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와 교수의 ‘러시아 성매매’ 법정공방, 그 진실은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7 10:00
  • 호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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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한인회장’ 장로와 ‘前 유학생’ 교수의 법정 공방으로 드러난 원정 성매매 민낯

장로와 교수 중 원정 성매매를 이끈 사람은 누구인가. 이를 놓고 2년 넘게 민사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결과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소송전은 형사재판으로까지 번졌다. 이 과정에서 감춰져 있던 ‘어글리 코리안’의 민낯이 차차 드러나고 있다. 

6월22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0단독 재판부(김연경 판사)는 성락교회 고위 간부인 A장로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1심 공판을 열었다. A장로가 한 사립대 B교수를 지칭하며 “러시아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다 쫓겨났다”는 취지로 말한 게 쟁점이었다. 신도 1만여 명을 거느린 성락교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이 사건은 당초 조용히 묻힐 뻔했다. 앞서 B교수가 A장로를 형사 고소했지만, 검찰이 지난해 8월 불기소 처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B교수가 “기소 여부를 재고해 달라”며 낸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울고법은 올 2월 A장로에 대한 공소제기를 명령했다. 검찰이 불기소한 사건을 법원이 기소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는 이례적이다. 2018년 법원이 처리한 재정신청 사건 2만2293건 중 공소제기로 이어진 사건은 115건(0.5%)에 불과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간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장로는 모스크바 한인회장이었고, B교수는 러시아 유학생이었다. 현지에선 한인 대상 성매매 업소가 운영되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고 한다. 업소의 주요 방문자는 한국에서 온 사업가나 공직자 등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들 업소 중 A장로가 운영하는 곳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시사저널 이종현·pixabay
ⓒ시사저널 이종현·pixabay

가능성 희박한 재정신청 인용되며 재점화  

B교수는 원정 성매매 실태를 공론화하기 위해 2004년 단체를 결성했다. 일명 ‘러여인(러시아여성인권)’이다. 회원 수는 현지 활동가 기준 15명 정도였고, 온라인으로 영역을 넓히면 약 90명이었다고 한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인터넷 게시글·진술서 등에 따르면, 당시 러여인 회원들과 B교수 지인들은 “한인회장이 성매매 업소 운영에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B교수는 시사저널과 만난 자리에서 “한때 모스크바에만 한인 대상 성매매 업소가 대략 10곳 있었다”고 말했다. 업소의 명의상 주인은 현지 마피아였지만, 실제 주인은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여행사, 호텔, 식당 등과 결탁해 손님을 끌어모았다. 또 여성 종업원들은 우즈베키스탄 등 러시아 이외 국가 출신이었다. 백인이 대다수였지만 간혹 고려인도 있었다. 하룻밤 유흥을 즐기는 데 드는 비용은 1인당 200~300달러. 여성들은 매춘을 하지 않을 경우 고작 25달러를 손에 쥐었다. 

B교수는 러여인 회원들과 함께 현지에서 성매매 업소를 규탄하는 전단지를 돌렸다. 청와대 게시판에 비공개로 민원을 넣기도 했다. B교수는 “그때 주러 한국대사관은 내게 외교 마찰을 이유로 항의 전화를 했다”며 “마피아들에게 ‘다리를 잘라버리겠다’는 협박 전화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A장로 측은 한인들이 들락거린 유흥업소에서 성매매가 이뤄진다는 걸 시인했다. 1심 공판에 피고인(A장로) 측 증인으로 출석한 최아무개씨는 “호텔 지하에 있던 가라오케 ‘이화’에서 암묵적으로 성매매를 중개했다”며 “한인 손님들은 1차로 여성 종업원과 노래를 부르고 2차(성매매)를 나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최씨는 이 가라오케 근처에서 선물가게를 운영했던 인물이다. 

최씨는 “러시아의 한 동포 매체 대표로부터 ‘이화의 한국인 매니저가 ○○○’이란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은 B교수의 실명이다. 최씨는 이 사람에 대해 “복잡한 이유로 이화에서 안 좋게 나갔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직접 본 적은 없고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이 증언은 이번 공판의 공소사실과 관련돼 있다. A장로는 2018년 5월 교회 예배시간에 여러 명의 신도들 앞에서 한 발언 때문에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됐다. 당시 그는 B교수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사람은 거기 유학생으로 와서, 지금 그들이 말하는 성매매 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지배인까지 올라가 가지고 주인의 총애를 받았죠. 그러다가 돈 관계로 뭐 잘못돼 가지고 거기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나면서 트러블이 생겨 가지고 그 주인에게 압박을 주기 위해서 만든 게 ‘러여인’이라는 단체입니다. (중략) 그걸 만들어서 그 술집 업주들을 억압하고 했습니다.”

법원, 같은 쟁점에 다른 판결 내려

A장로 측은 추가 증인을 신청했다. 다음 공판기일은 9월17일이다. A장로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B교수가 성매매 업소에서 일했다는 건 목격자도 많고 교민 사회가 다 알았던 얘기”라고 주장했다. 이어 “나는 한국인들이 (성매매 업소에서) 험한 꼴을 많이 당했다는 걸 알고 ‘차라리 한인이 운영하는 업소가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을 뿐인데, 마치 내가 성매매를 두둔하는 것처럼 변질됐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A장로도 B교수를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한 바 있다. B교수가 언론 제보와 인터넷 칼럼 등을 통해 자신을 성매매 업주로 몰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2018년 12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A장로는 재정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두 사람은 민사로도 얽혀 있다. 먼저 B교수가 피고인 민사소송에선 A장로가 이겼다. 남부지법은 지난해 8월 “B교수가 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대로 A장로가 피고인 민사소송에선 B교수가 승소했다. 두 달 뒤에 역시 남부지법이 “A장로가 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같은 법원이 동일한 쟁점을 놓고 다른 결론을 내린 셈이다. 

어찌 됐든 양쪽의 주장이 일치하는 부분은 있다. 2000년대 러시아에서 한인 대상 성매매가 자행됐다는 사실이다. 성매매는 그때나 지금이나 불법이다. 러시아 출신인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2018년 블로그를 통해 그 실태를 밝혔다. 박 교수는 “한인 전용 여행사-한인 전용 호텔-한인 전용 노래방과 같은 ‘성매매 카르텔’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A장로는 “과거에 솔직히 (성매매 업소가) 많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B교수는 “아직도 모스크바 시내에 5개 업소가 영업 중”이라고 했다. 구조와 영업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사이 사우나 형식의 새로운 성매매 업소도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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