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UAE원전 짓는 현대·삼성에 270억원 줘라" 판결 막후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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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중재법원, “추가공사비 달라”는 시공사 요구 일부 인정…한전 “최종 결과 아니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사업을 둘러싸고 한국 기업들이 내홍에 휩싸였다. 사업을 수주한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시공사인 현대건설·삼성물산에 대해 보상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그 액수는 수백억원으로 추산된다. 가뜩이나 적자와 소송 등으로 압박에 시달리는 한전으로선 또 하나의 짐을 지게 됐다. 

지난 2016년 12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의 컨소시엄인 HSJV(Hyundai Samsung Joint Venture)는 한전을 상대로 영국 런던중재법원(LCIA)에 중재요청을 제기했다. UAE 바라카 원전의 공사규모가 계약보다 커졌으니 공사비를 더 달라는 취지였다. 요구 비용은 약 5억 달러(5856억원)로 전해졌다. 이후 올 3월 한전은 승소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시사저널 취재 결과, LCIA는 한전의 보상책임을 일부 인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3월26일 건설완료가 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전경. 오른쪽부터 1,2호기로 이날 1호기 건설완료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 연합뉴스
2018년 3월26일 건설완료가 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전경. 오른쪽부터 1,2호기로 이날 1호기 건설완료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 연합뉴스

 

한전 5800억 중재 재판에서 이기고도 일부 보상해야 하는 상황

애초 HSJV는 중재요청에 앞서 공사비 증액, 공사기한 연장, 설계변경 등 29개 항목에 관해 한전과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한전은 “사전에 HSJV에 약속한 공사비 외에 추가로 들어간 비용은 보전해줄 수 없다”고 맞섰다. HSJV와 맺은 하도급 계약이 럼썸(lumpsum)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게 그 이유다. 럼썸이란 공사 시작 전에 시행사(한전)가 미리 계약한 금액만 시공사(HSJV)에 지급하는 걸 뜻한다. 실제 공사비가 더 들어도 시공사가 감당해야 한다. 

이번 중재를 앞두고 한전은 법무법인 태평양과 영국 현지 대형로펌 등 두 곳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다. 당시 한전은 ‘드림팀’을 꾸리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전해진다. 회계와 건설, 중재법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중재판정으로 한전의 완승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LCIA의 중재판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똑같은 효력을 지닌다. 뉴욕협약에 의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59개국은 중재판정을 따르게 돼 있다. 더군다나 중재 당사자인 한전과 HSJV 모두 한국 기업이다. 사실상 두 기업이 국내에서 민사소송 결과를 받아든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중재판정에 불복하면 국내 법원의 판결을 거쳐 구속력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전은 적자 수렁에 빠져 있다. 지난해 1조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냈다. 올해 전망도 어둡다. 이미 1분기 영업적자 6299억원을 기록했다. 한전 스스로 예상하는 올해 당기순손실은 1조 9000억원 정도다. 

잇따른 소송도 발목을 잡고 있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한전이 피고석에 서게 될 소송은 올 1분기 374건이다. 한수원과 한전KPS 등 자회사의 피소건까지 합하면 총 596건이다. 소송가액으로 따지면 6314억원에 달한다. 그 외에 HSJV와의 중재건을 포함, 총 12건의 중재사건에 휘말려 있다. 

또 한국수력원자력이 ‘통수주’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UAE 원전 정비사업은 6월23일 계약으로 ‘반쪽수주’에 그쳤다. 최대 15년짜리 일괄·단독 수주가 예상됐지만 5년짜리 부분 수주로 축소된 것. 원전사업 시행주체로서 안팎으로 체면을 구기게 된 셈이다. 

 

‘적자’에 ‘송사’까지 시달리는데…“270억 지출 예상”

한편 이번에 LCIA가 중재 판정한 보상액수는 비밀에 부쳐졌다. LCIA 중재규칙 30조(비밀보호·confidentiality)는 “중재 당사자와 중재위원끼리 사전에 서면합의를 하지 않았다면, 법원은 보상 관련 내용을 일절 공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의 배경에 대해 중재법 전문가들은 “민감한 기업정보가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대기업들이 소송보다 중재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관계자는 “한전이 법률대리인 수임료와 HSJV 공사비 보상금으로 270억원 정도를 지출액으로 잡은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한전 홍보팀 관계자는 “중재판정에 대해 맞다, 틀리다를 언급하는 자체가 비밀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되기 때문에 말해줄 부분이 없다”고 했다. 그는 “3월에 나온 중재판정은 최종결과가 아니다”라며 “아직 심의 중이고 그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어 “HSJV는 계약 자체를 문제 삼은 게 아니라 계약 조건의 해석에 대해 중재를 요청한 것이다. 이로 인해 원전 사업이 지장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고 측인 HSJV도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관계자는 “(시사저널이) 취재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어쨌든 HSJV가 일부 패소한 상황이라 중재 결과가 공개되는 걸 꺼려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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