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손정의] 日 의심 ‘흐릿해지는 투자 판단력’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8 10:00
  • 호수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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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유니콘과 함께 추락하나

손정의, 일본명 손마사요시는 재일교포 3세로 일본에서 굴지의 기업을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돼 왔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가 지난 4월 발표한 ‘2020년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는 56위를 차지했고, 일본에서는 패스트리테일링 회장 야나이 다다시(柳井正)의 뒤를 이어 두 번째 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성공신화의 주인공,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던 손정의 회장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그가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의 2020년 1~3월기(期) 연결최종손익은 1조4381억 엔(약 16조원)의 적자로, 일본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5월18일 소프트뱅크그룹은 2020년 3월기(2019년 4월~2020년 3월) 결산을 발표했다. 이때 발표한 3월기의 영업손익은 1조3646억 엔 적자, 순손익에서도 9615억 엔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의 주요 원인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잇따른 투자 실패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소프트뱅크그룹이 운영하는 10조 엔(약 110조원) 규모의 투자펀드로, 2017년 5월 설립됐다. ‘유니콘’이라고 불리는 기업 가치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 이상에 달하는 비상장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비전펀드는 순조롭게 이익을 올리는 듯했으나, 미국 오피스 공유 기업 ‘위워크(WeWork)’ 문제로 시작해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위기를 맞이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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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주주 가치 1조4000억 엔 하락

위워크는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 공유 오피스를 운영할 수 없게 되면서 경영이 한층 악화됐다. 하지만 위워크와 관련한 소프트뱅크그룹의 위기가 비단 코로나19 때문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미 2019년에 발생하기 시작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2017년 8월 처음으로 위워크에 출자했고 상장을 준비했지만, 2019년 9월 공동창업자 아담 노이만의 스캔들이 보도되고 허술한 경영상태가 드러나면서 상장을 연기한다. 10월에는 약 1조 엔의 추가 지원을 발표했지만, 11월 중간결산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은 15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아사히신문은 이에 지난 2월 ‘흐릿해지는 투자 판단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중국 알리바바와 미국 야후라는 성공적인 투자처를 발견해 낸 손 회장의 능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지적했다. 물론 위워크 한 곳에 대한 투자만을 평가한 것은 아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에 미국 강아지 대행 서비스 회사 왜그(Wag)에서는 출자한 자금을 회수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의 무인양품을 표방했던 온라인 소매기업 브랜드리스(Brandless)에도 2018년 투자했지만 2020년 2월10일 이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위기설, 흐려진 투자 판단력 등이 지적되던 지난 2월에도 손정의 회장은 자신만만했다. 2월12일 열린 결산기자회견에서 2019년 7~9월기 영업적자의 원인이 된 펀드 운용이 투자처의 업무개선을 통해 “반전됐다”고 설명하며, 연결결산에서도 4분기를 기반으로 하면 영업흑자로 전환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지독한 겨울 뒤에는 봄이 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며 낙관적 전망을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손 회장은 “영업이익이 중요한가, 주주 가치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소프트뱅크의 경우 사업회사가 아니라 투자회사”이기 때문에 그 성적을 평가하는 데는 영업이익보다 주주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주주 가치는 보유주식의 가치에서 순부채를 제외한 것으로, 2020년 2월12일 시점에 알리바바 주식 등이 올라 2019년 9월말 시점보다 5조 엔 증가해, 주주 가치는 총 25조 엔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또다시 코로나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손 회장이 강조하던 주주 가치도 작년 12월에 비하면 1조4000억 엔이나 하락했다. 5월18일의 결산회견에서 손 회장은 비전펀드의 투자처 88개 회사 중 15개 회사는 도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비치며 다음과 같이 코로나 사태를 빗대었다. “오르막을 열심히 뛰어 오르던 유니콘 앞에 갑자기 코로나라는 골짜기가 나타났다. 그 골짜기에 유니콘들이 잇따라 추락하고 있는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날개를 펼쳐 골짜기를 건너는 유니콘도 탄생할 것”이라며 15개 회사는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함께 내놓았다. 2월의 결산회견 등에 대해서는 “섣불리 ‘흐름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낙관적으로 말했다”며, 코로나를 계기로 “다시 한번 흐름이 ‘나쁜 방향’으로 바뀌었지만 힘을 내겠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과거의 위기들과 코로나 위기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IT버블 붕괴 직후에는 도산할 것인가, 도산하지 않을 것인가 아슬아슬한 상태로 벼랑 끝에서 손가락 두 개로 버티고 있는 듯한 위기감이 있었다. 이번 코로나 위기에는 확실히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여유롭게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고 호기롭게 대답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보유하고 있는 알리바바그룹 지분을 자금화해 115억 달러를 조달했다고 밝혔다. 이날 마윈 알리바바 전 회장이 주총이 열리는 오는 6월25일 소프트뱅크그룹의 이사직에서 물러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총 4조5000억 엔의 자산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그중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 티모바일이다. 미국의 통신회사 티모바일은 2013년 소프트뱅크그룹이 사들인 업계 4위의 스프린트와 3위 티모바일이 합병한 회사다. 지난 4월 합병이 이루어진 회사로 소프트뱅크그룹은 합병회사의 주식 24%를 보유하고 있다. 손정의 회장은 코로나 이후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정의하며 살아남기 위해 3조 엔 이상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래의 현금 수입을 희생해 눈앞의 자금 융통을 우선시한다는 힘든 조정이 될 것’(니혼게이자이신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나는 낙관론자, 결과로 보여줄 수밖에”

“나는 낙관론자다. 결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나는 워런 버핏과 같은 영리한 투자가는 아니지만 모험투자가다.” 투자가로 자신을 정의한 손정의 회장의 투자 능력에 일본 언론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리스크테이커(risk taker·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인 손 회장에게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손정의는 ‘20대에는 이름을 알리고, 30대에는 자금으로 적어도 1000억 엔을 모은다. 40대에 승부를 걸고, 50대에 사업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60대에 사업을 후계자에게 계승한다’는 인생계획을 19세 때 세웠다고 한다. 현재 손정의는 만 62세다. 그동안 사업에 날개를 달고 순탄히 비행하고 있었다. 유니콘을 이끌고 더 높은 곳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위기의 골짜기와 맞닥뜨렸다. 숨을 돌리고 날개가 돋아난 유니콘들과 함께 인생계획을 완성시킬지, 날개가 꺾여 골짜기로 함께 추락할지, 앞으로의 그의 항로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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