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언론의 시간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5 09:00
  • 호수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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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후 부정 투표 의혹을 제기하면서 눈길을 끌었던 한 전직 국회의원이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에 아내가 출근 전에 해 준 말이라며 이런 글을 써서 올렸다. ‘전철은 어떻게 타는 거고, 마스크는 꼭 착용해야 하는 거고, 이 시기에 당신의 끈질김을 보여줘야 하는 거고, 식은 닭죽은 전자레인지에 4분 동안 돌리면 따뜻해지고, 오늘부터 적응을 시작해야 하는 거고, 카카오택시 앱도 깔아야 하고, 택시비 비싸지 않으니까 자주 이용하고….’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총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총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일반인이라면 대부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을, 그래서 국회의원까지 지낸 사람이 그런 것도 몰랐었나 하는 핀잔이나 듣기에 딱 좋을 이 글은 마냥 소셜 미디어의 공간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아무리 한동안 뉴스의 중심에 섰던 인물의 글이라지만, 대단한 정치적 포부를 밝히거나 사회문제를 꼬집은 것도 아닌 이 SNS 글을 공개적으로 알린 쪽은 놀랍게도 사설 매체가 아니라 국내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메이저 신문이었다. 사안은 다르지만 또 다른 한 메이저 신문은 홍콩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조슈아 웡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버젓이 실어 눈총을 받았다. ‘조슈아 웡이 한국의 한 야당 의원에게 홍콩의 민주주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밝혀준 데 감사한다는 뜻을 밝혀 왔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조슈아 웡 측이 SNS에 즉각 “저는 그 의원과 연락을 한 적도 받은 적도 없다”고 반박하는 글을 올림으로써 그 내용은 곧바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모두 언론이 굳이 알려도 되지 않는 내용까지 TMI(Too Much Information)로 전하거나, 사실에 반대되는 내용을 실어 대중에게 일종의 ‘민폐’를 끼친 사례라 할 만하다. 한 줄, 한 칸이 아까운 지면을 신변잡기에 가까운 정치인 일상을 소개하는 데 소비하는 것이나, 있지도 않은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독자를 현혹하는 행위는 대중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과거에 보기 힘들었던 거대 여당이 국회에 출현하고 이를 견제해야 할 야당의 몸집이 크게 쪼그라들어 있는 지금은 언론의 책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기다.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밀어붙일 수 있는 상황이니만큼 국정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나온다. 언론은 당연히 그런 장치 가운데 하나다. 거대 여당이 잘못하면 앞장서서 따끔하게 질책하고, 야당이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에 대해서도 때맞춰 쓴소리를 내놓아야 하는 것이 언론에 주어진 역할이다.

최근 몇 년간 나온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사회에서 언론의 신뢰도는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신뢰를 회복하느냐 마느냐는 이제 언론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가 됐다. 국민이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가십에 매달리거나 가짜뉴스를 전하는 데 시간을 낭비해도 좋을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언론의 위기는 제 할 일을 못 해서 오기도 하지만, 제 할 일을 너무 지나치게 해서 오기도 한다. 언론이 엉뚱한 곳이나 훑고 다니며 ‘공신력’이라는 본령을 외면한다면, 그래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는 ‘사신력(私信力)’의 미혹에 빠진다면, 언론이 꼭 지녀야 할 사회 감시 기능을 스스로 반납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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