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정의연 논란 무엇을 남겼나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8 14:00
  • 호수 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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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 없는 관성에 내일을 맡길 순 없다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70%를 넘은 가운데,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명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윤 의원은 후원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일이 없다는 등, 자신을 향해 제기된 여러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그를 지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민주당 지도부는 의혹들이 충분히 소명되었다며 엄호했지만, 의혹들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했다는 여론 또한 여전하다. 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도 지적했듯이 최소한 개인계좌로 받은 후원금 지출내역이라도 투명하게 공개했어야 결백을 입증할 수 있었을 텐데, 검찰 수사를 이유로 그런 자료들은 제시하지 않았다. 결국 부실회계가 초래한 횡령이나 유용 여부에 대한 결론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5월29일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활동기간에 불거진 부정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5월29일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활동기간에 불거진 부정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할머니들 소외된 채 활동가 중심의 운동 돼

돈 문제를 둘러싼 진실은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하더라도, 윤 의원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문제가 돈과 관련된 의혹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윤 의원은 ‘위안부’ 인권운동의 대표성을 갖고 비례대표로 선출되어 국회에 들어가게 된 인물이다. 그런데 이용수 할머니와의 갈등 과정과 정의연의 부실운영 실태가 세상에 여과 없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쌓아 왔던 신뢰가 무너졌고, 많은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기존의 대표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시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까지 제기된 의혹들도, 윤 의원의 해명도 모두 돈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30년 위안부 인권운동 역사에서 어쩌다 이런 사태가 초래되었는지 근본적인 문제들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운동의 앞길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의 무차별적 의혹제기는 중간에 생겨난 것이고, 사태의 발단은 내부에서 비롯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설혹 검찰 수사를 통해 부정한 돈의 사용은 없었던 것으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윤 의원과 정의연이 주도하는 위안부 인권운동이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그대로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성찰과 혁신의 일대 전환 없이 지금 그대로의 방식으로 운동이 계속된다면 그것이 더 문제일 것이다.

그동안 위안부 운동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왔던 데는, 정대협(정의연의 전신)이나 정의연이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하며 그분들의 생각을 대변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하는 일이라면 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밀어줘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할머니가 윤 의원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토로하는 사건을 거치면서, 이 할머니뿐 아니라 여러 피해자 할머니와 활동가들 사이에 괴리가 있어 왔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고 국민들이 가졌던 믿음도 깨져버렸다. 무엇보다 위안부 운동이 할머니들은 소외된 채 활동가 중심의 운동이 되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할머니들을 보고 후원과 응원을 보내왔던 국민들 또한 뭔가 속은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물론 위안부 피해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여론을 이끌어온 정의연의 공헌은 높이 사야 할 것이지만, 그러한 운동의 성취 과정에서 정작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불만과 처지를 호소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면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운동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정대협과 정의연은 자신들의 입장과 뜻을 달리하는 할머니들은 ‘기억의 터’ 명단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활동가들은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서는 자신들의 노선에 할머니들이 뜻을 같이해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운동은 모든 할머니들이 자신의 목표에 맞춰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많은 피해자 할머니의 삶과 조건과 생각을 단일한 서사로 묶는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한 일이었다.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운동이 있는 것이지, 운동을 위해 할머니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할머니들을 보고 응원도 하고 성금도 보냈던 국민들에게, 위안부 인권운동은 할머니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 과연 귀에 들어올 수 있겠는가.

이용수 할머니는 ‘성노예’라는 표현이 창피하다며 쓰지 말아 달라고 거듭 말했다. 얼마나 싫으면 그랬을까. 하지만 활동가들은 유엔의 권고라며 본질을 알리기 위해서는 그 표현을 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누구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가. 필자는 다른 어떤 운동의 논리나 표현의 효과를 다 떠나, 할머니들이 원하는 대로 마음 편히 해드리는 것이 우리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들이 갖고 있을 끔찍한 트라우마를 생각한다면 여생에서나마 그 고통에서 벗어나 치유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피해자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운동의 초심이라고 믿는다.

다른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이 운동은 애당초 할머니들을 위한 것이었다. 활동가들이 아무리 대단한 운동적 성취를 이루고 공적을 쌓은들, 정작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소외된 처지를 한탄하며 분노하고 있었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곳곳에 소녀상을 세우고 기념관을 만들며 운동은 확장되고 있었지만, 할머니들의 여생은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면 그 운동은 누구를 위한 운동인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여기서 국가의 책임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그동안 정의연의 시민운동이 위안부 문제 해결 요구를 선도해 왔다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외교적 해결을 할 주체는 어디까지나 한·일 양국 정부다. 2015년 합의가 사실상 파기되기는 했지만,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내용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일본 정부가 ‘군의 관여’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점,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 점 등은 우리 측이 해 온 요구들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법적’ 책임이 명기되지 않은 점, ‘국가 배상’이 아닌 ‘지원금’에 그친 점, 소녀상 문제 등 부대조건으로 인해 위안부 운동단체들과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그 뒤로 일본 정부는 재협상 불가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손을 놓아버린 상태다. 상황이 어렵더라도, 할머니들이 아직 살아계실 때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도록 정부가 다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모든 것을 시민단체 한 곳에 넘기고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국가의 책임 있는 모습이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정의연 같은 단체뿐 아니라 피해자 할머니들의 여러 의견도 듣고 각계의 다양한 의견도 모아가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중지를 모으고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일이다. 

어쩌면 정부가 그러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과정에서 정의연이라는 단일 단체에 힘이 과도하게 집중되고 독점적 지위가 만들어지다 보니 이런 사태가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과 한·일 관계가 어느 한 단체의 생각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국가의 정상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아니다. 윤 의원이 이끌었던 정의연이 이룬 공적은 보존하고 계승해야겠지만, 그 이면에 자리했던 문제들은 바로잡아 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성찰 없는 관성에 위안부 운동의 내일을 맡길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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