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관광지로 꼽히는 봉화 백두대간수목원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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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두 곳뿐인 '시드 볼트(종자 저장소)' 마련된 ‘자연 힐링’ 공간

경상북도 봉화군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이 있다. 봉화군은 상당히 외진 지역이다. 고속도로에서 나가서도 한참을 더 시골길과 산길을 굽이굽이 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넓은 면적에다 산 속에 숨겨져 있다시피 하니,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백두대간수목원을 ‘언택트(untact) 경북관광지’로 선정하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전으로 들어가게 된 요즘, 지치고 답답해진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엔 최적의 장소다.

백두대간수목원은 언택트 시대에 발휘되는 장점이 분명 있다. 그런데 그보다 여러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들기도 한다. 왜 이런 외딴 곳에 이토록 거대한 수목원이 생긴 것일까. 그리고 이름은 왜 ‘백두대간’일까.

백두대간수목원에는 멸종위기동물인 백두산호랑이 다섯마리가 살고 있는 '호랑이숲'이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대간수목원에는 멸종위기동물인 백두산호랑이 다섯마리가 살고 있는 '호랑이숲'이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다섯 백두산 호랑이가 뛰어 노는 숲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고유의 지리인식체계다. 다분히 민족적이고, 국내에서만 사용되는 폐쇄적인 용어다. 태백산맥․소백산맥 같은 체계는 지표면 아래 지질의 특성에 따라 산의 지형을 구분하지만, 백두대간은 그런 땅 아래 사정보다는 실제 우리 눈에 보이는 산과 강의 흐름에 기반을 둔다. 산맥 체계가 국제 관행에도 맞고 좀 더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경관 관리나 산지 이용계획 등 실질적인 이해와 활용에는 백두대간 개념이 아주 유용하다. 우리가 백두대간 체계를 오래도록 고수하는 데에는 단지 역사적, 민족적인 이유만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러니 수목원 이름을 ‘백두대간’이라고 지은 것에는 우리나라 산림과 동식물 자원을 보호하고 관리하겠다는 이곳의 목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수목과 초화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야 수목원의 전형적인 특징이자 사명이다. 그보다 백두대간수목원에는 좀 더 특별한 사정이 있다.

백두대간수목원의 안내지도에서 단연 돋보이는 장소가 있다. 백두산호랑이 다섯 마리가 살고 있는 ‘호랑이숲’이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친근한 동물이지만, 백두산 호랑이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어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백두대간수목원은 축구장 7배 넓이의 광활한 숲 속에서 호랑이들이 지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동물원 울타리 안에 갇혀있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더 정겹고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도중에는 ‘가리왕산 매토종자 모니터링 연구지’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잘 알려져 있듯, 정선 가리왕산에는 평창올림픽을 위해 알파인 경기장을 만들며 생긴 거대한 생채기가 있다. 백두대간수목원에서는 알파인 경기장을 건설할 당시에 가리왕산의 토양을 가져와 매토종자, 즉 흙 속에 묻혀 있는 식물 씨앗을 연구 중이라 한다. 나중에라도 가리왕산의 건강한 숲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지역에서는 가리왕산의 자연을 예정대로 복원할지, 올림픽 유산으로 존치할지를 두고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지만, 수목원에서는 묵묵히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백두대간수목원의 '시드볼트(seed vault)'. 시드볼트는 전 세계에서 단 두 곳뿐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대간수목원의 '시드볼트(seed vault)'. 시드볼트는 전 세계에서 단 두 곳뿐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재앙 대비한 식물종자 보관소로도 활용

수목원의 방문자센터 건물에는 전시 공간이 마련돼 있는데, ‘시드볼트(seed vault)’란 낯선 내용이 보였다. ‘종자(seed)를 저장하는 금고(vault)’란 뜻이었다. 생소할 만도 한 것이, 시드볼트는 전 세계에서 두 군데밖에 없다고 한다. 이곳 백두대간수목원의 시드볼트와 노르웨이 스피츠베르겐 섬에 있는 스발바르 시드볼트가 유일하다.

시드볼트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종자은행’과는 달리, 전 지구적 차원의 재앙에 대비해 영구적으로 식물종자를 보관하는 시설이다. 여기서 왜 봉화군에 시드볼트를 갖춘 수목원이 생겼는지 이유가 설명된다. 시트볼트는 어떠한 환경적 변화에도 종자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백두대간수목원이 있는 봉화군 춘양면은 조선시대 ‘5대 사고’ 중 하나인 ‘태백산사고’가 있던 지역이다. 이미 조선시대 후기부터 나라의 중요한 문서들을 보관하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 5군데 중 하나로 선택된 자리인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인 위기를 겪으면서 일상이 흔들리는 요즘, 우리 삶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야생동물로부터 인간에게 전염된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야생 환경에 행해졌던 인간의 무분별한 침범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봉화군이 단지 혼잡한 곳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이기 보다 인간사회와 자연 생태환경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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