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기소? 불기소? 검찰의 딜레마
  • 이혜영 객원기자 (applekroop@naver.com)
  • 승인 2020.06.2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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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찔린 검찰…기소하면 ‘권고 무시’ 첫 사례
안하면 ‘무리한 수사’ 비난 자처
검찰이 최근 삼성 관련 사건을 모두 특수2부에 배당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고성준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 결정을 내리면서 검찰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고성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에 차질이 빚어졌다.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 결정을 내림에 따라, 1년8개월 간 진행해 온 수사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이 부회장의 '삼성 합병·승계 의혹' 수사를 벌여 온 검찰이 딜레마에 빠졌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권고에 따라 불기소 처분을 내릴 경우 검찰은 수사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데다 삼성 봐주기라는 비난 여론과 마주하게 된다. 반대로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 부회장을 재판에 넘기면 수사심의위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수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27일 수사심의위의 권고 사항을 통보받은 직후부터 사건을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13명 중 10명이 수사 중단·불기소 의견 

이번 수사심의위 심의에 참여한 위원은 총 13명이다. 이 중 과반을 훨씬 넘는 10명이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의견을 냈다. '기소vs불기소' 의견이 팽팽히 맞설 것이란 당초 예상을 벗어나 불기소 의견이 압도적 우세로 나왔다. 검찰도 이 부분을 크게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들은 심의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계속 수사 여부, 이 부회장과 김종중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삼성물산에 대한 기소 여부 등에 대해 장시간 논의했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어디까지 보고 판단할 것인지에 대해 검찰과 삼성 측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특히 주가조종과 분식회계 등 혐의를 두고 집중적인 토론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 중 상당수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는 전언도 나왔다.

수사심의위의 권고는 법적인 강제력 없이 권고적 효력만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한 쪽으로 치우친 결정이 나왔다면, 검찰로서도 단순 권고로 받아들이는 데 무리가 따른다. 특히 검찰이 이번 권고를 무시할 경우 수사심의위 권고를 따르지 않는 첫 사례로 남게 된다.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인 2018년 처음 제도가 도입된 이래 2년 여 동안 총 8차례의 수사심의위가 열렸고, 검찰은 모든 권고를 존중했다. 수사심의위는 주로 국민의 관심이 높거나 갈등 소지가 있는 사건을 처리하면서 검찰의 부담을 완화하고 정당성을 인정받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만약 일반 시민들이 참여한 검찰시민위원회의 동의까지 얻어 소집된 이번 수사심의위 권고를 이례적으로 무시한다면, 검찰 편의에 따라 제도를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 공정성을 고려해 객관적 절차를 거쳐 구성되는 수사심의위의 성격에 비춰봐도 검찰이 해당 권고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수사심의위는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 등 형사사법제도에 학식과 경험을 갖춘 150∼250명 이하의 위원을 두고 있으며 추첨으로 선발한 15명이 심의에 참여한다. 

양창수 검찰수사심의위원장에 대한 중립성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그가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과의 친분을 이유로 위원장 직무를 회피하면서 일단락됐다.

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불기소 하면 '무리한 수사' 인정에 '비난 여론'까지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고 불기소로 마무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장기간에 걸친 수사 과정에서 수많은 소환조사와 압수수색, 구속영장 청구 등을 하고도 사건을 재판에 넘기지 않는다면 무리한 수사에 대한 지적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삼성 봐주기라는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 고발을 접수한 뒤 1년8개월 가까이 수사를 이어왔다. 지난해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에 대해 2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모두 기각됐고, 이달 4일에는 이 부회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도 법원으로부터 기각당했다. 

반복된 영장 기각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기소 의지를 보여왔다. 그러나 수사심의위 권고에 따라 방향을 바꿔 불기소 처분을 하면 '대기업 봐주기' '유전무죄' 등 비난의 화살은 고스란히 검찰로 향할 가능성이 커진다. 

앞서 법원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도 재판의 필요성을 인정한 점은 검찰에 기소 명분을 줄 수 있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9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와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심사숙고 검찰, 표정관리 삼성

이 부회장의 기소 여부는 조만간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과거 수사심의위 결정 이후 검찰이 이를 수용할지 판단하는 데 걸린 시간은 대개 일주일 이내였다. 안태근 전 검사장의 인사보복 사건은 수사심의위에서 구속기소 의견을 낸 지 3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아사히글라스의 불법 파견 사건은 수사심의위가 기소 의견을 낸 지 7일 만에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외부전문가 설득에 실패하며 입지가 좁아진 검찰은 격렬한 내부 논의와 수사내용 및 법리 재검토에 매진하며 심사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삼성 측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가 나온 뒤 삼성은 환영 입장을 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삼성과 이 부회장에게 기업 활동에 전념해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기회를 주신 데 대해 감사하다"고 밝혔다. 삼성은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지난 4일부터 24일까지 4차례나 입장문 또는 호소문을 내면서 경영권 승계 과정의 의혹을 방어하는 한편 위기 돌파를 위해 매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해왔다.

삼성은 이 부회장에 대한 최종 기소 여부 판단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여론이 이번 결정에 여전히 우호적이지 않은 점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에 대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깃발 뒤로 삼성 서초사옥이 보인다. ⓒ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에 대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깃발 뒤로 삼성 서초사옥이 보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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