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비밀거래, 죽음으로 묻힌 돈의 종착지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6 08:00
  • 호수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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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전남 광주 농협 주유소장 살인 사건

광주광역시 광산구 외곽에 농협에서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가 있었다. 인근에는 특정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2005년 5월16일 오전 8시30분쯤, 주유소 직원 A씨(30)가 출근해 보니 사무실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이날따라 평소 한 시간 먼저 출근하던 김아무개 소장(46)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 창문을 통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한창 손님을 맞고 있을 때인 오전 11시30분쯤 사은품으로 주던 화장지가 떨어졌다. A씨는 비품을 넣어두던 사무실 안쪽에 있는 창고에 들어갔다. 불을 켜기 위해 전기 스위치를 켠 순간 A씨는 기겁하고 말았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창고 안에서 발견된 참혹한 시신

그곳에 주유소장 김씨가 처참한 모습으로 숨져 있었던 것이다. 김 소장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고, 바닥엔 혈흔이 낭자했다. A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도 참혹한 시신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김 소장은 머리를 집중 가격당했고, 두개골이 함몰돼 있었다. 부검 결과 무려 16군데나 둔기에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양팔의 뼈도 부러져 있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차리고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사건 현장에서 범행 도구를 찾았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주유소에서 사용하던 공구 중 몽키스패너가 없어진 것을 확인됐다. 김 소장의 머리에 난 상처도 몽키스패너에 맞았을 때와 비슷했다. 범인은 주유소 사무실 안에 있던 공구를 이용해 김 소장을 살해하고 자신의 지문과 DNA가 묻은 범행 도구를 들고 나갔던 것이다. 주유소에서 없어진 것은 또 있었다. 주말에 영업을 하고 벌어들인 현금이 모두 사라졌다. 경찰은 이전의 주말 수익금과 비교해 약 180만원 정도로 추정했다. 이런 정황에 따라 경찰은 처음에는 돈을 노린 ‘강도 살인’으로 판단했다.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하기 위해 현장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았다. 정밀감식 결과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이나 DNA 등은 나오지 않았다. 주유소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아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수사가 진행되면서 강도보다는 면식범에 의한 범행에 무게가 실렸다. 단순 강도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경찰은 탐문수사를 통해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 김 소장의 행적을 집중 파악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목격자도 찾았다. 김 소장은 평소 오후 9시에 주유소 문을 닫고 퇴근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소장은 사건 전날인 5월15일 일요일 오전 평소와 다름없이 주유소에 출근했다. 오후 2~4시까지는 마을 축구대회에 참석해 외부활동을 했다. 저녁에는 조합장 B씨와 함께 주유소 인근 식당에서 주민 10여 명과 모임을 가졌다. 이후 7시까지 B씨와 주유소에서 대화를 나눴다. B씨가 자리를 뜬 뒤에는 주유소 옆 주택에 거주하는 건물주 C씨와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나고 있는 모습은 오후 8시45분쯤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갔던 농협 감사이자 조합원인 D씨의 눈에 띄었다. 이후 김 소장을 만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D씨는 주유소를 나온 후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9시20분과 25분에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와 있었다. 그는 1분 후인 9시26분에 수신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D씨는 나중에 이 번호의 주인이 김 소장이었다는 것을 알고 의아했다. 두 사람은 평소 전화번호도 저장하지 않을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김 소장의 휴대전화는 5월17일 오후 7시26분쯤, 현장에서 수십 km 떨어진 광주 도심인 쌍촌동 인근에서 신호가 끊겼다.

경찰은 범행이 일어난 시각을 5월15일 오후 8시45분에서 9시25분 사이로 추정했다. 김 소장이 C씨와 함께 목격된 시각부터 D씨에게 ‘부재중 전화’가 걸려온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물론 D씨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김 소장인지 아니면 범인인지에 따라 범행시각은 달라질 수 있다.

경찰은 김 소장과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건물주 C씨를 1차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벌였다. 먼저 C씨의 알리바이를 집중 추궁했다. 그는 “8시50분쯤 주유소를 나와 집으로 갔다”며 “내가 나올 때 김 소장은 분명 살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C씨는 주유소를 나와 집으로 가서 복숭아 통조림을 먹은 후 당시 유행하던 TV 드라마 《토지》를 봤다고 진술했다. 그는 자신이 봤던 드라마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C씨가 봤다는 장면은 9시22분에 나온 것이었다. 경찰은 C씨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벌였다. 결과는 ‘거짓 반응’이 나왔다. 여기에 C씨가 자주 주유소에 들러 김 소장을 만났다는 것과 창고 물품을 가지고 다툼이 있었다는 증언까지 확보했다.

경찰은 이런 사실을 들어 C씨를 더욱 의심했다. 그러나 C씨는 “나는 죽이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C씨를 범인으로 보기에는 ‘범행동기’가 확실치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살인으로 이어질 만한 원한이나 채무 관계도 없었다. 더욱이 C씨는 평소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거짓말 탐지기 반응이 ‘거짓’으로 나온 것도 이런 영향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범죄심리학자들도 C씨가 범인일 확률을 낮게 봤다. C씨와 김씨가 함께 있는 것을 본 목격자가 있었고, 단순한 시비로 사람을 죽였다고 보기에는 동기가 약했다. 또 살인을 하고 20분이 안 되는 상태에서 본 TV 드라마 장면을 제대로 기억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C씨는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다. 아울러 수사도 답보 상태에 놓이게 됐다.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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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선상에 오른 조합장 B씨

이런 상황에서 김 소장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경찰이 주유소 회계장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면세유가 누락된 정황을 발견했다. 김 소장은 농민들에게 공급해야 할 면세유를 몰래 빼돌려왔던 것이다. 이를 위해 전남 나주에 기름 저장탱크를 별도로 마련하기도 했다. 그의 범행은 2004년 12월부터 2005년 3월까지 3개월 정도 이어졌다. 김 소장은 이렇게 착복한 면세유를 다른 주유소에 몰래 팔아넘겼다. 경찰은 주유소 장부를 분석한 결과 김 소장이 빼돌린 면세유가 약 2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돈의 흐름을 추적하면 김 소장 죽음의 실마리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찰은 김 소장의 은행계좌와 금융거래 내역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김 소장 개인계좌에 입출금된 내역은 없었다. 그의 금융거래에서도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김 소장이 빼돌린 비자금이 다른 곳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 그러다 김 소장과 조합장 B씨의 ‘특별한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 소장은 원래 개인사업을 하다가 실패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런 그가 2000년 농협에 계약직으로 입사했고, 2년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2004년 3월에는 농협 직영주유소를 총괄 운영하는 소장 자리에 올랐다. 조합장의 신임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재기의 발판을 만들어준 B씨가 김 소장에게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실제 김 소장은 주변에서 ‘조합장의 오른팔’로 불릴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었다. 농협 안팎에서는 김 소장이 면세유를 빼돌릴 수 있었던 배경에 조합장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사건이 발생한 때는 조합장 선거를 2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B씨는 3선 조합장에 도전하고 있었다. 경찰은 김 소장이 빼돌린 비자금이 조합장 선거에 흘러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력을 집중했다. 자연스럽게 조합장 B씨가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B씨는 김 소장의 죽음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항변했다. 사건 당일 알리바이에 대해서도 “사건 발생 시각에 고등학생인 아들을 데리러 도서관에 다녀왔고, 집에서 딸이 빌려온 비디오를 함께 보다가 잠들었다”고 진술했다. 김 소장의 면세유 횡령에 대해서도 “횡령 사실을 알고 한 번 경고를 준 적은 있다”면서 자신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경찰은 B씨의 주장을 깰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심증은 깊었지만 물증이 없었던 것이다.

B씨는 얼마 후 치러진 조합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 마을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주유소도 현재는 개인이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일어난 지 14년이 흘렀지만 김 소장이 빼돌린 돈의 종착지와 살인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범인은 면식범이다

범인은 김 소장과 알고 있는 사이인 것은 분명하다. 김 소장이 범인을 경계하거나 몸싸움을 벌인 흔적이 전혀 없다. 창고에도 두 사람이 함께 간 것으로 보인다. 김 소장이 다른 장소에서 살해된 후 창고에 유기됐다면 끌린 흔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창고 안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 미리 둔기(몽키스패너)를 챙긴 범인이 김 소장을 창고로 유인한 후 불시에 뒤에서 머리를 집중 공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키 180㎝, 몸무게 90㎏의 건장한 체구인 김 소장은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한 채 순식간에 당했던 것이다.

주유소 안에 있던 둔기를 사용하고, 여기저기 뒤진 흔적 없이 정확히 금고 안에 있던 돈만 챙겨서 나갔다. 이것은 범인이 주유소 내부 사정을 훤히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2. 범인의 목적은 살인이다 

범인이 김 소장과 안면이 없는 단순 강도였다면 굳이 잔인하게 죽일 이유가 없었다. 기절을 시킨 후 결박해 제압하면 얼마든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무려 16차례나 둔기로 머리를 내리쳤다. 금품을 노린 강도 사건으로 보기에는 범행 수법이 너무 잔인하다.

범인은 범행 후 주유소 안을 모두 걸어잠가 밀실 상태로 만들었다. 이후 넓은 현관문을 두고 높이 160cm의 좁은 화장실 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여기에는 두 가지 노림수가 엿보인다. 김 소장의 시신이 발견되는 시간을 최대한 끌어서 도주할 수 있는 시간을 벌려고 했거나 다른 사람의 눈에 쉽게 띄는 현관문을 피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런 경우 범인이 주변 지리를 훤히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김 소장의 휴대전화를 가져간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단순 강도라면 김 소장을 쓰러뜨린 뒤 재빨리 현금을 챙겨 현관문을 빠져나가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런데도 범인은 김 소장의 휴대전화를 챙겼다. 김 소장의 휴대전화 내용이 노출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3. 제3의 인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범인은 농협 주유소와 밀접하게 관련 있어 보인다. 특히 김 소장이 오랜 기간 면세유를 빼돌리고 그것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의 사용처가 드러나지 않았다. 더욱이 사건이 일어날 당시는 농협 조합장 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이었다. 경찰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찰 수사는 한쪽 방향에만 너무 집중됐다. 용의선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심증’만 난무했지 ‘물증’이 나오지 않았다. 김 소장을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청부살인’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또한 김 소장 주변인들과 전혀 별개인 제3의 인물이 범인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이 사건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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