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추락] 우리가 아는 ‘원톱 미국’은 없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9 14:00
  • 호수 159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 사태,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중심 아니란 사실 명확히 보여줘

“코로나19, 경제위기, 정치적 혼란에 시민 분노까지 겹치면서 미국은 지금 국가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신중한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때에 우리에겐 정반대의 리더십이 있다.”(워싱턴포스트 5월31일)

“혼돈의 시대에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화해나 통합이 아닌 갈등을 추구하는 인물이다.”(뉴욕타임스 5월31일)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의 안정을 도울 책임이 있다. 그는 국론을 분열하는 트윗을 쓰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시작할 수 있다.”(NBC 5월31일)

“전 세계가 코로나19 대응으로 신음하는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WHO에서 발을 빼버린 사건은 미국의 리더십이라는 개념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CNN 6월1일)

“과거 역사적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미국에서 현재와 같은 복합적 위기 상황이 발생한 뒤에는 반드시 정권교체가 있었다.”(월스트리트저널 6월1일)

최근 미국의 유력 언론들이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가차 없는 독설을 쏟아내고 있다. 그동안 자신에게 비판적인 일부 언론을 상대로 ‘가짜뉴스’로 몰아세우며 편 가르기를 하던 트럼프로선 전 언론과 상대해야 하는 힘겨운 상황이다. 그동안 언론 대신 대국민 창구로 활용했던 트위터와도 최근 전면전에 나서면서 온통 주변을 적으로 만들고 있다. 페이스북조차도 트럼프의 강압적인 시위 진압을 알린 5월29일 글을 삭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내부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인 셈이다.

“오히려 상황 악화시키는 트럼프의 말, 멈춰야”

코로나19 사태 초기만 해도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2월초부터 본격 시작된 민주당 경선에서 예상대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사실상 대선후보로 확정됐지만, 큰 이슈를 만들진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 전역을 강타하면서 분위기를 일거에 뒤바꿔 버렸다(‘대선만 바라보는 트럼프의 좌충우돌’ 기사 참조).

미국 정치 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4월25일 “공화당 상원 전국위원회는 상원의원 선거에 나서는 공화당 후보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려 하지 말고, 코로나19를 중국의 책임으로 몰아 공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선거에 도움이 안 되는 ‘트럼프와의 거리 두기’를 강조하는 것으로, 실추된 트럼프의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워싱턴포스트는 4월28일 “미국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등에서 백악관에 매일 기밀 국제정세를 담은 보고서인 ‘대통령 일일 보고(PDB)’를 올리는데, 올 1~2월에 12차례 이상 코로나19 사태를 경고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묵살했다”고 보도해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실제 4월22일 백악관에서 열린 대선 관련 회의에선 대선 캠프와 공화당이 각각 실시한 두 개의 비공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에 뒤지는 트럼프의 지지율과 관련한 대책을 핵심 참모들이 논의했고, 트럼프 대통령에 “악화된 민심을 돌리기 위해 ‘중국 책임론’을 강조하는 전략을 펼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선거 전략이라는 게 성난 국민들의 분노 대상을 중국으로 돌리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5월25일 미국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촉발된 미국 전역의 항의시위 사태는 트럼프를 더더욱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이번에도 화근은 트럼프의 자극적인 트위터 글이었다. 5월29일 시위대를 ‘폭력배(Thugs)’로 지칭하며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된다”는 무력 대응 가능성을 언급하는 글에 여론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케이샤 랜스 바텀스 애틀랜타 시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발언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는 말을 멈춰야 한다”고 분노했다.  

반면에 민주당은 이런 트럼프의 약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분위기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5월31일 시위 현장에 나온 흑인 부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대통령이 되면 내가 시위 현장을 방문한 것처럼 (국민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은 “바이든 전 부통령의 협력적인 접근 방식은 국가 통합을 위해 거의 노력하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고 평가했다.

미국 국민들이 백악관을 향해 분노하는 데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도 반감이지만, 한없이 실추되고 있는 미국의 국격에 대한 실망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미국 사망자 수는 6월4일 현재 10만9100여 명으로 압도적 세계 1위다. 2위인 영국(3만9700여 명) 등 다른 국가와 비교가 안 된다. 확진자 수 또한 190만1700여 명으로 2위 브라질(58만4500여 명)을 압도하는 1위다. 정보 보고를 묵살한 트럼프로 인해 초등대응에 완전 실패한 탓이다.

트럼프는 당초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를 “최대 10만 명일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으나, 이미 10만 명을 훌쩍 넘어버렸다. 의학 수준과 신약 개발 등 의료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미국은 이번 코로나 사태로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병상 수, 진단시약 등 기초 의료설비 등에서 턱없이 부족한 허점을 노출했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 유통하는 마스크의 80%는 중국산으로, 미국 시민의 안전을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마저 연출된 것이다.

세종연구소 이상현 수석연구위원은 5월22일 발표한 ‘코로나19 국제정치와 글로벌 거버넌스’란 보고서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해 온 것은 그 물적 토대인 경제력, 효율적인 국가체계, 굳건한 동맹체제 등 세 가지로 설명이 가능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미국 내 경제 침체와 실업률 폭등, 트럼프 행정부의 비효과적인 대응, 동맹과 우방에 대한 리더십 발휘 실패 등으로 미국의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고 진단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당시 미국이 주도적 리더십을 발휘했던 것과 대조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 불가피”

미국 상무부와 노동부 등은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등 경제지표마다 추락 일변도의 암울한 수치를 계속 내놓고 있다. 특히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올 2분기에 지금껏 전혀 본 적이 없는 미국의 경제 수치들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경고는 미국 사회를 더 참담함에 빠트리고 있다. 이미 1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4.8%를 기록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14년 1분기 이후 처음이고, 2008년 금융위기 당시 4분기 -8.4%를 기록한 이후 최저치다. 하지만 이 기록도 곧 깨질 전망이다. 케빈 해셋 백악관 경제보좌관은 2분기 성장률이 -20~-30%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이 또한 월가에서는 낮게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계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최대 -45%까지 전망해 충격을 더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등으로 미국의 사회 시스템과 경제 수준이 민낯을 드러내면서 향후 미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글로벌을 지배하는 부동의 원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 전망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경제 전문매체 블룸버그통신은 5월20일(현지시간) “코로나 이후 우리는 달러가 어떻게 서서히 지배적인 위치를 내려놓게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각 나라들도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최후의 수단이자 최후의 소비자가 아니라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독점적 지위를 가져왔던 달러의 위력이 위안화·유로화·엔화 등 다른 주요 통화들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예측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이미 세계경제의 질서는 서서히 바뀌는 과정에 있다”며  “미국의 인플레이션 논쟁이 학자들 사이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달러 가치의 하락 탓”이라고 밝혔다. 그는 “1974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를 수출하면서 달러를 받았고 그 이후부터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의 지위를 점해 왔는데, 이제는 중국이 세계 원자재 수요의 50%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위안화가 달러의 자리를 치고 들어올 것”이라고 전망했다(‘중국 “‘낡은’ 글로벌 원톱 체제 바꿀 수 있는 우리뿐”’ 기사 참조).

“향후 위안화가 달러 자리를 치고 들어올 것”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란 세계적 위기 국면에서 미국이 보여준 모습은 이미 전 세계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주긴커녕 자국 내의 리더십도 실종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평화적 시위로 시작됐던 반인종차별 시위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폭력과 약탈 등 후진국에서나 볼 법한 혼란이 빚어졌고, 시위 진압을 위해 군을 동원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트럼프를 향해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6월3일 “군 동원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정면으로 항명하는 등 오히려 행정부 내 자중지란을 노출하고 있다.

나라 밖에서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싸늘하다. 중국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려는 트럼프의 의도는 유럽연합(EU) 국가들이 호응하지 않으면서 망신만 톡톡히 사고 있다. 중국의 홍콩 보안법 강행에도 독일 등은 오히려 중국과의 경제 협력에 더 비중을 두는 듯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트럼프가 한국·러시아 등을 G7 회의에 참여시키겠다고 나선 것도 EU를 주도하고 있는 독일에 대한 분풀이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세계를 뒤덮기 전인 2월14일, ‘외교안보 분야의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뮌헨안보회의의 2020년 보고서의 부제는 ‘서구의 실종(Westlessness)’이었다. 미국 등 서구가 이제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미국이 이제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