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에 한풀 꺾인 삼성‧LG ‘TV 전쟁’
  • 윤시지 시사저널e 기자 (sjy0724@sisajournal-e.com)
  • 승인 2020.06.16 08:00
  • 호수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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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TV 시장 최대 10% 역성장 예고…비방 마케팅 하기엔 ‘내 코가 석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1년 가까이 끌어오던 QLED TV 공방을 멈추고 휴전에 돌입했다. 치열하게 자사 기술의 우위를 주장하던 두 회사가 표면적으로는 화해를 한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양사의 화해 배경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꼽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TV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소모적인 신경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전망을 종합하면 올해 전 세계 TV 시장 규모는 지난해보다 5~1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전 세계 TV 출하량은 2억350만 대로 지난해(2억2291만 대)보다 8.7%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이 회사가 올 초 제시한 전망치 2억2548만 대에서 9.7% 내려잡은 수치다. 옴디아는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각국의 이동제한 조치에 이어 스포츠 이벤트가 연기되면서 3년 만에 시장이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보영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상반기보다는 하반기 TV 수요가 좋겠지만 연간 수요는 다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며 “TV업계 역시 수익성을 사수하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에서 관람객들이 8K TV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에서 관람객들이 8K TV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싸우면서 큰 삼성·LG전자

실제로 삼성전자와 LG전자 QLED TV 싸움은 1년이 넘었다. 양사는 물밑에서 공방을 벌이다가 결국 지난해 9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서로를 신고했다. 지난해 9월 LG전자는 백라이트가 있는 TV를 ‘QLED TV’라고 표시·광고한 행위가 거짓·과장 광고 등에 해당한다며 삼성전자를 공정위에 신고했다. 여기에 대응해 삼성전자는 LG전자의 일부 광고가 삼성 QLED TV를 객관적 근거 없이 비방하는 부당한 비교·비방 광고에 해당한다고 공정위에 맞신고를 했다.

그러나 양사는 9개월 만에 신고를 취하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QLED TV에 백라이트가 있다는 사실을 홈페이지나 유튜브 광고 등에 표시했고, LG전자 또한 비방전으로 논란이 된 광고를 중단했다. 양사의 TV 전쟁은 이렇게 일단락됐다.

TV는 삼성전자와 LG전자 간에 감정의 골이 깊은 분야다. 디스플레이 기술이 CRT에서 LCD, OLED로 발전하면서 양사의 신경전도 함께 벌어졌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두 회사 모두 경쟁사를 직접 언급하며 비교하기에 이르면서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다. 20년 동안 치고받는 감정싸움이 이어졌다.

양사는 지난 2011년에는 3D TV로 맞붙었다. 삼성전자는 셔터 안경을 이용한 액티브 방식을, LG전자는 편광안경을 활용한 패시브 방식을 채택하며 우수성을 주장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기자들에게 대놓고 LG디스플레이 기술진을 비방하기도 했다. 3D TV로 깊어진 감정의 골은 2016년을 기점으로 OLED와 QLED TV로 옮겨갔다. 양사는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한편 ‘경쟁사 제품 바로알기’를 마케팅 콘텐츠처럼 활용했다.

지난해 두 회사는 8K TV 품질 기준을 두고도 날 선 신경전을 벌였다. 양사는 같은 날 기자간담회를 열거나 경쟁사 8K TV를 나란히 비교 전시하기도 했다. 경쟁사 TV에서 화면이 뭉개지거나 영상이 재생되지 않는 장면을 연출하며 비판 수위를 높일 정도였다.

사실상 8K 콘텐츠도 없는 상황에서 어려운 기술용어를 두고 싸우는 점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8K로 볼 수 있는 콘텐츠가 현저히 부족한데 직접 소비자가 구분하기도 힘든 기준을 앞세워 싸웠다. 그만큼 감정의 골이 깊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10년 넘게 이어져 온 양사의 TV 감정싸움은 올해 외부변수가 발생하면서 중단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TV업계가 울상인 상황에서 양측이 감정싸움만 하기에는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사가 고대하던 도쿄올림픽을 비롯한 스포츠 이벤트는 연기됐고 올 2분기 중엔 북미와 유럽 등 주요 시장의 유통 판로가 막혔다. 시장에선 올 2분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사업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본다. 증권사별 차이는 있지만 올 2분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사업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0~40%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공통적이다.

 

中 추격에 코로나19까지 ‘첩첩산중’

하반기부터는 코로나19로 막혀 있던 TV 수요가 회복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낙관하긴 어렵다. 중국 TV업계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 중국산 LCD 판가 하락에 TCL과 하이센스 등 중국 TV업체는 저가형 TV로 사업 보폭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샤오미와 화웨이 같은 기존 모바일 사업자까지 가세해 최근엔 65인치 TV를 50만원대에 내놨다. TV 시장 경쟁이 극에 달한 지난해 4분기 LG전자의 TV사업을 담당하는 HE사업본부의 영업이익률은 최근 3년 4분기 중 최저 수준인 2.4%로 급락했다.

대외 경쟁이 심화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설전도 소강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힘을 받는다. 양사가 QLED TV 논쟁을 접는 대신 품질 경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점 역시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상반기 TV 수요가 하반기로 이연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TV 제조업계가 수익성을 지키려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하반기 수요가 회복된다고 해도 중국 업계의 LCD TV를 중심으로 가격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돼 마냥 긍정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전방위적인 TV 시장 위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나 LG전자나 올해 프리미엄 제품을 앞세워 수익성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 예년과 같은 기술 논쟁이 가져다줄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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