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힘의 미국 야구, 기술의 일본 야구’를 믿는가
  •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7 15:00
  • 호수 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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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경험의 윌리엄스 KIA 감독‧성민규 롯데 단장에 희망 거는 야구인들

지난해 하위권 성적이라는 홍역을 심하게 앓았던 기아 타이거즈는 KBO 리그 역사상 3번째 미국 출신 감독인 매트 윌리엄스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최초 미국인 감독은 아직 국내 야구팬들 뇌리에 생생히 살아 있고 지금도 심심치 않게 감독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제리 로이스터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롯데 자이언츠 사령탑을 맡아 지휘봉을 잡았던 그는 세 시즌 모두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지만 결국 경질되고 말았다. 이후 트레이 힐만 감독이 2017년과 18년 2년간 SK 와이번스를 이끌었다. 그리고 2018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에 이어 이번에 윌리엄스 감독이 부임한 것이다. 앞선 두 명의 감독과 다르게 윌리엄스 감독은 현역 시절부터 메이저리그(MLB) 스타로 인정받았다. 통산 1866경기에서 뛰며 378개의 홈런을 기록했던 거포였고 268의 타율과 1218타점을 올린 스타 출신이다. 5번이나 올스타에 선정됐을 뿐 아니라 수비도 수준급으로 4차례 골드글러브(3루수)를 받았다. 지난해 MLB 우승팀인 워싱턴 내셔널스의 감독으로 2014년, 2015년 활동했고, 첫해인 2014년 내셔널리그 감독상을 수상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윌리엄스 감독의 경우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앞선 두 명의 감독들보다 최소한 성적상으론 앞선다.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었던 로이스터는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플레이오프에서 빠르게 탈락한 것이 경질 이유였고, 힐만 감독은 우승 이후 가족 문제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매트 윌리엄스 기아 감독 ⓒ연합뉴스
매트 윌리엄스 기아 감독 ⓒ연합뉴스

윌리엄스 기아 감독, MLB 스타 선수·감독 출신

그럼 이번 윌리엄스 영입도 지난해 부진했던 기아의 성적 향상이 주된 이유일까. 당연히 프로 세계에서 성적은 중요한 평가 척도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결과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과 팀 체질 및 분위기 전환, 적극적인 데이터 활용 등에 그 목적이 있다.

첫 미국 출신 로이스터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No Fear’, 즉 ‘두려움을 갖지 말자’는 구호를 내걸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자율 야구를 펼쳤다. 그는 넓은 목장에 선수들을 방목하듯 자율을 보장하면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믿었다. 어차피 실력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이 프로의 숙명이기 때문에 자기 관리에 실패한다면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선수 스스로가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런 스타일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팀을 8년 만에 포스트시즌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어도 그가 경질된 가장 큰 이유는 단기전인 플레이오프에도 정규시즌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전략으로 나서 상대팀이 이를 대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최소한 선수들이 스스로를 책임지는 의식과 타이트한 훈련만이 선수들의 기량과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줬다.

2019년 9월4일 성민규 롯데 자이언츠 단장(왼쪽)이 공필성 감독 대행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9월4일 성민규 롯데 자이언츠 단장(왼쪽)이 공필성 감독 대행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로이스터·힐만 감독, 각자의 철학 팀에 도입해 성공

힐만 감독은 당시 와이번스 선수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파악하며 팀을 일약 거포군단으로 변신시켰다. 그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선수들을 감독 자신의 스타일로 끌고 가려는 다른 팀의 감독과 차별화를 가져왔다. 한마디로 자신에게 주어진 재산인 선수들의 특징을 파악했고 이들의 특징에 맞춰 팀의 색깔을 변화시킨 것이다.

두 명 모두 한국에서의 생활을 마친 후 미국으로 돌아가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본국으로 복귀해 한국에서의 감독 생활이 실제로 현지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량화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들은 자신들에게 모든 것이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았고 현지에 복귀해서도 어떤 상황이라도 선수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메이저리그가 야구에서 세계 최고 리그라는 데는 이견을 찾기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외국인 선수들이 미국 내 리그에서 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각 구단의 프런트에도 메이저리그 방식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해 시즌 종료 후 장기간 시카고 컵스의 동북아 스카우트로 활약해 능력을 인정받았던 성민규씨를 신임 단장에 선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성 단장은 38살의 나이로 아직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는 추신수·이대호·정근우·김태균 등과 함께 야구를 했던 동기다.

메이저리그에 밝은 단장이 발탁되며 롯데는 획기적인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우선 미디어와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 과감한 현지 출신 코칭스태프 영입과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구속, 움직임, 회전수를 정확히 측정하는 렙소도(타구 비거리·스피드·회전수 등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시스템) 도입 등 부임 후 확실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최근 차명석·정민철 등 선수 출신 단장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도 주목받는다. 이는 각 구단마다 조금 더 현장감을 가진 프런트 요원을 원해서다. 또 방송 해설자로 활동하며 감이나 느낌이 아닌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제시한 점도 합격점을 받았다. 이런 것이 뒷받침될 경우 팀에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미 축구의 경우 국가대표팀 감독에 외국인이 선임되는 것이 전혀 어색지 않다. 마치 우리 양궁 지도자들이 세계 각국의 지도자로 초빙받아 활약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성적 상승을 목적으로 하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방식을 조금 더 효율적이고 과학적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과거 메이저리그는 장타를 바탕으로 한 선이 굵은 야구, 일본 야구는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세밀한 야구란 평가를 했지만 이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됐다. 지난해 탬파베이 레이스와 경기를 가졌던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두 타자 연속으로 좌타자가 나오는데 상대방 벤치에서 각각 다른 좌완 투수를 올렸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야구 상식상 이해하기 어려운 교체였다. 하지만 같은 좌타자지만 특징이 달랐고 이는 상대 팀의 좌투수도 마찬가지란 것이다. 결국 확률상 이 좌완 투수가 저 좌타자를 잡아낼 확률이 높다는 것을 데이터화해 교체했고 이 작전은 성공했다.

다 옳고 다 맞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앞서 있고 우리 야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과연 필드의 사령관인 감독을 통해 어떻게 반영될지 우리는 또다시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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