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마스크’로 조롱받는 아베, 위기 몰리나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2 08: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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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사태 실효성 논란 확산…‘코로나19 대응’ 역풍에 지지율 추락

일본 사이타마현 가스카베시에 살고 있는 회사원 A씨는 ‘코로나19 긴급사태’가 선언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도쿄도 내 회사로 출퇴근하고 있다. 고객전화 응대라는 업무의 특성상 그리고 재택근무용 PC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회사에서는 특별휴가 제도를 마련하고 출근시간을 조정해 동시에 근무하는 직원 수를 줄였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한 시간 반이나 걸리고 전철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긴급사태 선언 전보다는 전철에 탄 사람이 줄었지만, 도쿄에 가까워질수록 승객도 늘어난다. 같이 살고 있는 93세 어머니도 걱정이다. 출퇴근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새 감염돼 어머니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 염려돼서다. 불편한 점도 있다. 항상 퇴근 후에 식료품 등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지만, 퇴근이 늦어지면서 이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긴급사태 선언 후에 상점들이 영업시간을 조정해 일찍 문 닫는 가게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내놓은 처방전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4월7일 아베 신조 총리는 긴급사태를 선언한 뒤 7개 지자체에 있는 기업들에 출근자를 최소 70% 감소시킬 것을 요청했다. 문제는 근무 내용과 근무 환경 등에 대해 강제성이 있는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여전히 출근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근시안적 대책만 내놓다는 비판이 일면서, 공고하던 아베 내각의 지지율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한 4월7일 오사카 시내 모습 ⓒxinhua 연합
아베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한 4월7일 오사카 시내 모습 ⓒxinhua 연합

갈수록 커지는 아베 정부 향한 불신

긴급사태 선언 이후 도쿄 도심의 번화가는 비교적 한산해졌다. 백화점·쇼핑몰 등은 긴급사태 기간 동안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스타벅스의 경우 긴급사태가 내려진 7개 지자체의 점포 모두가 휴업에 들어갔다. 그 외 도시들의 지점들도 단축영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해가 진 이후의 풍경도 바뀌었다. 대표적인 유흥가인 신주쿠의 가부키초에서는 밤이 되면 경찰들이 순찰을 돌며 시민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한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긴급사태 선언 이후 사람들의 왕래는 다소 줄어들었다. 일례로 요코하마나 오사카의 우메다는 40% 이상 왕래가 줄기도 했다. 애플이 지도 애플리케이션 ‘애플 맵’ 이용 데이터를 통해 산출한 결과를 보면 도쿄의 경우 선언 다음 날인 4월8일, 지난 1월에 비해 공공 교통기관을 통한 이동이 39% 줄었다. 일본 전체의 경우 29% 가까이 감소했다. 분명 사람들 간 왕래는 다소 줄었다. 그러나 뒤집어 말해 일본 국민 10명 중 7명은 여전히 코로나19 확산 이전과 같이 야외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앞서 뉴욕의 경우 4월8일 기준, 지난 1월 같은 기간에 비해 87% 왕래가 감소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실제 일본 주택가는 평소보다 번잡해지기 시작했다. 재택근무가 늘어난 만큼 여유로운 아침 시간에 공원을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사람도 늘었다. ‘긴급사태 선언’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외출 자제를 요청하는 조치이기에 강제성이 없다. 결국 긴급사태 효과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특히 사태 선언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긴급사태 선언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아베 총리의 ‘행실’까지 도마에 올랐다. 아베 총리는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최저 70%, 최대 80%까지 줄이기를 요청한 다음 날인 4월12일 ‘집에서의 시간’을 홍보하는 영상을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동영상에는 아베 총리의 여유로운 일상이 담겼다. 동영상 속 아베 총리는 인기 가수 호시노 겐의 노래를 배경으로 자택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개와 놀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아베 총리는 “친구와 만날 수 없다. 회식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이와 같은 행동이 많은 사람을 구한다”고 말한다. 영상은 4월15일 기준 ‘좋아요’가 40만 건에 달한다. 

아베 총리가 트위터에 올린 ‘함께 춤추자’ 동영상(아베 총리 트위터 캡처)
아베 총리가 트위터에 올린 ‘함께 춤추자’ 동영상(아베 총리 트위터 캡처)

아베 내각 지지율, 전월 대비 4%p 하락

그러나 정작 대중의 평가는 냉담하다. 긴급한 사태에도 정부 책임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우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비판적 댓글이 다수 달렸다. 정부가 자숙만을 요청할 뿐 적절한 보상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입헌민주당 소속 참의원 렌호는 아베 총리의 영상을 두고 “자신의 동영상이나 연예인 동영상을 올리지 말고 ‘자숙과 보상이 세트’인 정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여당 자민당의 한 중견 의원 또한 “이 시점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총리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건 잘못됐습니다’라고 왜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는가”라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아베 총리를 향한 비판은 이뿐만이 아니다. 아베 총리는 코로나19 대책 중 하나로 면마스크를 두 장씩 전 세대에 배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효과가 의문시되는 면마스크를 세대당 두 장씩만 배부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대책이란 것이다. 일본 대중은 이 마스크를 경기 부양책 ‘아베노믹스’에 빗대 ‘아베노(の)마스크’(아베의 마스크라는 뜻)라고 부르며 정부를 조롱했다. 아베노마스크를 만드는 데 일본 정부는 466억 엔(약 5275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 낭비라는 목소리가 크지만 일본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4월14일 아베 총리는 일본 중의원 본회의에서 “면마스크는 일회용이 아니라 재사용이 가능하고 부족한 마스크 수요에 대응하는 측면에서 아주 유용하다”며 합리적 대응책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로부터 막대한 국민 세금을 효과가 불분명한 마스크에 사용하기보다 휴업 보상이나 의료 현장에 투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현재 아베 총리는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이 외국에 비해 늦지 않았다며, 늑장대응이라는 지적은 합당하지 않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의 평가는 다른 듯하다. 4월14일 발표된 NHK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을 지지한다는 대답은 38%에 그쳤다. 긴급사태 선언 이후인 4월10일부터 3일 동안 이루어진 조사 결과다. 3월에 비해 4%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같이 조사했는데 ‘아주 좋게 평가한다’와 ‘그럭저럭 좋게 평가한다’가 46%, ‘별로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전혀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가 50%의 응답을 얻었다. 긴급사태 선언 시기에 대한 설문에는 ‘너무 늦었다’는 대답이 75%로 ‘적절한 타이밍이었다’는 대답 17%를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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