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펭수·비 다 담은 《놀면 뭐하니》의 트렌디함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3 12:00
  • 호수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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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재창조하는 김태호 PD 예능의 新세계

최근 ‘싹3(싹쓰리)’라 이름 지은 혼성그룹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다름 아닌 유재석과 이효리 그리고 비가 결성한 혼성 프로젝트 그룹이다. MBC 《놀면 뭐하니》가 여름 댄스가요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기획이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적으로 그룹명을 공모했는데, 무수히 많이 쏟아진 아이디어 중 이들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고른 이름이 ‘싹3’다. 이들은 부캐(부캐릭터)명도 유튜브 사용자들과의 소통 속에 정했다. 유재석은 ‘유두래곤’, 이효리는 ‘린다G’, 비는 ‘비룡’이다.

이 팀을 잘 들여다보면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트렌디’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혼성 댄스그룹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야 과거 《무한도전》 시절에도 갖가지 가요제 형식으로 시도했던 것이니 새롭다고 말하긴 어렵다(물론 혼성그룹은 특이하다). 혼성그룹 프로젝트는 지금도 가장 핫한 트렌드를 보여주는 이효리를 끌어들이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관찰카메라에 비춰지던 ‘제주도 소길댁’의 소박함을 살짝 벗어난 이효리는 서울로 상경해 소속사와 계약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했다. 물론 이 ‘일탈’은 린다G(지린다라는 뜻)라는 부캐의 활동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인터넷 밈 현상으로 인해 뜨겁게 타오른 ‘깡 신드롬’의 비가 합류하면서 혼성그룹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로 올라갔다. 이효리의 솔직 대담함과 비의 수수 대범함 그리고 유재석의 노련함이 더해지면서 《놀면 뭐하니》의 시청률은 9%대(닐슨코리아)까지 수직 상승했다. 트렌드에 유독 신속하게 대응하는 김태호 PD의 순발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최근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과 이효리 그리고 비가 결성한 ‘싹3(싹쓰리)’라는 이름의 혼성 프로젝트 그룹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MBC
최근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과 이효리 그리고 비가 결성한 ‘싹3(싹쓰리)’라는 이름의 혼성 프로젝트 그룹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MBC

《놀면 뭐하니》의 무한 변주·무한 확장

사실 《놀면 뭐하니》가 처음 유튜브를 통해 시도한 ‘릴레이 카메라’는 최근 1인 방송을 지상파 버전으로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들여다본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유재석에게 카메라 한 대를 주고 그 카메라가 계속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릴레이 카메라를 고안한 건 1인 크리에이터 방송 트렌드를 염두에 둔 기획이었다.

하지만 김태호 PD의 진가는 이런 트렌드를 그냥 따르기보다는 그것을 조금씩 진화시키고, 때론 의외의 반응을 얻는 것이 생겼을 때 과감히 전환시키는 유연함에서 나왔다. 유재석의 드럼 도전으로 시작한 다양한 ‘부캐’의 확장은 릴레이 카메라가 가진 한계, 즉 무한 순환하고 캐릭터에 대한 집중이 떨어지는 약점 등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릴레이 카메라에서 생기지 않던 목표는 ‘부캐’의 확장에서 명확한 목표를 통한 ‘일단락’을 가능하게 해 줬다. 드럼 연주 도전은 그래서 드럼 독주회라는 목표를 항한 성장담과 일단락을 담아냈고, 이어진 유산슬의 트로트 도전은 신인 트로트 가수의 탄생이라는 목표를 이루었다.

《놀면 뭐하니》에서 부캐를 확장하다 아이템으로 가져온 유산슬의 트로트 도전은 다름 아닌 TV조선 《미스트롯》으로 생겨난 트로트 트렌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태호 PD는 아이템으로 최근 가장 핫한 트로트를 가져왔다. 그리고 여기서 머물지 않고 트로트를 B급 코드로 해석해 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김태호스럽게’ 소화했다. 몇 초 안에 뚝딱 곡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트로트 장인들의 놀라운 실력은 그래서 B급 코드로 담겨지며 젊은 세대들을 열광하게 했다. 유산슬은 이를 통해 최근 트렌드이기도 한 방송사 대통합을 이뤘다. 펭수 같은 트렌디한 캐릭터와 콜라보 방송을 시도하기도 했다.

MBC 《놀면 뭐하니》에서는 펭수 같은 트렌디한 캐릭터와 콜라보 방송을 시도하기도 했다. ⓒMBC
MBC 《놀면 뭐하니》에서는 펭수 같은 트렌디한 캐릭터와 콜라보 방송을 시도하기도 했다. ⓒMBC

진정한 힘은 변화할 줄 아는 것

《놀면 뭐하니》의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대부분 소화·흡수해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1인 미디어는 물론이고 트로트, 펭수 같은 올 상반기를 휩쓸었던 트렌디함이 모두 담겨 있고, 나아가 코로나19로 인해 공연계 전체가 힘겨워할 때는 이에 발맞춰 전 세계적으로 생겨나고 있던 랜선 콘서트를 앞서 시도해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시도되고 있는 혼성 그룹 프로젝트에도 비의 ‘깡 신드롬’은 물론이고, 90년대 음악이 현재로 소환되어 재해석되는 뉴트로 트렌드가 더해져 있다. 화제가 됐던 JTBC 《부부의 세계》의 영향까지 어른거린다. 이효리 특유의 솔직 과감한 ‘부부 토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런 트렌드에 트렌드를 더하고 때론 이를 변형시키는 그 과정을 통해 김태호 PD 역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최근 연예계 전반에서 불고 있는 ‘부캐’ 트렌드다. 유재석이 유고스타, 유산슬은 물론이고 유르페우스 등등 다양한 캐릭터로 확장해 가는 과정을 《놀면 뭐하니》가 보여주면서, 김신영은 둘째 이모 김다비로, 박나래는 조지나로, 추대엽은 카피추로 활동하는 등 부캐가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한 사람이 여러 영역에서 여러 캐릭터로 활동하는 이른바 ‘멀티 페르소나’에 대한 긍정적 시선들이 생겨나면서 부캐 트렌드는 대중들의 일상까지 바꿔놓고 있다.

《놀면 뭐하니》의 김태호 PD ⓒ
《놀면 뭐하니》의 김태호 PD ⓒMBC

MBC 예능국의 박정규 CP는 김태호 PD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유연함’을 꼽았다. “많은 연출자들이 신박한 아이디어의 기획을 가져오지만 막상 방송을 하다 보면 의외로 인기를 끄는 아이템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과감히 방향을 바꿔 그 아이템에 집중해 주면 프로그램이 정착할 수 있는데도 대부분의 연출자들은 그런 방향 전환에 익숙하지 않죠. 하지만 김태호 PD는 다릅니다. 변화에 굉장히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죠.”

《놀면 뭐하니》가 지금껏 밟아온 1년에 가까운 기간을 되새겨보면 박정규 CP의 이 말이 실감 난다. 애초 카메라 한 대를 건네는 소소함에서 시작했지만, 그 후로 다양한 트렌드들을 끊임없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놀면 뭐하니》의 세계는 무수히 많은 부캐의 세계관을 더하게 됐고, 그 세계관은 서로 부딪치거나 도와주는 방식으로 변화를 일으켰다. 게다가 최근에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효리나 비가 각각 저마다의 부캐를 세움으로써 향후 《놀면 뭐하니》의 부캐 활용은 프로그램 바깥으로도 확장해 나갈 기세다. 그리고 이는 김태호 PD가 트렌드를 가져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함으로써 또 다른 트렌드를 선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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