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지구를 위한 기도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1 17: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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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전쟁과 성폭력, 권력다툼이 없는 세상을 바라며

밤새 불을 끄는 꿈에 시달리고 있다. 어젯밤에도 나는 호주로 달려가 불타는 캥거루·코알라를 안고 울다가, 잠에서 깨어나 물을 마셨다. 내가 마시는 물이 내 꿈을 타고 호주 대륙에 비로 내리기라도 하면 좋겠다는 기도를 한다. 꿈속에서라도 불 끄러 가고 싶은 사람이 나 혼자가 결코 아닐 텐데, 이 힘을 어떻게 모아내야 할지 몰라서 괴롭다. 급기야 호주의 산불 소식에 한반도의 조그만 밤이 점점 더 어둡다.

우리나라에서도 산불이 점점 많이 일어난다. 기후가 변하고 있어서다. 지구는 뜨거워지는데 이 전 지구적인 재앙을 책임져야 할 주체들은 분산되어 있다. 작년 4월 고성-속초를 이으며 일어났던 한국의 산불은 한국 정부가 전국의 소방차를 모아서 껐지만, 브라질과 호주의 산불은 경각심 없고 생각 부족한 그 정부들의 대응 때문에 더 커지고 더 위험해졌다는 것이 세계 언론의 공통된 보도다. 이 와중에 인공적 ‘불 지르기’의 최악 버전인 전쟁 위험을 트럼프가 조장하고 있는 이러한 현실. 어찌 꿈이 사납지 않겠는가.

꿈자리만 사나우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지역에 살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구적 차원의 기후위기를 그레타 툰베리의 망상에 불과한 것처럼 가볍게 여긴다. 트럼프뿐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많은 미국인이 그렇다. 20세기를 폭력의 세기로 몰아넣은 군산복합체의 욕망이 지구별의 위기보다 더 중요한 모양이다. 곰곰 생각하면 트럼프와 미국인들만 그럴까. 나는 선거가 다가오면 온통 온 국민적 권력다툼 스포츠 경기를 하듯 언론이 앞장서서 몰입하는 나라에 산다. 그 틈을 타 성폭력 권하는 사회의 저급남성들은 재판정에서 풀려나오는 나라에 산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심지어 109시간씩 일해야 하는데 그 노동자들이 쌓아올린 부를 몇조원씩에 외국에 팔면 환호를 받는 나라에 산다. 남의 나라 대사가 우리 청년들을 전쟁터에 보내야 한다고 겁도 없이 말하는 나라에 산다.

1월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참모진을 배석시킨 가운데 이란의 탄도 미사일 공격과 관련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 AP 연합
1월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참모진을 배석시킨 가운데 이란의 탄도 미사일 공격과 관련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 AP 연합

모든 생명이 평화 이룩하기를

하지만, 너무 비관하지는 말자. 나는 미약한지라 지구별과 인류세의 운명에 어떤 변화도 일으킬 능력은 없지만, 마지막까지 잘 살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지구별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인류세가 지속된다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우리 생애 안에 종말이 오리라는 실감을 좀 더 할 수만 있다면, 종말을 조금은 뒤로 미루면서 더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는 노력을 함께 할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의 꿈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생명이 하나의 커다란 공동체로서 서로 위하고 보살피고 고통과 기쁨을 나누며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인류의 목적은 보다 고양된 정신으로 다른 인류를, 다른 생명을 존중하고 존경하게 되는 일이며 단지 신진대사를 오래 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그러므로 좀 거창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전쟁 안 돼 트럼프!” 낮고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도 말하고 싶다. 하루하루를 사랑하며 살고자 오늘도 차별과 불평등과 맞서자. 힘겹게 겨울을 나는 동네 길냥이들한테도 안부인사를 하자. 이제 불 끄는 꿈을 꾸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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