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①] ‘제2, 제3의 참사’ 도처에 도사린다
  • 구민주·김종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0 10:42
  • 호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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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10주기 맞아
노량진수산시장·청량리·월계인덕마을 등 현재도 강제퇴거 갈등 심각

“서방 죽은 자리에서 장사하는 비참함을 누가 알겠나.” 용산참사 유가족 김영덕씨(63)는 10년 전 남편을 떠나보낸 자리에 리어카를 펴고 호떡을 굽는다. 단속을 피해 밀리고 밀리다, 운명의 장난처럼 다시 참사가 있던 현장 앞에 자리를 잡았다. 

2009년 1월20일 용산4구역 남일당 건물 강제진압 모습(왼쪽)과 10년 후 현재 모습 ⓒ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2009년 1월20일 용산4구역 남일당 건물 강제진압 모습(왼쪽)과 10년 후 현재 모습 ⓒ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2009년 1월20일 재개발 대상인 서울 용산4구역 내 상가 남일당이 화마로 뒤덮이기 전, 김씨는 그곳에서 ‘삼호복집’이라는 복요리집을 운영했다. 일식 조리사였던 남편이 조리를, 김씨는 서빙을 맡아 순탄하게 장사를 이어갔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날 그곳(망루)에 남편을 그렇게 안 올려 보냈을 텐데….” 1월14일 호떡 노점에서 만난 김씨는 남편과 이웃을 앗아간 10년 전 무리한 진압을 떠올리며 묵은 후회를 털어놨다. 폭력에 맞선 자신들을 향해 오히려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 언론을 향해 원망도 쏟아냈다. 김씨는 지금이라도 확실한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이 이뤄져, 남편의 명예회복과 함께 자신도 이 오랜 폭력의 기억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또 다른 유가족 이충연씨(46)는 자신과 가족들이 쫓겨난 참사 현장이 수년째 빈 땅으로 방치돼 있는 걸 볼 때마다 억울함이 치밀었다. ‘왜 그때 그리도 서둘러 우리를 내몰았는지’ 묻고 싶었다. 이씨는 참사로 인해 26년간 남일당 건물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잃었다. 본인 역시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수감돼 4년간 옥고를 치렀다.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아들의 석방을 기원하며 노숙농성을 이어갔다.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에서 작은 맥줏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지금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재개발과 강제퇴거 두려움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권력에 의해 거주민이 쫓겨나는 ‘제2의 용산참사’를 막아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에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이윤을 추구하는 세력이 서민들의 생계를 갈취하는 폭력은  10년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며 “참사 후 법 바꿔주겠다고 나선 수많은 의원들은 다 어디 갔느냐”고 토로했다.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왼쪽)과 신시장 건물 내부. 수협의 단전 조치로 구시장 상인들은 어둠 속에서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시사저널 이종현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왼쪽)과 신시장 건물 내부. 수협의 단전 조치로 구시장 상인들은 어둠 속에서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시사저널 이종현

노량진수산시장 사태, 참사 재연 우려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관련 시민단체는 참사 당시 용역을 동원한 공권력이 거주민들에 가했던 ‘폭력적 방식’이 지금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이들이 용산참사를 ‘현재진행형’이라고 표현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불과 4km 남짓 떨어진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사태가 꼽힌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수협이 시장 현대화사업에 따라 기존의 시장 터 옆에 신시장 건물을 짓고 시장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현재 4년째 상인들과 극심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신시장 점포가 좁고 불편한 데다, 사업 목적이 부당하다는 이유 등으로 일부 상인들이 구시장 잔류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2017년부터 수협이 4차례에 걸쳐 명도집행을 진행하면서 상인들과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1월14일 찾은 노량진수산시장은 환한 조명의 신시장 건물과 어둡고 적막한 구시장 간 명암이 선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수협에서 구시장 전체에 단전·단수를 강행하면서, 잔류 상인들이 자비로 발전기를 돌리며 겨우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지난해 용역 직원들과의 싸움 과정에서 팔을 다친 ㅊ상회 남아무개 사장은 “용역 깡패들이 수시로 난입해 발전기 선을 자르고 옆 점포에 짐 쌓아놓지 말라며 폭언과 위협을 일삼고 있다”며 “대화가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30년 가까이 시장을 지킨 ㅈ상회 조아무개 사장 역시 “아들뻘 되는 사람들이 검은 점퍼를 입고 감시하고 다니니 손님도 떨어져 나가고 무서워 죽겠다”며 “그거 못 버티고 울며 겨자 먹기로 새 건물로 입주한 상인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수협은 이들에게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이다. 1월14일 만난 수협 측 관계자는 “더 이상 소유권이 없는 구시장 상인들이 무단으로 그곳을 점유해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조치를 이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해결 방향에 대해서도 수협 측 관계자는 “계속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집행(강제퇴거)밖엔 답이 없다”고 밝혀, 10년 전 용산참사와 같은 폭력에 의한 강제퇴거 조치가 또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용산참사 유가족 등 강제퇴거를 경험한 피해자들과 관련 시민단체에선 용산참사 10주기를 기점으로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을 키우고 있다. 그 일환으로 1월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선 강제퇴거 피해자들이 모인 가운데 ‘용산참사 10주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가 진행됐다. 용산·노량진수산시장을 비롯해 청량리 철거지역, 노원구 월계인덕마을 등 용산참사 이후로도 권력에 의해 강제퇴거를 당해 온 피해자들이 나와 저마다의 피해 경험을 증언했다. 용역업체 직원들의 무차별한 폭행과 이를 수수방관하는 지자체 직원·경찰의 모습이 담긴 현장 영상들이 상영될 땐 일부 참석자들이 강하게 분노하며 흐느끼기도 했다. 이날 증언에 나선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용산참사 이후에도 똑같은 폭력이 자행되고 있으며 제2, 제3의 용산참사 발생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제퇴거 조치 정당화하는 현행법 고쳐야”

피해자들은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소하 정의당 의원 등에게 강제퇴거 자체가 불법이 되도록 하는 ‘강제퇴거금지법’의 필요성을 강하게 어필했다. 이들에 따르면, 현행법은 재개발 주체·임대인 등 집행권자의 재산권을 우선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강제퇴거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게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법대로 진행하는데 거주민들이 불법으로 버티고 있다’는 주장에 손쉽게 힘이 실려 왔던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개발사업이 거주민들에 미칠 영향을 두루 살피는 ‘인권영향평가’를 사전에 반드시 실시하도록 하는 방침 등이 강제퇴거금지법에 안에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과거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가장 잔인하게 강제퇴거하는 국가’로 규정한 바 있다”며 “18·19대 국회에서 모두 발의됐다가 폐기된 강제퇴거금지법을 이번엔 반드시 통과시켜, 그렇게 쫓아내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며 주민들에 대한 테러와 같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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