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척 담장 안에도 ‘그래도라는 섬’ 있다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3 11:00
  • 호수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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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교정하는 어느 직장인 이야기’ 펴낸 장선숙 교도관

“철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용자와 교도관이 있다. 같은 날 서로 다른 집에서 태어나 한 사람은 교도관 제복을 입고, 한 사람은 수용자복을 입었다. 어쩌면 이들은 비슷한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때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며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염려하지만 각자의 관점으로만 서로를 판단하기도 한다.”

의정부교도소 장선숙 교감이 30년 동안 교도관으로 재직한 경험을 담은 에세이 《왜 하필 교도관이야?》를 출간했다. 장 교감이 들려주는 교도관의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힘과 돈에 비굴해진 교도관’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고 싶은 힘든 시간과 공간에서 수용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수용자 스스로 성찰하게 도와주는 사람, 또한 사회와 가족들까지 포기해 세상을 증오하고 좌절한 이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장 교감은 “교도관은 가장 어둡고 답답한 곳에서 그 어둠을 탓하기보다 촛불이 되어 희망을 잃은 수용자들에게 빛과 온기로 한 생명이라도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왜 하필 교도관이야?》 장선숙 지음│예미 펴냄│296쪽│1만5000원 ⓒ 예미 제공
《왜 하필 교도관이야?》 장선숙 지음│예미 펴냄│296쪽│1만5000원 ⓒ 예미 제공

“절망의 공간 아닌 반성과 성찰 기회 주어야”

“나는 30년 동안 교도소에 수용 중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은 수용자와 교도관이 어쩌면 비슷한 운명일지 모른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장 교감은 그렇게 말하기까지 30년 동안 ‘교도관은 어떤 사람인가’를 자문해 보곤 했다.

“박노해 시인의 《해 뜨는 사람》에 등장하는 교도관처럼 여러 날 장마로 바깥 공기조차 못 마시는 이들에게 햇살을 안고 출근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사람인가? 교사로 도사로 파이프 역할을 하며 세상을 잇는 사다리 같은 사람인가? 우락부락한 수용자들 뒤에 힘없이 뒤따라다니는 무기력한 사람인가? 아니면 곤궁에 처한 이들을 교활하게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사람인가?”

장 교감은 한때의 잘못으로 교도소에 수용됐지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수용자들과 그들을 옆에서, 곁에서 온 힘을 다해 돕고 있는 가족과 교정 봉사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교도관들의 노력과 헌신, 소명의식을 담담히 들려주며 사회의 편견이 교정되기를 바란다.

“모든 출소자들이 전과자라는 이름으로 평가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잘못된 것 자체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살았던 그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과 피해자,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주는 것은 어떨까? 이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새롭고 긍정적으로 변한 그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어떨까?”

장 교감은 교도관들이 힘든 근무 여건과 사회적으로 낮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소명을 가지고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많은 교도관들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존귀한 일, 그 소중한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열두 척 높은 담장 안으로 걸어들어간다고 말한다.

“간혹 우리 수용자들은 내게 ‘엄마’라는 표현을 한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도 있지만 연배가 훨씬 많은 수용자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가장 절박하고 어둡고 무서운 곳에서 자신들을 보호해 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장 교감은 수용자들에게 긍정적인 수용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난 시간과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라며, 앞으로의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 책읽기와 감사일기, 명상 등을 추천한다. 조금 더 생각이 깊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에게는 글쓰기 치유를 권하기도 한다.

 

“내가 힘들 때 힘이 되어준 수용자도 많아”

“위기는 누구에게나 뜻하지 않게 닥칠 수 있다. 이런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환경, 각자의 위치에서 고개 한 번 돌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접근한다면 어떨까 한다. 절망의 공간일 수 있는 교도소가 누군가에게는 저 깊은 수렁에서 오히려 희망이라는 빛줄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 모두 김승희 시인이 말씀하신 가장 낮은 곳에서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그래도라는 섬’을 하나씩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비금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장 교감은 뭍에 나와 만난 교도관이라는 직업이 소명이고 선물이라고 말한다. 교도관이라는 일을 통해 크나큰 선물들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철부지였고 이기적이었던 내가 주위를 돌아보고 배려할 줄 알게 됐고, 꿈꿔보지도 못했던 공부들을 하게 됐고, 너무도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됐다. 그래서 그분들을 통해 둥글어지고, 유연해지고, 성장하게 됐다. 향후 진로를 고민하다 뜻하지 않았던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고, 교정공무원의 행복을 고민하다 박사까지 됐다. 그리고 내가 힘들 때 힘이 돼 주는 많은 수용자, 출소자들이 있다. 이만하면 나는 내 일을 통해 선물을 받고 있는 것 아닌가?”

장 교감이 받은 선물은 이렇다. 보안현장 업무는 물론이고 수용자들의 출소 후 성공적인 사회 정착을 위해 취업 및 창업지원 업무 등 다양한 사회복귀 지원 업무를 수행한 공로로 2015년에 교정대상을 수상했다. KTV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이다》와 인사혁신처 홍보영상에 출연해 교정 공무원을 알리는 데 앞장섰으며, 수용자와 교정 공무원의 행복한 진로와 관련된 연구들을 수행해 교도관 최초로 직업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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