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선으로 본 근현대사 《그대 이름은 장미》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8 17:18
  • 호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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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대기 사려 깊게 그려낸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 16일 개봉

엄마의 젊은 시절은 어땠을까. 나의 엄마가 되기 전, 어떤 꿈을 꾸고 누구를 만나며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살게 됐을까. 《그대 이름은 장미》는 세상 모든 자식들이 한 번쯤 떠올렸을 법한 질문에 하나의 영화적 답을 제시한다. 엄마는 아마 이렇게 살았을 것이라고. 영화는 홀로 딸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 홍장미(유호정)의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 보여주며 한 여성의 일대기와 로맨스 그리고 딸 현아(채수빈)와의 뭉클한 관계를 짚는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여성의 인생으로 되짚는 한국의 근현대사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유호정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 현재와 과거가 함께 등장한다는 점, 극 중 음악이 중요하다는 점 등에서 《써니》(2011)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유호정은 “《써니》는 친구를 만나면서 찬란하게 빛나던 과거를 돌아보는 영화이고, 《그대 이름은 장미》는 한 여성의 일대기이자 엄마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이는 두 영화의 차이점에 대한 꽤 적절한 설명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을 위해 영화는 2인 1역의 캐스팅을 진행했다. 장미와 그의 옛 연인 명환(박성웅), 순애보로 장미의 곁을 평생 지키는 친구 순철(오정세)의 젊은 시절은 각각 하연수, 이원근, 최우식이 연기한다.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에 통금 시간까지 있던 1970년대. 가수를 꿈꿨던 장미는 우연한 기회에 음반회사 사장의 눈에 띈다. 이미 가수 지망생으로 연습 중이던 순철과 함께 듀엣 데뷔에 박차를 가하는 장미. 그 무렵 대학생 남자친구 명환과 알콩달콩한 연애도 경험한다. 그러나 명환은 집안의 강요 때문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아차린 뒤 가수를 향한 장미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의 한 장면 ⓒ 리틀빅픽처스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의 한 장면 ⓒ 리틀빅픽처스

엄마에게도 발랄한 청춘이 있었다

장미의 젊은 시절은 발랄한 로맨스 그리고 음악 드라마에 가깝다. 영화의 제목이자 가수 민해경이 부른 대중가요 《그대 이름은 장미》는 극 중 순철이 장미에게 헌정하는 곡으로 등장한다. 흥겨운 음악, 풋풋한 청춘의 기운이 영화를 수놓는다. 1970년대라는 시대 배경과 만남, 연애의 과정, 이별 등 옛날 멜로 영화의 클리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요즘 같은 시대에는 오히려 신선하게 보이는 구석마저 있다. 이렇게 관객의 마음을 발랄하게 사로잡던 영화는 중반 이후에야 사실 진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을 꺼내놓는다. 장미가 홀로 낳아 기른 딸 현아가 고등학생이 되고, 중년이 된 장미와 명환이 우연히 재회하면서부터다. 

20대 시절 장미는 밤낮없이 일하는 ‘여공’이었고, 그 와중에도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 않고 부지런히 살아가는 여성이었다. 덜컥 얻게 된 딸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키운 어린 엄마이기도 했다. 중년에 접어들어서는 녹즙기를 팔아가며 억척스럽게 살림을 꾸려가고, 딸 현아를 남부럽게는 못 키워도 부끄럽게는 키우지 않으려 애쓰는 엄마가 됐다. 

장미와 현아가 겪는 1990년대는 파란만장하다. 대책 없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수재민이 되기도 하고, IMF 사태가 조금 살 만해진 장미의 삶을 무참히 휩쓸고 지나간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아빠 없이 딸을 키운다는 것의 설움도 이따금 장미를 무너지게 한다. 남성 주인공의 서사로 한국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일은 많았지만, 여성 주인공의 경우엔 드물다. 이것이 《그대 이름은 장미》를 조금은 특별한 작품으로 보이게 한다. 인물의 연대기를 따르다 보니 각 에피소드가 조금씩 납작한 상태로 단순 나열된 듯한 느낌을 주는 건 아쉬운 대목이지만, 엄마의 입장으로 보는 근현대는 조금 다른 시각을 지닌다. 

간혹 자식 세대를 위해 헌신한 어머니들을 위한 헌사와도 같았던 《수상한 그녀》(2014)가 떠오르는 지점도 있긴 하다. 이 영화는 어느 날 20대 꽃다운 시절의 외모로 돌아가게 된 말순(나문희)의 이야기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안긴 바 있다. 《그대 이름은 장미》는 장미의 인생 드라마인 동시에 그의 로맨스보다 모녀 관계에 더 집중하며 차별점을 둔다. 중반 이후의 감정적 울림은 대부분 장미와 현아의 관계성에서 나온다. 즉 이 영화는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보내는 송가이자, 동시에 세상 모든 엄마와 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기도 한 것이다. 엄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의 인생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또한 남성 캐릭터들은 오로지 이 두 여성을 서포트하는 역할에 머문다는 지점이 한층 사려 깊은 선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꿈을 접고 자식에게 헌신하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모성을 강요한다는 혐의로부터 아주 자유로울 순 없다. 《그대 이름은 장미》가 장미의 70년대를 부러 공들여 묘사하며 ‘엄마 이전의 삶’을 그린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 자식을 위해 꿈을 포기했던 모든 어머니들을 위로하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위로가 진부하다고 생각한다면, 한번 떠올려보라. 이전에 한국영화 안에서 이 같은 시도가 얼마나 있었는지를.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2019 한국영화 

올해 한국영화에서는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이 줄을 이을 예정이다. 여성을 단순히 모성의 화신으로 그리거나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입체감 있는 캐릭터로 부각할 작품들이 많다. 1월30일 개봉하는 《뺑반》은 경찰 경위 시연(공효진)이 주인공이다. 뺑소니 전담반, 즉 ‘뺑반’으로 좌천된 시연은 미해결 뺑소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재철(조정석)을 쫓기 시작한다. 물론 팀의 에이스 민재(류준열) 등 남성 캐릭터가 등장하긴 한다. 다만 시연이 따르는 윤 과장(염정아), 뺑반의 팀원이자 경찰대 수석 출신 우 계장(전혜진)까지 조직 내 유능한 인물들을 여성 캐릭터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불안정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살피려는 시도도 있다. 100만 부 이상 팔리며 ‘페미니즘 입문서’로 불린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동명의 영화로 나온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30대 여성 지영(정유미)은 어느 날 친정 엄마와 언니 등에 빙의하기 시작한다. 지영을 통해 관객은 한국 사회 안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의 이야기를 목격하게 된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서도 여성 캐릭터의 활약은 이어질 예정이다. 《콜》은 단편 《몸값》(2015)으로 강렬한 연출 신고식을 치렀던 이충현 감독의 신작. 각각 2019년과 1999년을 사는 두 여성 서연(박신혜)과 영숙(전종서)이 전화 한 통으로 연결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 이영애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은 《나를 찾아줘》는 6년 전 실종된 아들의 흔적을 찾아 낯선 마을로 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예측할 수 없는 일에 휘말리는 정연 역을 이영애가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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