. 의사와 환자의 이런 대화는 헛된 시간이 아니다. 의사는 건강과 관련된 환자의 생활습관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환자와 의사 간 신뢰가 쌓인다."  

 

기존 '3분 진료'엔 어떤 문제가 있는가.  

 

"우선, 3분 진료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형성되기란 어렵다. 치료가 잘 되려면 환자는 의사의 처방에 동의하고, 의사는 환자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 그런데 3분 진료로 그 둘 사이만 나빠졌다. 두 번째, 의사가 환자의 얘기를 꼼꼼히 듣고 진단하지 않고 검사 결과로 진단한다. 국내 CT 보유 대수가 인구 대비 세계 최고라는 통계도 3분 진료와 맞물려 있다. 충분한 진료 시간이 없으니 검사기기에 의존하는 것이다. 불필요하고 중복되는 검사를 하면서 의료비만 커지는 결과로 이어졌다.세 번째,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지 않으므로 다른 병원으로 간다. 그러니 병원마다 환자가 늘고 그만큼 진료 시간은 더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졌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3분 진료를 3개 병원에서 받는 것보다 한 병원에서 9분 진료하면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쌓이고 의료비 부담도 줄어든다."  

 

15분 진료로 그런 문제가 해결됐나. 

 

"의사인 나는 3분 진료를 한 후엔 환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곤 했다. 환자 얘기를 들어주지 못하고 내보내기에만 바빴다. 한편으로는 제대로 진단했는지, 실수는 없었는지 걱정도 됐다. 그러니 직업적 만족감이 없었다. 15분 진료로 만족감을 느끼며 환자를 볼 수 있게 됐다. 아직 15분 진료가 제도화되지 않아 의사들이 개인적으로 희생하고 있는 셈인데, 언젠가 제도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15분 진료로 환자에겐 어떤 득이 있나. 

 

"이전 병원에서 받은 두툼한 진료기록을 가져오는 환자가 많다. 이전 병원에서 자신이 제대로 진료받지 못한 것 같다는 불신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진료기록을 보면 대부분 진료가 제대로 됐다. 문제는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환자는 병에 걸려 불안한데 의사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초조하겠나. 그런 마음에 온갖 서류를 들고 나에게까지 온다. 그런 환자에게 15분 동안 충분히 설명하면, 환자 대부분은 수긍하며 그 병원으로 되돌아간다. 얼마 전 서울대병원은 15분 진료 효과를 발표했는데, 환자 만족도가 높았다." (1년 동안 15분 진료를 시범적으로 해본 서울대병원은 4월 그 결과를 발표했다. 진료 시간, 치료 과정, 환자권리 보장 등 여러 항목에서 15분 진료를 받은 환자 10명 중 9명은 만족했다. 기존 3분 진료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는 10명 중 7명에 머물렀다.) 

 

심층진료가 사회적으로는 어떤 이득을 안겨줄까. 

 

"짧은 진료에 만족하지 못한 환자는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다니면서 했던 검사 또 하고, 불필요한 검사도 한다. 15분 진료로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쌓이면 이런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형성되면 치료 경과도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의사의 치료 권유대로 환자가 적극적으로 따라오면 치료가 잘 된다. 사실 자신의 병이 뭔지도 모르면서 의사가 처방한 약만 먹는 환자도 있다. 자신의 병이 무엇이고,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를 알고 치료를 받은 환자는 빨리 회복한다."  

 

심층진료 시범사업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정부가 15분 진료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20여 개 병원이 참여한 것으로 안다. 추후 이 사업에서 긍정적 효과가 나오면 정식으로 의료 수가가 책정될 것이다. 그 후엔 병원이 심층진료를 할지 말지를 정하게 된다. 지금은 시범 사업이니까 의사가 선의로 또는 희생정신으로 심층진료를 한다고 해도, 경영을 생각해야 하는 병원 입장은 또 다르다. 시범 사업이 효과적이라면 정부는 많은 병원이 이 제도를 도입하도록 적합한 의료 수가를 책정해주면 좋겠다."  

 

긍정적 효과란 무엇을 말하는가.

 

"환자 만족도 외에도 다른 의사를 찾는 환자가 줄어들거나, 검사 행위가 줄어드는 등의 효과를 말한다."  

 

심층진료를 잘 안착 시키기 위해 개선할 점은 없는가. 

 

"동네 병원에서 경미한 환자를 보고, 중한 환자를 큰 병원으로 보내주는 것이 이상적인 의료전달체계다. 질환의 경중에 따라 적절한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가 돌아가야 15분 심층진료에 효과가 난다. 요즘 상급종합병원 특진비가 없어지면서 질환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처음부터 큰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아졌다. 그래서 이른바 '빅5 병원'엔 환자가 더 늘었고, 지방병원은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또 무질서하게 의료를 과소비하는 '의료 쇼핑' 문화도 고쳐야 할 점이다."  

 

15분 진료가 정착하면 진료실 풍경은 어떻게 바뀔까. 

 

"컴퓨터 모니터 대신 환자와 눈을 맞추며 진료하는 모습이 생길 것 같다. 사실 검사 결과를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 것은 3분이면 된다. 남는 시간에 의사와 환자는 충분한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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