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경제’가 불러온 시진핑-리커창 갈등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2 08:00
  • 호수 16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커창, 시진핑 경제정책에 반기…“총리 임기 막판 존재감 올리기” 관측도

6월15일 중국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의 한 회의실.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며 제127회 중국수출입상품교역회 개막을 선언했다. 중국수출입상품교역회는 해마다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에서 개최된다. 전 세계 각지 바이어들이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와서 수출입 거래를 성사시키는 중요한 경제 행사다. 우리에게는 ‘캔톤 페어(Canton Fair)’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가을 214개국에서 2만5642개 기업이 참가해 292억 달러의 계약이 체결됐다.

봄철 캔톤 페어는 보통 4월에 개최된다. 냉전 시기부터 중국에는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었기에, 문화대혁명 때도 차질 없이 열렸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1957년 이래 최초로 일정이 연기됐다. 3월초까지 봄철 캔톤 페어는 취소가 유력시됐다. 그런 분위기를 불식시킨 이가 리총리였다. 리 총리는 3월12일 국무원 회의에서 “무역과 외국 투자가 코로나19로 큰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캔톤 페어의 성공적 개최는 의미가 크다”고 강행 의지를 보였다. 또한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해 무역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5월2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장에서 열린 정협 폐막식에 참석한 시진핑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 ⓒUPI 연합
5월2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장에서 열린 정협 폐막식에 참석한 시진핑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 ⓒUPI 연합

리커창, “노점경제는 중국 경제의 생기” 극찬

그래서일까. 사상 처음 온라인 기반의 행사로 진행된 이번 캔톤 페어의 개막식에 리커창 총리가 직접 참석했다. 개막식에 중국 총리가 참석한 것은 10여 년 만에 처음이다. 리 총리는 “이번 캔톤 페어는 특수한 시기에 온라인을 통해 개최돼 국제무역 발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혁신적인 이니셔티브(어떤 일을 먼저 시작해 주도권을 잡는 것)다”면서 “중국이 국제사회에 개방을 확대하고 국제 산업체인과 공급망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걸 보여준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 보도한 국영 CCTV의 뉴스를 보면, 리 총리는 연설하면서 시종일관 큰 제스처를 써가며자신의 말에 힘을 주었다. 이날 캔톤 페어 소식은 외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 지식인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실제 리 총리의 개막식 연설 보도는 SNS에 적지 않게 리트윗됐다. 더욱이 이날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생일이었다. 그렇기에 리 총리의 행보가 더 주목받았다. 양회(兩會) 이후 펼쳐지는 코로나19 정국에서 리 총리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중국 지도자 간 갈등설이 불거졌다는 것이다. 발단은 5월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식이었다. 리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6억 명의 월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7만원)밖에 안 되며, 1000위안으로는 집세를 내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당시 이 말을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빈곤과 실업의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리 총리는 일자리 문제를 언급하며, “서부 지역의 한 도시는 노점경제(地經濟)를 일으켜 하룻밤 사이에 10만 명의 일자리를 해결했다”고 치켜세웠다. 여기서 리 총리가 지적한 도시는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다. 청두시 정부는 3월16일 주택가 일대에서 노점을 열어 장사하는 행위를 허가했다.

본래 중국 대도시에서는 지정된 일부 상업거리를 제외하고 노점 영업을 강력히 제재해 왔다. 특히 시주석이 집권한 이래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투명한 납세 시스템을 갖춘다는 명분으로 노점상에 대한 단속 강도를 더욱 높였다. 하지만 청두는 코로나19 사태로 대량 실직이 우려되자, 지방조례를 내려 이를 역행했다. 위기 상황 앞에 ‘위에 정책이 있고, 아래에 대책이 있게(上有政策 下有對策)’라는 중국 정치의 관례를 따른 것이다. 철저한 방역 조치를 병행해 실시하면서, 노점경제는 차츰 효과를 보았다. 두 달여 뒤 청두의 실험은 대성공으로 귀결됐다.

5월28일 신화통신은 “청두에는 임시 노점구역이 2234개에 달하고 1만7891개 노점상이 활동하고 있다”면서 “노점경제 덕분에 새로이 취직한 사람이 10만 명이 넘고 다시 문을 연 음식점은 98%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CCTV 뉴스채널도 불야성을 이룬 거리의 모습을 소개하며, “청두는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전했다. 6월1일 리총리는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시 주택가에 있는 노점거리를 찾아갔다.

리 총리는 노점상을 격려하며 “노점경제는 중요한 일자리의 근원으로서 중국 경제에는 생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총리가 직접 나서서 노점상을 치하하자, 중국인들은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천만 명이 일자리를 잃거나 수입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각종 상품을 판매하는 데 쓸 수 있는 트럭을 출시하기로 한 우링(五菱)자동차의 주가가 급등했다. 또한 일부 지방정부는 규제와 단속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노점상을 임시나마 합법화하는 지방조례를 잇달아 발표했다.

 

“리커창,제2의 주룽지를 꿈꾸나” 분석도

그러나 6월4일부터 중국 내 기류가 변했다. 공산당 선전부는 주요 언론에 노점경제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 대외적으로 중국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이유에서다. 이뿐만 아니라 일부 매체가 노점경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베이징에 거점을 둔 언론이 앞장섰다. 베이징시 정부도 “노점상이 도로를 무단으로 점거하는 행위 등을 철저히 단속하고 엄중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와 같은분위기 반전에 중국 정가와 중화권 언론은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놨다. 리 총리가 전인대에서 중국이 여전히 빈곤하다는 사실을 지적한 게 시 주석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시 주석은 부정부패 척결과 샤오캉(小康)사회 건설을 최대 치적으로 선전해 왔다.

샤오캉은 국민이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수준을 일컫는다. 시 주석은 2017년 2기 집권에 돌입하면서 “2020년까지 샤오캉사회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했다. 올해 약속한 시점에 왔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은 대규모 실업난과 심각한 취업난에 직면해 있다. 시 주석이 약속한 샤오캉사회는 달성하기 어려워졌다. 리 총리가 전인대에서 한 발언은 시 주석에게는 현실을 꼬집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로 인해 시 주석이 리 총리의 노점경제를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비판에 앞장서는 베이징의 당서기도 시 주석의 최측근인 차이치(蔡奇)다.

그러나 리 총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왕성한 경제 재건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에 대해 지식인층에서 리 총리가 ‘제2의 주룽지(朱鎔基)’를 꿈꾸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룽지 전 총리는 중국인들에게 아시아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중국의 WTO 가입과 연착륙을 성공시킨 명재상으로 손꼽힌다. 시 주석은 국가주석의 2연임 초과 금지를 없애 3연임을 꿈꾸지만, 리 총리는 3년 뒤 임기를 마친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법조계 관계자는 “리 총리가 시 주석의 카리스마에 눌려 임기 내내 기를 못 폈는데, 이제는 코로나19를 이겨낸 총리로 역사에 남으려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