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헌 인터뷰①] “법은 피지배자의 지배자 견제 수단 돼야”
  • 김지영 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0 14: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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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30주년 특별기획 ] 대한민국, 길을 묻다(27)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이야기 《그분을 생각한다》 펴낸 ‘인권변호사’ 한승헌

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1)조정래 작가 (2)송월주 스님 (3)조순 전 부총리 (4)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5)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6)김원기 전 국회의장 (7)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8)박찬종 변호사 (9)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10)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11)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12)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13)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14)이종찬 전 국회의원 (15)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16)박관용 전 국회의장 (17)송기인 신부 (18)차일석 전 서울시 부시장 (19)임권택 감독 (20)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21)이문열 작가 (22)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교수 (23)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24)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25)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26)손숙 예술의전당 이사장 (27)한승헌 변호사

한 사람의 삶 크기와 무게는 그 시대 요구를 얼마나 제대로 반영해 충실히 응답했느냐로 측정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1세대 인권변호사’인 한승헌 변호사의 삶의 크기와 무게는 크고 묵직하다. 독재정권 서슬이 퍼렇던 70~80년대, 당시 ‘민주화’라는 시대 요구에 몸소 응답했던 한승헌 변호사. 그는 변호사로 누릴 수 있는 안온한 삶을 스스로 뒤로 물렸다. 그 자리를 궂은일과 남을 위해 헌신하는 일들로 채웠다. 법정 싸움과 거리 투쟁 등으로 두 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한 변호사는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조작 사건부터 1974년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등 한국 현대사를 얼룩지게 한 시국사건들 한복판에 섰다. 양심수와 시국사범 변호에 발 벗고 나섰다. 이후에도 문익환 목사 방북 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 변론을 맡았다.

그는 최근 출간한 스물일곱 명의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이야기 《그분을 생각한다》에서 “이 세상에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도 있다”며 “우리는 자칫 자신이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죄인이 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준엄한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1934년생, 올해 85세. 법조계 원로로 여전히 냉철한 이성으로 시대를 꿰뚫는 혜안을 소유한 이 시대 진정한 원로 가운데 한 분이다. “누구로부터도 책잡힐 오점 하나 없이 늘 올곧은 자세를 유지해 온 참된 지식인의 본보기”로도 평해진다.

그런 한 변호사와 인터뷰하긴 결코 쉽지 않았다. 6월11일 오후 5시경 한 변호사의 서울 은평구 갈현동 자택으로 전화를 걸어 인터뷰 요청을 했다. 한 변호사는 첫 전화통화에선 승낙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날 두 번째 통화에서 “좋은 말 할 게 없어서 (우리 집에) 오셔도 들을 게 없을 거다”며 “우리 집사람이 (언론에) 나가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말린다. 집사람 말을 들어야지”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그때부터 한 변호사와 인터뷰 실랑이가 한 달 이상 이어졌다. 기자가 한 변호사 자택을 불시에 ‘급습’하기도 했다. 삼고초려 끝에 결국 7월31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19층 카페에서 한 변호사와 마주 앉는 데 성공했다. ‘유머리스트’로도 유명한 한 변호사의 유머 본색은 이날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90분 인터뷰였다. 한 변호사의 깡마른 얼굴엔 형형한 눈빛이 서려 있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인터뷰를 여러 번 요청했는데 거절하셨습니다. 특별히 인터뷰를 사양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독자들에게 이렇다 할 기쁨이나 보람, 깨달음을 줄 만한 그런 답변의 밑천이 부족했어요. 귀한 지면(紙面)에 합당한 내용도 없는 빈곤한 말을 늘어놓을 바에야 아예 함구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언다필실(言多必失·말이 많으면 반드시 실수한다)이란 옛말도 떠올랐고요.”

그래도 이렇게 나오셨으니까, 편하게 여쭙겠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은퇴한 사람치곤 한가하지 못한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는 조상 때부터 ‘한가(韓哥)’인데도 한가하지가 못하니 나에게 어떤 인생의 숙제가 아직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체력 소모가 따르니까 되도록 외출은 삼가면서 지난달엔 《그분을 생각한다》라는 신간을 한 권 냈습니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건강에 관해선 제가 명답 하나를 마련해 놓고 있어요. 몇 해 전에 로펌에 나갈 때만 해도 컴퓨터 모니터에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문자가 떴는데 얼마 전엔 ‘치매 테스트 받으러 오라’는 우편물이 날아옵니다. ‘80대 중반의 노인이 됐구나’ 하는 실감이 납니다. 누가 건강을 묻는 인사말을 해 오면 이런 준비된 답변을 합니다. ‘네, 제 나이만큼 건강합니다.’ 어느덧  내 나이 80대 중반이 되다 보니 아주 건강할 리는 없고 그렇다고 환자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나이만큼’이란 수식어를 붙이면 국회 인사청문회에 가도 트집 안 잡히고 무사히 통과할 수 있어요. 웃음과 유머러스한 생각이 저의 건강비결입니다.”

 

“웃음과 유머러스한 생각이 건강비결”

운동이나 음식 조절은 하시나요.

“저는 평소 소식(小食)하는 편이지요. 그래서 음식을 많이 먹는 친구를 보면 배가 아프기도 해서 ‘많이 먹다 걸리면 특가법이다, 특가법’ 이렇게 한마디 하지요. 산에 가거나 헬스클럽에 다니는 그런 운동은 하지 않습니다. 실내자전거 정도입니다. 건강관리에 적극성이 모자라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무슨 운동을 하시느냐’고 물으면 ‘내가 변호사니까 ‘석방운동’을 많이 했지요’라고 우스개로 응대하기도 합니다(웃음).”

그렇죠. 인권변호사로 양심수 석방운동을 많이 하셨죠.

“내 노력으로 남의 고통이 덜어진다면 적지 않은 보람이 됐을 텐데 실제론 그렇지 못한 아쉬움과 분노를 많이 체험했습니다. 특히 독재정권하에선 무죄임을 확신하면서도 유죄판결이 나리라는 점 또한 확신해야 되는 모순과 자괴감을 수도 없이 겪었으니까요.”

지난 6월10일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빈소에는 다녀오셨는지요.

“물론이지요. 퍼스트레이디로서의 학식과 신념을 갖추신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우리나라의 여성운동, 민주화운동을 위해서도 큰 공로를 남기신 여성 지도자이셨습니다. 특히 군사정권에서 납치를 당하고 또 사형 선고까지 받은 부군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신 투사로서 널리 기억돼야 할 분이십니다. 김대중 대통령에겐 아내이자 동지로서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변호사님께선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 선포 후 일본에서 납치되신 후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회부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변호했고, 김대중 정부에선 감사원장을 지내셨습니다.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이 두터우신데, 어떤 분으로 평가하십니까.

“민족의 지도자로서 대통령까지 지내신 분에 대해 한두 마디로 간략하게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편견이나 정실(情實·사사로운 정에 이끌림)에 기울지 않고 말씀드린다 해도, 불의한 탄압을 이겨내고서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분단된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지향해 헌신한 위대한 지도자라고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영예가 결코 우연한 경사가 아니라고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했을 땐 변호인단에 들어가셨고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도 맡으셨습니다.

“그분은 지방의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법조인답게 인권 옹호활동과 민주화운동을 했습니다. 대통령 재임 중에 탄핵소추를 당했을 때 변호인단에 참여한 일과 그의 정부의 중요한 과제이던 사법제도개혁의 추진위원장으로 개혁안의 성안에 일조한 것을 적지 않은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심판의 변호인단의 한 사람으로서 당시 보수 야당 횡포를 방어한 것도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현 문재인 정부도 검찰 개혁을 중요 국정과제로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경찰이 수사권을 어느 정도까지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가, 그렇게 했을 경우 국민 인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가, 또 검찰이 모든 걸 지휘하고 결정하는 이른바 ‘검찰왕국’이 개혁될 수 있는가 등을 고려해야 할 겁니다. 결코 만만한 과제는 아니지요. 정부 해당 부처 간의 입장과 견해 차이를 어떻게 조정하느냐, 다시 말해 부처이기주의를 초월해 오로지 국민 인권과 권력 민주화를 최대공약수로 받들고 제도 개혁을 해야 될 것입니다. 명분 여하 간에 상당한 진통이 수반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2월30일 청와대 초청 송년만찬에 참석한 한승헌 감사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2월30일 청와대 초청 송년만찬에 참석한 한승헌 감사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개혁, 상당한 진통 수반될까 걱정”

법원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고위 법관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엄청난 사태도 어느 면에서 사법부가 짊어져야 할 자업자득의 업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사법부의 그동안 불미스러운 여러 맹점을 가감 없이 점검하고 개혁해야죠. 그런데 사법권 독립과 맞물려 있는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법원 개혁엔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죠. 사법권 독립이 외부요인이 빚어낸 걸림돌이라면 법관 독립은 사법부의 내부적 요인과 얽혀 있어 들춰내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사법부에 대한 ‘외풍’ 못지않게 법관에 대한 ‘내풍(內風)’이 더욱 위험하다는 경고를 여러 번 되풀이한 바 있습니다. 사법부의 자생적 치부를 먼저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게 여간 어렵지 않은 일이어서 걱정입니다.”

사법부가 독립을 지켜내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외풍이 사법권을 침해할 수 있지만 사법부 내의 내풍도 사법을 망치는 위험요인이 됩니다. 우선 법관들의 굳건한 신념과 노력이 중요합니다. 특히 정치권력의 입장에 맞춰 눈치 보며 재판하는 자기 모독을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법에 대해 ‘지배계급의 통치 수단’으로 규정하는 이론도 있습니다. 변호사님께선 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법을 통치권자가 피치자(被治者)인 국민을 다스리는 하나의 수단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근대 이후 법치주의는 민주국가에서 국민이 지배자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이해돼야 합니다. 다시 말해 지배자의 하향성 통치 수단이 아닌 피지배자의 상향적 견제 수단이 돼야죠. 지배자가 먼저 준법을 하고 그 준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하향적 지배를 하는 게 올바른 법치주의죠.”

그런데 지금은 법이 통치권자를 향한 상향적인 견제 기능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법이 상향적인 견제 기능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의회주의가 제대로 확립돼야 합니다. 상향적인 견제 수단이 뭐냐. 그 수단은 법이죠. 그 법은 입법기관인 의회가 제대로 입법 작용을 완수해야 합니다. 집권자에 대한 견제 내지는 책임까지 물을 수 있는 그런 법치주의가 돼야죠.”

의회주의가 제대로 확립돼야 한다는 명제는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잘 안됩니다.

“그러려면 이제 선거를 통해 국회가 구성될 때 정말 민주적인 세력이 국회 다수당이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법치주의도 허울만 남게 되는 거지요.”

요즘은 잠잠해졌지만 개헌 논란이 한창 일었습니다. 개헌에 대해선 어떤 입장이십니까.

“개헌은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이건 일반적인 얘기인데, 근본적으론 제왕적 대통령이 나오지 않도록 균형과 견제 기능을 갖춘 헌법이 나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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