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군산 ‘선유도 흰발농게’의 눈물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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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해수욕장 흰발농게 4만마리 국내 첫 서식지 강제 이전
군산시 “서식지 이전으로 주민·흰발농게 윈윈” 주장
대이주 작전…“선의로 포장된 포퓰리즘 이벤트” 비판

6월 24일 오전 11시 전북 군산시 옥도의 선유도 해수욕장 인근 갯벌. 약한 장맛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탓인지 한적했다. 멸종위기 2급 야생생물인 흰발농게 이주 작전에 동원된 작업 인부와 몰려든 취재진으로 시끌벅적했던 전날과는 대조적 모습이었다. 해수욕장 입구인 선유 2구에서 선유 3구 방향으로 가는 좁은 도로의 오른쪽 갯벌에 뱀장어가 지나간 흔적처럼 그물망이 덩그러니 쳐져 있을 뿐 이주 작업을 위한 인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닥다닥 붙은 음식점과 횟집, 커피숍들만 보였다.

흰발농게를 포획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그물망 ⓒ시사저널 정성환
이주용역 수행업체가 흰발농게를 포획하기 위해 그물망을 설치해 놓았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선유도 8경 중에 하나인 망주봉이다. ⓒ시사저널 정성환

갯벌판 젠트리피케이션…위험한 ‘서식지 변경’?

흰발농게는 우리나라 남해안과 서해안에 분포하며, 해안 개발로 개체 수가 급감하며 2012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됐다. 수컷의 큰 집게발이 흰색이기 때문에 '흰발농게'라고 부른다. 수컷의 한쪽 집게다리가 유달리 커 ‘주먹 대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국내 최대 흰발농게 서식처는 이곳 선유도해수욕장 일원이다. 이곳에는 흰발농게 63만여마리가 산다.  

군산시는 23일 오전 11시 흰발농게의 대규모 이주 작전에 착수했다. 선유도해수욕장을 따라 설치된 도로 인근 갯벌 1만7000여㎡에 사는 흰발농게를 인근 서식처로 옮기는 작업이다. 이주 작업은 돼지비계 미끼를 활용한 트랩으로 흰발농게를 잡은 뒤 인근의 대체 서식지로 옮기는 방식이 주로 적용된다. 흰발농게가 싫어하는 진동을 일으켜 스스로 옮겨가도록 하거나 인력을 투입해 직접 잡는 방법의 수단이 모두 동원된다.

포획한 흰발농게는 당일 곧바로 인근의 안전한 서식지로 옮겨진다. 대체 서식지는 포획한 장소에서 250m쯤 떨어진 ‘평사낙안(平沙落雁)’이다. 평사낙안은 선유도에 있는 모래사장으로, 선유도 망주봉에서 바라보면 기러기 모습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포획틀 설치부터 대체서식지로 옮기는 과정을 모두 사람의 손으로 하다 보니, 4만 마리의 흰발농게를 모두 옮기는 데 대략 2주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주 작업은 흰발농게의 산란기인 다음 달 이전에 마무리할 방침이다. 시는 이날 ‘선유도 보호대상 해양생물(흰발농게) 포획 시연 방송촬영(안)까지 만들어 취재진에게 포획에서부터 방류까지 전 이주과정을 시연했다. 

 

“TV보며 눈물이 났다. 너무하지 않나...”

군산시는 과연 ‘바람직한 일’을 것일까. 민원을 낸 주민들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서, 군산시는 ‘흰발농게를 돕는 좋은 일’을 한다는 홍보로 언론에 오르내려 뿌듯할 수 있다. 하지만 현지 분위기는 달랐다. 많은 주민들은 착잡함에 휩싸였다. 익명을 요구한 40대의 한 커피숍 여주인은 ‘이주 작전 행사’를 보며 흰발농게에 대한 미안함에 속이 타들어 갔다고 했다. 그는 “이건 아니다. 너무하지 않나. 어제 밤 TV에서 흰발농게의 포획 장면을 보고 눈물이 났다”며 “선의로 포장된 포퓰리즘 성격의 이벤트가 흰발농게를 희화화 대상으로 몰았다”고 비판했다. 군산시가 이주 안전성에 대한 기술적 측면을 뽐내기 위해 포획 장면 을 방송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서식지에서 쫓겨나는 흰발농게의 몸부림을 한낱 흥밋거리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선유도 해수욕장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홍성길(53)씨는 건너편 갯벌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비가 오면 흰발농게가 출몰하지 않는다며 오늘은 작업을 안 하는 것 같다”며 “이주 작업 시작 하룻만에 중단할 바엔 차라리 장마철이 끝난 뒤부터 시작할 일이지, 어제 반짝 호들갑을 떨었는지 모르겠다”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홍씨는 “우리 어렸을 때만해도 발이 폭폭 빠지는 죽갯벌이었는데 해수욕장에 호안을 시설하면서부터 북서풍에 따른 모래 퇴적으로 갯벌이 무너졌다”며 “첫술 뜨기가 어렵지 이번 일을 계기로 관이 그나마 남아있는 갯벌을 야금야금 매립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불편한 진실…‘선의’ 아닌 ‘민원 해결용’ 강제이주 착안

선유도 갯벌 ⓒ시사저널 정성환
갯벌 매립의 발단이 된 선유 2구에서 3구를 연결하는 좁은 도로 ⓒ시사저널 정성환

흰발농게 서식지 이주는 군산시의 작품이다. 이번 흰발농게 이주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과 배후부지 일부 매립을 통한 편의 시설 확보라는 사안을 놓고 시와 전문가들이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다. 군산시는 당초 이곳 배후 부지를 매립한 뒤 주차장 등 편의시설과 생태형 관광단지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계획을 수정, 서식지 환경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발하기로 했다. 배후부지 일원 일부를 매립해 도로를 확충하는 한편, 이곳에 서식중인 흰발농게를 좀 더 뒤로 이주시키는 방법으로 절충안을 찾은 것이다.

시는 서식지 이주의 정당성으로 선유도나 흰발농게 모두에게 좋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개발과 생태 보존의 절충점을 찾음으로써 선유도해수욕장은 열악한 관광지 기반기설을 확보할 수 있게 됐고, 흰발농게는 매립으로 자칫 서식지를 통째로 잃을 뻔 했던 위기를 모면하고, 도로에서 갯벌 안쪽으로 옮김으로써 이전보다 더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좀더 들여다 보면 불편한 진실도 담겨져 있다. 애초 이주 계획이 더 나은 서식지를 제공하기 위한 선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관의 ‘돌발 사정’에서 강제이주가 결정됐다는 점에서다. 지난 2017년 말 군산 고군산 연결도로 개통으로 연육된 선유도 해수욕장 일원은 도서환경이 급격히 변화했다. 하지만 기초적인 기반시설 등이 열악해 관광객과 주민들로부터 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민원요구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군산시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새만금간척지 조성사업을 위해 취득한 매립면허권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일부 매입해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수립했다. 시는 해수욕장 남쪽 건너편 16여만㎡ 갯벌에 생태공원과 주차장, 녹지를 만들고 현재 1차선인 도로 일부 구간을 2차선으로 확충한다는 계획을 짰다. 하지만 순항하던 사업추진은 흰발농게라는 복병을 만난다. 한 공기업에 다니는 직원이 흰발농게 서식 사실을 최초로 군산시에 알리면서다. 실제 조사 결과 선유도해수욕장 일대에는 4만7387㎡ 면적의 갯벌에 총 63만여마리의 흰발농게가 사는 것으로 추산됐다. 국내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큰 서식 규모다. 이 가운데 도로 확장 예정부지 1만7000만㎡에는 전체의 6% 남짓한 최대 4만여마리의 흰발농게가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군산시는 선유도 갯벌에 흰발농게가 대량으로 서식하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이 일대에 생태공원과 관광객 편의시설을 만들려는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결국 흰발농게 서식환경을 고려해 당초 계획면적인 16만㎡에서 대부분의 면적을 제외한 2만7000㎡로 면적을 대폭 축소했다. 동시에 축소된 개발예정지에 서식하는 2~4만 마리에 대한 이주 대책을 마련했다. 흰발농게로선 군산시의 방침에 따라 10여년을 살던 곳을 떠나 250m 떨어진 곳으로 강제 이주를 떠나게 된 셈이다. 흰발농게 이주가 갯벌판 제트리피케이션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받는 대목이다.

군산시는 전북지방환경청으로부터 흰발농게의 이주유도(포획)허가를 득하고 시험포획 등을 추진하면서 흰발농게에 대한 안정적 이주방안을 마련했기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사업추진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주민들의 요구만큼 충분한 공공용지가 확보되지는 못했지만 흰발농게도 선유도만의 귀중한 생태적 자산이다”며 “앞으로 흰발농게의 서식환경을 다 같이 보존해 선유도의 명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더 불편한 진실…아무도 모르는 ‘흰발농게의 운명’ 

흰발농게 ⓒ고군산관광탐방지원센터
흰발농게 ⓒ고군산관광탐방지원센터

흰발농게 이주에는 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이들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환경당국과 군산시 등 아무데도 모른다는 점에서다. 흰발농게를 새 서식지로 옮기는 것은 전국에서 군산시가 처음이다. 유례가 없는 일 만큼이나 앞일 또한 안갯속임에 다름없다. 우선 전량 이주 한계에 따른 난제에 부딪혔다. 현실적으로 전량 포획·방류가 어렵다는 점에서 상당수의 미포획 개체는 도로 개설시 매립공사와 함께 매몰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주용역 수행사인 아쿠아싸이언스 오정규 이사는 “성체들이 굴을 파고 살고 있기 때문에 포획 트랩을 설치하거나 인력으로 잡든 이적 대상으로 잡고 있는 1만5000마리를 다잡아 100% 이주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물리적으로 부족한 ‘시간’도 이주 작전에 편승하지 못한 개체의 생매장에 대한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이주 업체는 이제 초읽기에 몰리고 있다. 당장 성체 산란시기인 7월까지 얼마나 집중적으로 잡아 새 서식처에 매립하느냐 여부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오 이사의 말이다. 

“시간을 끌며 전량을 잡는 것보다 7월 산란기 마감 이전에 가능하면 많이 포획해 새 서식지에 파놓은 인공굴에 매립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흰발농게 성체의 경우 작업이 마무리되면 그물망을 쳐 옛 서식지로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흰발농게가 곧 포란하고 산란기에 접어들면서 몸에 붙은 수백에서 수천개의 유생(알)을 털어내면 유생들이 밀물을 틈타 옛 서식지로 넘어올 수 있다.” 산란기 이전에 성체 포획의 기회를 놓쳐 유생을 막지 못하면 그동안 공들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돼 선택과 집중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흰발농게의 이주 후 새 서식지에서의 적응 여부도 문제다. 학계와 환경당국, 군산시, 전문업체 등 아무도 이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군산시는 전북지방환경청으로부터 흰발농게의 이주 유도(포획)허가를 받고 시험포획 등을 추진하면서 흰발농게에 대한 안정적 이주방안을 마련했기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군산시 항만해양과 관계자는 “선유도해수욕장 안에 있는 더 여건이 좋은 서식지로 옮기기 때문에 대량 폐사 등의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학계에 보고된 사례가 없는 만큼 새로운 서식지에서 완전한 정착 또한 장담할 수는 없다”며 “전반적인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아쿠아싸이언스 오 이사는 “아직까지 연구된 자료가 없어 모니터링 해봐야 알겠지만 이주를 보내는 곳의 서식환경이 훨씬 좋고, 안정화를 위해 인공굴을 파 (흰발농게를)넣는다”며 “작업 중 상처를 입지 않고, 스트레스만 받지 않았다면 생존율이 80%를 웃돌 것”이라고 했다. 전대미문의 생물보호종 서식지 이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금으로서는 짐작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멸종위기종 ‘흰발농게’의 운명이 뒤치닥 모니터링(관찰)에 달려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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