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차·화·정 랠리와 ‘닮은 듯 다른’ 국내 증시
  • 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romancer@sisajournal-e.com)
  • 승인 2020.06.10 08:00
  • 호수 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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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주 아닌 성장주가 주도주 등극…언택트·바이오주 주도 언제까지 갈까?

올해처럼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증시로 뛰어들던 시기가 10년 전에도 있었다. 당시 주도주는 자동차, 화학, 정유업종 기업들로 ‘차·화·정’이라 불렸다. 10년이 지난 올해, 다시 개인투자자들이 주축이 된 주식투자 열풍이 일어났다. 이번 상승장을 이끄는 주도주는 언택트·바이오 기업이다. 코스피 종목 중에는 카카오와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이 언택트 주도 기업으로 꼽혔다. 바이오 기업으로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코스피지수는 최근 2000선을 회복했다. 사진은 서울 명동의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 ⓒ시사저널 박정훈
코로나19 사태에도 코스피지수는 최근 2000선을 회복했다. 사진은 서울 명동의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 ⓒ시사저널 박정훈

증시 지형도 바꾼 새로운 강자들

실제로 카카오의 주가는 지난해 말 15만4000원으로 시총 23위 수준이었다. 하지만 언택트 열풍 수혜주로 부각되면서 카카오 주가는 상승세를 탔고 5월26일 27만9500원을 찍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와 LG생활건강을 제치고 시가총액 8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이후 조정을 받긴 했지만 카카오는 시총 10위권 기업 안착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의 시총 순위는 4위로 변화가 없지만 주가는 지난해 말 18만6500원에서 최근 20만원대 중반까지 올랐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시총 26위 기업에서 15위권으로 도약했다.

바이오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승세가 돋보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지난해 말 43만3000원이었는데, 현재 6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같은 기간 5위였던 시총 순위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은 3위로 올랐다. 셀트리온 역시 주가가 지난해 말 18만1000원에서 최근 22만원대로 올라서면서 시총 순위는 8위에서 6위로 두 계단 상승했다.

코스닥에서는 바이오기업 편중이 한층 심화됐다. 지난해 말 코스닥 시총 10위 안에는 셀트리온헬스케어, 에이치엘비, CJ ENM, 펄어비스, 스튜디오드래곤, 케이엠더블유, 헬릭스미스, SK머티리얼즈, 파라다이스, 원익IPS 등이 있었다. 하지만 6월3일 종가 기준 코스닥 상위 10개 기업은 셀트리온헬스케어, 에이치엘비, 셀트리온제약, 씨젠, 알테오젠, CJ ENM, 펄어비스, 케이엠더블유, 에코프로비엠, 스튜디오드래곤 등이다. 5개월 만에 코스닥 시총 1~5위 기업이 모두 바이오기업으로 바뀐 셈이다.

10년 전과 올해는 미국의 대규모 달러 풀기와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 실시로 인한 유동성 확대가 이뤄지고, 여기에 맞춰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비슷하다. 이를 놓고 10년 전 차·화·정 랠리와 비교하는 시선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차·화·정 랠리는 자동차, 화학, 정유업종의 기업들이 2010년부터 2011년까지 2년 동안 국내 증시 상승장을 이끌던 것을 말한다. 코스피 시총 상위 기업이었던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LG화학, 한화케미칼, 롯데케미칼, OCI,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 등이 대표 종목들로 꼽혔다.

당시 주가 급등 배경으로 개인투자자들의 대거 유입이 꼽힌다. 2000년 이후 국내 증시는 미래에셋을 필두로 한 주식형 펀드가 이끌었는데, 2008년 9월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식형 펀드가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후 개인투자자들이 금융위기로 주가가 싸진 2010년부터 직접 주식 매수에 나선 것이었다.

당시 개인투자자들은 차·화·정 기업들을 집중 매수했다. 미국의 달러 풀기, 중국을 중심으로 한 수요 팽창, 이명박 정부의 원화 약세 용인,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일본 공급망 약화 등이 겹치면서 국내 차·화·정 기업들의 실적이 2~3년 동안 매년 급속도로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자 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섰다.

차·화·정 랠리의 정점은 2011년 상반기였다. 당시 자동차 업종지수는 상반기 동안 41.78% 오르며 업종별 주가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화학과 정유주를 포함한 화학업종지수도 26.78%나 상승했다.

하지만 차·화·정 기업들의 주가 상승은 실적 성장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언택트·바이오와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당시 차·화·정 기업들이 분기별로 실적 성장을 꾸준히 보여주면서 투자자들의 인식을 바꾸었다. 실제로 차·화·정 랠리 정점기였던 2011년 1분기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은 1조827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56%가 늘어났다. 같은 기간 기아차는 8398억원으로 90.10% 급증했다.

화학업종과 정유업종도 영업이익이 급증했다. LG화학은 영업이익이 8353억원으로 28.03% 늘어났고, 에쓰오일은 1019.27%, SK이노베이션은 184.57%, GS칼텍스 지주사인 GS는 144.20% 늘어났다. 차·화·정 업종의 중대형 기업들도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100% 이상 늘어난 경우가 속출했다.

 

차·화·정은 ‘실적주’, 언택트·바이오는 ‘성장주’

반면에 언택트·바이오 기업들은 실적 상승 영향보다 산업구조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고 이에 대응해 산업구조도 바뀔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미래 예상에 의존하고 있다. 실제로 카카오의 올해 1분기 매출은 8684억원, 영업이익은 882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창사 이후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하지만 카카오와 시가총액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현대차의 1분기 매출은 25조3194억원, 영업이익은 8638억원에 이른다는 점에서 차이는 명확하다.

이 때문에 증시 전문가들은 미국처럼 국내에서도 성장주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로 언택트가 보편화·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무리해서 예전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며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생활패턴과 소비패턴이 일부이긴 하지만 영구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경제 업종에는 큰 부담이고 결국 일부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성장이 귀해진 시장에서 가치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간 급등에 따른 조정 가능성도 상존하지만 주도주 흐름을 이어 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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