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 이정은?…다시 피말리는 ‘샷 전쟁’이 시작됐다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05 14:00
  • 호수 159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쿄올림픽 1년 연기' 돌발변수 등장, 누구를 미소 짓게 할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국 여자골프 판도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올림픽 출전 티켓을 놓고 사활을 건 승부를 벌이던 선수들이 ‘2020 도쿄올림픽’ 1년 연기라는 뜻밖의 상황을 만난 것이다. 이런 예기치 못한 변수가 어느 선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지 흥미로워졌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모든 스포츠가 중지됐다. 골프도 예외가 아니다. 남녀 골프 세계랭킹은 2020년 11주 차(3월15일)로 멈췄다. 다음 발표 사항이 있을 때까지는 현 랭킹이 그대로 유지된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는 올 시즌 4개 대회를 치른 뒤 3월19일 개막 예정이었던 볼빅 파운더스컵부터 롯데 챔피언십(4월), 휴젤 에어 프레미아 LA오픈(4월), 메디힐 챔피언십(5월)까지 대회 일정을 모두 연기했다. 올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피레이션은 9월로 연기돼 열린다. 이미 2월 중순부터 4월초까지 예정됐던 6개 대회를 코로나19 탓에 치르지 못한 LPGA투어는 이로써 총 9개 대회의 개최를 보류했다.

1월20일 박인비가 미국 플로리다주 레이크 부에나 비스타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챔피언스 토너먼트 최종 라운드 2번 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AP 연합
1월20일 박인비가 미국 플로리다주 레이크 부에나 비스타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챔피언스 토너먼트 최종 라운드 2번 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AP 연합

세계랭킹 30위까지 한국 선수 13명 촘촘히 포진해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일본 정부, 도쿄도, 대회조직위원회 등은 도쿄올림픽을 내년 7월23일부터 8월8일까지 열기로 했다. 다만 2020 도쿄올림픽 명칭은 그대로 쓰기로 했다. 이에 따라 도쿄올림픽 골프 남자 경기는 7월29일부터 8월1일까지 열리고, 여자 경기는 1주일 뒤인 8월5일부터 8일까지 펼쳐질 예정이다. 올림픽 골프는 남녀 모두 국가별 2명으로 출전 선수가 제한된다. 하지만 세계랭킹 15위 이내에 들면 한 국가에서 최대 4명까지 출전할 수 있다.

올림픽이 1년 연기된 탓에 출전 선수 최종 확정은 내년 6월말까지의 세계랭킹으로 결정된다. 프로대회도 중요하지만, 올림픽 출전은 평생 한두 번 찾아올까 말까 한 기회다. 올림픽 출전이 평생 ‘꿈’인 한국의 여자 프로골퍼들은 코로나19 종식과 함께 재개될 LPGA투어를 비롯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를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들 대회에서 우승 등 좋은 성적을 내야 세계랭킹을 더 높게 끌어올릴 수 있다. 세계여자골프랭킹은 2년 동안 출전한 대회 성적으로 산정된다. 역시 LPGA투어의 배점이 가장 높다. 나머지 KLPGA·JLPGA·LET 대회는 비슷하다. 메이저 대회를 기준으로 LPGA투어 대회 우승자는 100점, 한국과 일본 대회 우승자는 20점 안팎이다.

2019년 10월25일 부산에서 열린 LPGA BMW 챔피언십 대회의 이정은 ⓒ연합뉴스
2019년 10월25일 부산에서 열린 LPGA BMW 챔피언십 대회의 이정은 ⓒ연합뉴스

올초 17위→11위 상승한 박인비 저력에 후배들 ‘초긴장’

세계 최정상급인 한국 여자골프는 올림픽 티켓을 따기 위해 우리 선수들끼리 그야말로 피 말리는 ‘샷 전쟁’을 벌여야 한다. 한국 선수는 세계여자골프랭킹 15위 이내에 6명이나 몰려 있다. 4월2일 현재 고진영(26)이 1위를 계속 지키고 있는 가운데, 3위 박성현(28), 6위 김세영(28), 10위 이정은6(25), 11위 박인비(33), 13위 김효주(26) 등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선수는 언제든지 랭킹이 뒤집힐 수 있는, 점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랭킹 30위까지 유소연(31) 등 7명이나 촘촘히 포진해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LPGA투어에 나서는 유소연·허미정(32)·양희영(32) 등도 계속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한국이나 일본에서 뛰는 선수들보다는 미국에서 뛰는 선수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올림픽 출전 티켓을 사실상 거머쥐었다고 안도했던 고진영과 박성현까지도 다시 긴장해야 할 상황이다. 추격자들이 한 번만 우승하면 랭킹이 껑충 뛰기 때문이다. 박인비는 올 시즌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랭킹 17위에서 11위로 수직상승했다. 한때 상위 4명과 다소 격차가 벌어져 올림픽 2연패 도전이 쉽지 않을 것 같았던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인비는 연기된 일정과 많아진 대회 수만큼이나 다시 한번 역전의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됐다. 현재 귀국해 국내에서 연습에 여념이 없는 박인비는 “올림픽을 준비한 선수들을 생각하면 취소가 아닌 연기라서 다행이다. 기회가 생겨 올림픽에 나가게 된다면 국민들에게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다. 올림픽 2연패에 당연히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골프여제의 재도전이 가시화되자 앞선 ‘빅4’ 후배들도 조바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재 귀국해 국내에서 체력훈련과 샷을 다듬고 있는 고진영은 “올림픽 연기를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다. 선수들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고려해 내려진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훈련은 웨이트트레이닝과 골프연습을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하고 있다. 현재의 훈련 패턴을 계속하고 변함없이 보완하고 채워야 하는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 머무르며 스윙코치 없이 개인훈련 중인 박성현은 “도쿄올림픽 연기로 선수인 내 입장에서 보면 조금 더 연습과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마음가짐으로 잘 준비해 나갈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장기 플랜을 잘 세워 준비해 나가겠다. 훈련은 늘 하던 패턴으로 하고 있다. 스윙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스윙에서 보완할 부분이 잘 해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훈련하다가 최근 귀국해 집에 머무르고 있는 김세영은 라운드를 하면서 근력강화를 위해 등산을 즐기고 있다.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던 김세영은 “사실 이렇게 휴식을 갖는 게 10년 만에 처음이어서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가족과 지내니 즐겁다. 6~7월 대회 재개에 맞춰 조금 쉬다가 계획을 세워 훈련하며 올림픽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은6은 호주대회 이후 일찌감치 한국에 들어와 경기 용인의 지산컨트리클럽 내의 지산골프아카데미에 훈련캠프를 차리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정은6은 “어떻게 보면 준비 시간이 더 주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이 기회에 평소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퍼터와 쇼트게임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랭킹 경쟁이 다시 1년 이상 늘어나면서 치열한 샷 대결을 펼쳐야 하는 한국 선수들의 긴장감은 더 높아지게 됐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