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민을 생각한다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0 17:00
  • 호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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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보다 중요한 평화보다 중요한

연일 심란하다. 북한이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이 앞장서 단기적 감정적 소음을 마구 불러일으키고는 사태가 진정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무심해지곤 했다. 이번에도 그럴까. 심란하다.

몇 년 전 대학에서 북한문화를 가르친 적이 있다. 배우려는 학생이 극히 드물어 어렵사리 강좌를 개설하던 지경이었다. 호기심을 넘어 꼭 필요해서 수강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졸업 후 전 세계로 취업하는 학교 특성을 살려 “여러분이 저 멀리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말이 통하는 한국인 아닌 동양인을 만난다고 생각해 봅시다. 십중팔구 북한 사람일 그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하곤 했다. “북한 사람들이 스웨덴 갈 수 있어요?”라는 순진한 질문이 나오면 절반 성공한 셈이다. 그때 나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종강하면서 학생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질문이 있다. 이제 북한을 콩알만큼 알게 된 여러분은 통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북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 준비가 되었는가.

적대의 10년이 지나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불과 얼마 전까지 남북 관계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우리가 믿는 북·미 관계에도 훈풍이 부는 듯 보였고, 각종 세미나에선 통일 후 북한을 상정한 경제적 청사진을 그려대었고. 그러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 2년 동안 남한은 북한 문제를 트럼프에게 맡겨놓고 태평성대를 구가했다고 하면 지나칠까. 그러는 사이 북한은, 언론들의 추측대로라면 거의 기아선상에 허덕이면서 겉으로만 화려한 체 뽐내고 있었단다. 유엔 제재의 본질은 굶어죽으라는 것인데, 아무도 그 제재를 적극적으로 해제해야 한다고 나서지 않았다. 빤히 알면서 왜 그랬을까. 붕괴하라고?

6월17일 인천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마을에서 주민들이 길을 걷고 있다. ⓒ연합뉴스
6월17일 인천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마을에서 주민들이 길을 걷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절박한 몸짓을 이해해야

북한이 자본주의 세례를 받으면 자체붕괴하거나 문호개방을 안 할 수 없다는 ‘자본주의 만능키’ 같은 담론도 넘쳐난다. 그 세례를 어떻게 줄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고. 남한의 앞선 기술력과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이라는 말은 정말 지겹도록 들은 말이다. 언론은 이 사태를 주도한 김여정의 험한 말씨와 폭파한다고 말하자마자 폭파를 하느냐에 놀라고, 북한 통치구조에 변화가 있니 없니가 관심사다. 전쟁이 고려 대상이 아닌 것은 주가를 보면 안다. 정작 북한 인민은 지금 어떻게 살기에 북한이 저리 절박한 몸짓을 하는가가 궁금해야 하지 않나.

북한이 ‘님들 소원’처럼 붕괴되면 어떻게 될까? 중국이 북한을 점령할지 모르니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고요? 북한 인구가 2000만 명이니 값싼 노동력이 어마어마하게 생긴다고요? 그 2000만 인구를 남한은 과연 며칠이나 먹여 살릴 수 있을까. 고작 500명 난민도 못 받아들여 그 난리를 친 남한에 DMZ 지뢰를 무릅쓰고 100만 명쯤이 내려온다면, 아니 서울 시내에 한꺼번에 10만 명만 들어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아니 상상해 낼 수 있겠는가. 보트피플이 되어 일본으로 몰려가면 일본은 또 어떻게 될까. 이건 전쟁 아니라도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아사자를 내고서도 북한 체제가 붕괴하지 않은 것에 주변국들은 감사해야 한다.

민족이나 동포가 아니라도, 이웃 주민들의 생존이 곧 내 생존임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나?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North Korean Lives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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