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어디선가 단식투쟁이 있다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7 16:00
  • 호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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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도, 광우병 시대에도 비국민들은 있었지

단식이라는 말을 처음 배운 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교리공부 때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며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수는 아무 죄가 없는데 왜 단식하며 회개했을까. 문안나 선생님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건 인류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지만, 그 전에 먼저 40일간 단식을 하며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그 나약함을 극복하고자 했단다. 그런데 내가 이해를 못 한 것이 있다. 예수가 아무리 40일간 단식을 하며 고통스러워한다 해서 그게 인류의 죄를 대신 질 자격이 되나. 구원자가 될 자격이 되나. 하느님이 인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인류 대신 제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구약의 오래된 희생양 제의의 구원 모티브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 깊은 상징은 나를 괴롭히는, 풀리지 않는 응어리 중 하나였다.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단식이라는 방법이 권장되는 요즘에도 단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예수는 왜 광야로 나가 단식해야 했을까’ 하는 오랜 질문이 떠오르곤 한다.

6월22일 서울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단식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월22일 서울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단식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절박하게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은데 아무도 안 들어주는 상황일 때, 최후의 수단으로 단식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고당한 노동자라든가 세월호 유가족 같은 구조적 불의의 희생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단식은, 그 단식에 마음 약해지고 세게 심장을 찔리는 사람들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된다. 강남역에서 절반은 단식으로 이어진 일 년 넘는 고공농성을 했던 김용희씨도, 병원 실려갈 때까지 단식하며 진상규명을 외쳤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도, 이들을 살리고자 곁에서 움직인 사람들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그 움직임이 다른 조력자들을 만들어내고, 마침내 언론에 실리고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들이 참여하고 하는 과정을 거쳐 단식은 응답을 얻는다. 예수는 홀로 고독을 향해 갔고, 이런 단식은 고독으로부터 세상으로 살아나오고 싶은 단식이지만, 둘 다 구원을 요청하는 단식이었다.

너무 슬펐던 장면이 하나 떠오른다. 2008년 한창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치열하게 진행되던 무렵 인터넷 방송 마이크를 쥐고 있던 내게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시인 송경동과 몇몇 사람이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 사무실 점거농성을 하다가 연행되었단다. 송경동 시인과 전화로 인터뷰를 시도한 나는, 이 점거농성이 기륭전자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고, 홍준표씨가 언제라도 찾아오라고 한 말을 믿고 만나러 갔을 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언론은 점거농성이라고 말했을까. 게다가 연행된 사람 중 기륭전자 노동자 두 사람은 이미 53일째 단식농성 중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그 두 사람의 이름은 윤종희, 강화숙이다. 이렇게 이어진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단식농성투쟁은 김소연 지부장이 무려 94일간 단식을 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이어졌으나, 촛불광장에는 그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 내게는 상처다. 쓸쓸한 시절에, 그래도 우리 모두가 힘을 보탰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근무를 무사히 잘하고들 계실까. 딱 그만큼이 진보일까.

이 무더위에 자가격리된 ‘시민’의 삶을 이어주던 택배노동자들이 단식투쟁 중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이들이 굶지 않고 투쟁할 수 있게 미약한 입이라도 보탠다. 이 투쟁이 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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