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전쟁 같지 않은, 허접한 진흙탕 싸움이 끝나고 정치권에서는 전과를 따지는 셈이 바쁘다.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을 둘러싼 패스트트랙을 놓고 서로 자기네가 옳다고 강변하지만, 아직 그 내용조차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국민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며칠 동안 국회를 아비규환으로 만든 몸싸움의 잔상은 또 어떤가. 일찌감치 기대감을 잃은 국회라지만 액션영화를 방불케 하는 폭력적 전개로 인해 가뜩이나 고단한 일상에 불쾌감만 더 커졌다.
이 싸움에서는 어차피 누가 이기고 졌음을 따질 수 없다. 국민의 시선으로 보면 양쪽 다 초라하고 부끄러운 패자일 뿐이다. 그들은 그 싸움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내상을 입었고, 그보다 더 큰 아픔을 국민들에게 주었다. 혹시나 하며 정치에 조금이라도 다가가 보려 했던 국민들에게 이를테면 느닷없는 물대포를 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국회 패스트트랙 공방 이후 나온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따지면 집권당인 민주당이나 제1야당인 한국당이나 모두 지지층 결집에서는 일단 상당한 소득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두 정당 모두 정당 지지도가 이전보다 소폭이나마 오르는(5월 첫째 주 결과) 효과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을 성공이라고 치부한다면 큰 오산이다. 대립이 격화될수록 기존 지지층이 더 똘똘 뭉치는 것은 우리 정치판에서 흔히 보아 오던 일정한 경향일 뿐이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셈법은 누가 뭐래도 ‘덧셈’이다. 다수결이 우선하는 민주주의 제도에서 덧셈의 위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크다. 더하고 더해서 뭉친 그 다수가 여론이 되고 표가 되는 이치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에 나타난 민주당과 한국당의 행태는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답답한 모습이다. 둘 다 덧셈 정치에 꼭 필요한 외연 확장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방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는 형국이다. 집권당 대표가 상대 당을 향해 ‘도둑놈’이라는 표현을 쓰거나, 야당이 정부·여당을 향해 ‘좌파 독재’라 몰아붙이고 “다이너마이트로 청와대 폭파”와 같이 도 넘은 발언들을 쏟아내는 것은 상대 진영뿐만 아니라 중간 지대에 있는 사람들까지 밀쳐내는 ‘자해행위’에 다름 아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에 소속된 사람들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지금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최고의 유인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합리성이다.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은 합리적인 행동이나 절차가 선행되지 않는 한 결코 열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보수 정당 지지자는 아니면서 너무 앞서가는 진보에 식상해하는 합리적 보수층이 있다. 그들은 원색적이고 투박한 보수에 마음을 내주기는 아직 꺼림칙하다고 여기며, 보수가 좀 더 유연하고 총명해지기를 원한다. 반대로 진보 정당 지지자가 아니면서 시대 변화에 둔감한 보수에는 싫증을 느끼는 합리적 진보층도 있다. 그들은 진보가 혁신적으로 나아가되 조금은 덜 성급하고 사려 깊기를 바란다. 그런 합리적 보수층과 합리적 진보층을 진정한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바로 지금의 여야 정당들이 해야 할 일이다. 둘 다 합리적인 언행과 전략으로 접근해오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기편에만 의지한 정치를 계속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뺄셈의 정치’이자 미련한 ‘호가호위’이다. 그런 정당은 이미 집권을 포기한 것이나 진배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