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다 팔겠다”던 두산, 되레 계열사 지배력 키웠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9 10:00
  • 호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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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솔루스 매각 앞두고 우선주 의결권 부활시켜…회사 측 “매각 이슈 관련 없다”

두산그룹이 매각을 추진 중인 계열사에 대해 지배력을 오히려 강화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의결권을 되살리는 방법을 통해서다. 이는 회사 가치를 높게 평가받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반면에 시장 반응은 냉담하다. 빨리 돈을 갚겠다던 두산이 진심으로 경영 정상화 의지를 갖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두산은 그룹 내 신성장동력인 두산솔루스를 팔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이 회사는 5월27일 분기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두산솔루스는 지난 3월25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우선주에 대한 배당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우선주에 없던 의결권이 부활했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제한되는 대신 배당률이 높은 주식이다. 

우선주의 의결권 부활은 증권가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다. 2011년 상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현행 상법은 회사가 정관에 의결권의 부활 조건을 명시하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뒀다. 두산솔루스는 정관 11조(의결권배제주식)에 해당 조건을 적어뒀다. 애초에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염두에 뒀다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선주에 새로 부여된 의결권은 배당 여부를 결의하는 다음 주총 때까지 유효하다. 

이렇게 되면 인수자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통상 의결권이 부여되면 금전적 가치를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원래 의결권을 갖는 보통주가 우선주보다 비싼 이유다. 실제 두산솔루스 우선주(1우·2우B)의 시세는 의결권이 부활한 3월25일 이후 6월18일까지 완만한 상향곡선을 나타냈다. 6월15일엔 장중 최고가를 찍었다. 이와 관련해 두산솔루스의 매각을 앞두고 가격을 부풀리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

돈값 인정되는 의결권…몸값 올리려?

두산의 계열사 매각설은 올 초 두산건설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불거져 왔다. 지금까지 두산그룹이 채권단으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3조6000억원에 달한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6월11일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대주주로서 책임경영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며 “자산매각 등으로 3조원 이상 확보한다는 계획의 최대한 신속한 이행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 실현 방안으로 매물로 나온 계열사가 두산솔루스였다.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만드는 이 회사는 두산이 성장성을 높게 점치는 곳이다. 

지난 4월 중순에는 “두산이 희망하는 두산솔루스의 가치는 최소 1조5000억원”이란 얘기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책정한 액수라고 한다. 당시 추정치가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는데, 그에 앞서 의결권이 부활했던 것이다. 두산이 원하는 값어치는 그때보다 주가가 오른 6월18일 시가총액(1조1650억원)과 비교해도 더 높다.

시장 분위기는 미적지근하다. 6월2일 예비입찰 때 당초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됐던 롯데케미칼과 SKC가 불참하면서 김이 빠졌다. 앞서 국내 중견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가 인수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제시한 매입가는 6000억원 안팎(지분 51% 인수 조건)으로 전해졌다. 

두산솔루스의 의결권 부활을 경영권 방어 차원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 기업 총수가 경영권 세습이나 지배력 강화 목적으로 자사주의 의결권을 부활시킨 경우가 있다. 

5월27일 공개된 두산솔루스 1분기 보고서. 우선주에 대한 배당 미실시로 의결권이 부활했다는 주석이 적혀 있다. ⓒ금감원 전자공시 캡처
5월27일 공개된 두산솔루스 1분기 보고서. 우선주에 대한 배당 미실시로 의결권이 부활했다는 주석이 적혀 있다. ⓒ금감원 전자공시 캡처

특별결의 제재 가능…경영권 지키려?

두산솔루스의 총 주식 수는 3960만 주다. 보통주 3059만 주와 우선주 901만 주를 합한 수치다. 일반적으로 상장사의 보통주 대비 우선주 비율은 5~10%로 알려져 있다. 이를 감안하면 두산솔루스의 해당 비율은 29%로 유달리 높다. 원래대로라면 이들 우선주에는 의결권이 없었기 때문에 인수자 입장에선 보통주만 신경 쓰면 됐다. 지금은 의결권이 되살아나면서 경계해야 할 범위가 넓어졌다. 

두산솔루스 지분 중 ㈜두산과 박정원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의 몫은 61%다. 인수자는 이 가운데 50% 이상을 매입하면 상법상 주총에서 보통결의를 할 수 있다. 보통결의 사항에는 이사 및 감사의 선임·보수 결정, 주총 의장 선임, 이익·주식 배당 등이 있다. 

단 이사 및 감사의 해임, 정관 변경, 경영 위임 등을 결정하는 특별결의는 기준이 높다. 의결권 주식의 3분의 2(66.6%)가 필요하다. 인수자가 지분의 절반을 확보하더라도, ㈜두산과 특수관계인이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끌어모으면 특별결의를 막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두산 일가가 지분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경영권은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의결권 부활로 두산솔루스의 몸값이 올라가면 모두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줄까. 채권단이 두산에 지원한 3조6000억원에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세금으로 조성한 자금도 포함돼 있다. 두산 측은 “가능한 한 모든 자산을 매각해 3조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단 두산솔루스에 이어 잇따라 매각이 차질을 빚으면 그 달성 여부를 장담하기 힘들다. 공적 자금이 흔들릴 수도 있는 셈이다. 

최근 두산은 연 매출 3조원대의 두산인프라코어를 매각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 기업은 두산이 각종 자산 매각설에도 숨겨뒀던 카드다. 하지만 그 알짜 자회사인 두산밥캣이 매물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지며 매각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두산인프라코어 건설기계부문 영업이익의 62%를 차지했던 두산밥캣을 분리할 경우 매물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다른 목적 있을 것"…"재투자 외에 이유 없어"

두산솔루스의 의결권 부활을 두고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총수 일가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평시라면 경영권 방어 목적이라고 보겠지만 매각을 앞둔 현시점에선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매각가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배당금을 포기했기 때문에 손익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두산 측은 일련의 의혹에 대해 선을 그었다. ㈜두산 홍보팀 관계자는 “미배당을 결의한 목적은 헝가리 공장 증설을 위한 자금 확보”라며 “재투자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대주주가 투자자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소액주주와의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두산솔루스는 지난해 10월 인적 분할된 뒤 가치를 인정받으며 배당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모으던 상황이었다. 

또 회사 설립 때부터 정관에 ‘미배당=의결권 부활’을 명시한 것과 관련해선 “매각 이슈와 관련 없다”고 했다. ㈜두산 관계자는 “인적 분할할 때 매각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고, 지금 팔리게 된 것도 억울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과거 두산의 신용등급이 낮아 자금 유치가 어려웠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알짜 사업분야를 두산솔루스에 넘겨 운영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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